요가는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고안한 파탄잘리의 수련법이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단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지만 삶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유한한 생을 살다가는 건 같다. 이러한 인간의 전인적인 문제들을 몇천 년 전 사람들도 함께 고민했었고 뛰어난 현자인 파탄잘리는 세세하고 체계적인 단계로 삶의 조화로운 경지를 안내하고 있다.
나는 생에 가장 어둡고 무거운 시기에 요가를 시작했는데 마치 등불을 하나하나 켜듯 요가는 그렇게 나를 안내해 주었다. 처음에는 몸을 썼다. 아사나라고 부르는 좌법이다. 다양한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몸과 만났다. 사실 그전에는 오른쪽 왼쪽도 헤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몸에 대한 인지력이 매우 낮았다. 이제 아프면 “천골 왼쪽 안이 아파요”라고 하지만 그때는 “엉덩이 쪽이 아픈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몸과 나는 친하지 않았다. 몸을 쓰면서 얼굴의 근육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표정이 어떤지 자각하게 되었고 긴장할 때 어깨가 자동으로 올라가는 걸 알게 되었다. 싫은 사람과 있으면 변비가 온다는 걸 알았고 피곤함이 쌓이면 목뒤가 부어오른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26살 매트 위에 선 날부터 41살 된 지금까지 요가는 내 몸과 나를 연결해 주고 있다.
요가를 시작하고 2,3년이 지날 무렵 어쩐지 코끼리의 어떤 부분을 더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의 역사가 워낙 길고 접근 방법이 방대하다 보니 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시도한 방법은 그때그때 관심 가는 부분을 파는 것이었다. 처음엔 아사나를 잘하고 싶었다. 신기한 움직임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요기와 요기니들을 보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근육학과 해부학등 몸에 대한 이런저런 공부들을 하며 그날 배운 걸 아는 체하기 위한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워크숍에서부터 명상이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어떤 스님이 알려주신 트라타까와 만다라를 통해 집중의 힘이 만들어내는 현실의 성취감에 놀라는 날들의 연속이 이어졌다. 호흡을 통해 알아차림을 하고 산만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상에서도 이어가는 것이 수련의 핵심이었는데 그러한 것이 요가의 상위단계라는 것을 우둔한 제자였던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집중명상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내 안의 수많은 감정들을 마주해야 했다. 보기 싫고 수치스럽고 부끄럽기도 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안의 감정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도망하고 싶었다. 그때 내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언젠가는 하고 죽어야 할 일인데
언제까지 도망 다닐 거야?
죽고나선 기회가 없어
그렇게 내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감정들과 하나하나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수줍은 아이도 화난 아이도 짜증난 아이도 있었다. 깊게 숨어 있어서 찾아내는데 한참이 걸리기도 했다. 이때는 자비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디기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매일밤 명상을 하고 눈물로 씻어내는 과정을 약 두 달간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이러한 과정을 할 수 있었던 건 하나가 풀리자 현상계에서 어떠한 걸림이나 장애가 사라지는 경험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사는 게 조금씩 수월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에서 돌바위를 굴리며 올라가는 것 같았는데 바위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경사가 완만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그러한 과정들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지만 조금은 옅어졌음에 감사하고 있다. 요가의 여정에서 나를 안내하고 지켜주었던 수호천사가 함께 했기에 가능한 여정이었다. 때론 사람으로 어떠한 음악으로 책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현실에서 그러한 신호들을 알아차리는데 필요한 감각은 요가의 프라티라하라를 수련하며 터득하게 되었다.
요가를 수련하며 매트 위에 선 이들은 알든 모르든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파탄잘리가 당신이 매트 위에 선 순간부터 계획한 자동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자세한 과정은 2편으로 나눠써야겠다. 지금은 아기 똥기저귀를 치우러 가는 일이 시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