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좀 자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사라졌다

by 이수민

아기가 태어나면 짧게는 몇십 분 길게는 두세 시간을 자고 깨기를 반복한다. 나는 왜 이 사실을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우고 있었던 걸까?


하루 8시간 이상을 자던 나에게 가혹한 시간이 펼쳐졌다. 그중 가장 괴로운 시간은 마의 새벽, 해뜨기 전인데 좀비가 되어 젖을 물리고 있노라면 이 무슨 해괴한 상황인가 싶어졌다.


귀여운 아기만을 상상한 건 아니었지만 나의 밑바닥을 처절하게 드러내게 할 인물의 등장이란 건 생각지 못했다. 첫 아이를 낳은 때가 이미 불혹이었고, 나는 십여 년이 넘는 기간 수련을 해온 요기니가 아닌가, 갓 태어난 생명에게 짜증과 화를 수시로 낼 수 있는 치졸하고 나약한 인간이었나? 그동안 해온 허울 좋은 말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이의 치기 어린 잘난 척이었던 것이었다. 수행자들에게 향했던 신비로운 존경심은 그동안 눈길도 주지 않았던 뱃살이 넉넉하고 수시로 남편욕을 하지만 아이들과 찌그락빠그락 살아가는 아줌마들을 향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 세월을 살아온 것인가 하는-


지금 새벽 2:52 첫 돌을 앞둔 아이가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나를 방해하고 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후퇴란 없는 전장의 장수같이 내 앞에 우뚝 서있다. 저 작은 생명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는(얘가 둘째니까 정확히는 삼 년 전부터) 줄곧 하녀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은 아이 위주로 돌아가고 있고 양해나 부탁 따위는 없는 세계에 갇혀버렸다. 그렇다고 싸우거나 힘으로 밀어붙였다가는 죄책감의 고통이 눈덩이가 되어 오게 되어있다.


당연한 것들이 사라졌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펼쳐졌다. 예를 들면 아기띠를 하고 변기에 앉아있는 일들 같은- 개인차는 있겠지만 아이 보느라 전화를 못 받는 건 부지기수였고 샴푸를 하다 뛰어나오고 서서 밥을 먹고 맞는 청바지가 없어졌고 외식을 하려다 눈칫밥만 먹고 오는 일들이 일상이 되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사라진 자리에 내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겁을 주는 게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동안의 나는 분명 사라진다.


지금은 2:52 a.m 이곳은 친정


tip

잠을 줄이며 버티던 시절은 끝났습니다. 이번 야근은 하루이틀에 끝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건 잠입니다. 아기가 잠들면 만사 제쳐두고 같이 자도록! 나의 수면패턴은 이미 깨어졌지만 쪽잠이라도 사수해야 합니다.


침구는 내 맘에 드는 것으로 뽀송하게, 수유등은 은은한 빛으로(유아 때에도 무섭다며 불을 완전히 소등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 오래오래 씁니다) 준비하면 좋아요.


첫째는 워낙에 잠이 없어 브람스자장가를 내내 틀어놓았고 유튜브의 케어멜로디도 잘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잠을 못자는 부모님께는 캐모마일티를 우려 따뜻한 우유에 꿀과 함께 마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