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unding - 안정화 - 뿌리내리기
한참 요가 수련을 하던 날들이었다. 서울에서 열린 요가페스티벌에서 그 해 가장 유명한(지금도 그러한) 선생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요가를 세련되게 풀어내는 서울 선생님이 그때는 뭔가 달라 보이기도 했는데 전에 못 본 다른 요가복의 색감들과 브랜드들이 눈길을 먼저 사로 잡기도 했지만 그들이 쓰는 요가 용어가 무언가 남달랐다. 그중 하나가 'grounding'이었는데 마음속으로 '음, 그라운딩? 나는 그라운딩 되었나?' 의문이 들었다.
그랬다. 심약한 데다 누가 싫은 소리 조금만 해도 코끝이 먼저 찡해져 정작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물부터 나버려 의사소통은커녕 그 자리를 버티고 있는 것도 힘이 들어지는 내게 가장 시급한 과제가 'Groundiong'이었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특히 아버지) 평생 정직과 성실로 살아가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셨는데 양심이 너무 부드러운 나머지 정작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마저도 양보하는 게 문제였다. 되려 자신들이 좋은 것을 가지는 것에 자기 의심을 하는 것을 보는 나로서는 속이 터져 종종 공격성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사업과 장사를 하던 아버지는 하던 일이 쉬 풀리지 않으셨는데 거기다가 가족 간의 여러 가지 밀림에서 내가 보기에 바보를 담당하셨던 지라 누가 조금만 눈치를 주거나 언질을 하면 자신의 탓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강했다. 스스로의 도덕적 기준이 비이상적으로 높은 것이 문제이기도 했던 것 같다. 현실과의 괴리가 있다 보니 얼마나 혼란스러우셨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의 자기 탓은 자연스레 자식에게 양심이라는 이름의 교육으로 전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다행히 머리 굵은 나와 동생은 격렬하게 반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grounding'은 어려운 과제였다. 우선 삶에 대한 불안도가 높았고, 너무 많은 생각들이 원치 않는데도 머릿속에서 튀어나와 그 불안을 가중시켰다. 20대 격정의 연애사는 삶을 풍부하게 하기보다는 피폐하게 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30대 전체 기간 동안 운영한 요가원을 지켜내느라 매일이 불안한 자영업자였다.
어찌 보면 그러함 덕분에 요가에 매진했고, 매 순간 정성을 들이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가 된 것도 사실이지만 어쩐지 애씀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 요가 페스티벌 이후에도 호흡과 아사나, 요가 공부를 하며 가장 우선에 두었던 것은 그라운딩이었는데, 아무리 마음에 최우선 순위에 놓고 수련을 해도 정작 현실에선 바람에 날리는 먼지 같은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100kg이 되는 신랑을 만난 걸까? 웃자고 하는 체중농담이지만, 신랑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안 하면 안 했지 타인에게 휘둘리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그의 당근원칙은 나를 깔깔대게 했지만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ㅎㅎㅎ 평생 단백질로 구성된 몸이라 그런가? 정말로 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혼 후 6개월쯤 되었을 때 사촌언니랑 통화를 하다가 "언니, 나 고기가 너무 먹기 힘들어"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풀위주의 식단을 평생 하다 매일이 단백질인 식탁을 차리고 먹으려니 속이 적응을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기도 하고 재밌는 순간이기도 한데 그때는 나름 힘듦의 토로였다. 이제는 오히려 친정에 가서 3일쯤이 지나면 허기짐을 느낀다. 몸이 단백질화 된 것인가? 생각한다. 이 얘기를 이모에게 했더니 숨넘어가게 웃으신다. 나는 진지하다. ㅎㅎㅎ
그리고 뿌리내리기의 진수는 서울에서 만난 밝히지 못할 인물에게서 발견했는데, 그녀는 어찌 보면 뻔치가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시간을 지나며 겪어본 바로는 빠른 판단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한 거라 여겨진다. 적어도 내가 만난 인물들 중에서는 최고였다. 자리를 조금 내어주면 엉덩이를 쓱 대었다가 이내 가부좌를 제대로 틀고 단전으로 호흡하는 수행의 고수처럼 그녀는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가 자기 자리였던 것처럼 깊고 강한 뿌리를 내렸다. 정말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뿌리내리기였다. 그러한 생존 방식은 어찌 보면 나름대로 시간과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 버티는 원초적인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덕분에 내겐 부족했었던 타마스의 성질을 현실에서 그라운딩-안정화-뿌리내리기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라이브로 볼 수 있었다.(구나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서) 물론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다는 것은 공동체에게 불편함이 될 수 있겠으나 에너지의 이동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그라운딩의 순환의 관점에서는 필요한 기질이라 생각된다.
아들 둘을 키우며 자연스레 나의 발은 지구 끝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고 나의 머리는 우주에 닿아있으니 어찌 보면 20대 요가페스티벌에서 가졌던 나의 소망은 현실이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이래서 엄마는 강해지는 것인가? 어젯밤 중구난방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는 우량아들 둘을 케어하는 모습을 보고 딸 둘 엄마가 "나라면 맨날 울었을 것 같아요." 그런다. 어쩌면 가정이라는 수행터에서 백 킬로 신랑과 우량 아들 덕분에 나는 수행에 고수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하하하항.... 오늘도 잘 지나가길 (또르르르...)!
구나는 세가지의 에너지의 성질을 이야기 합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성질, 작용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샤트바: 빛, 맑음, 평온의 상징
-특징: 명료함과 평온, 안정을 기반으로 사랑과 가볍고 순수한 상태
-느낌: 부드럽고 깊은 호흡과 가볍고 균형잡힌 몸
-높이는 것: 명상, 신선한 자연식, 자연에서의 시간 보내기, 진실한 말과 단순한 삶
○라자스: 움직임, 욕망, 열정의 상징
-특징: 욕정과 경쟁, 불안과 성취욕의 상태
-느낌: 긴장, 높은 속도, 쉽게 피로
-높이는 것: 과도한 일과 정보, 자극적 음식(인스턴트, 카페인), 부족한 잠
○타마스:무거움, 휴식과 잠의 상징
-특징: 무기력, 혼탁한, 무거운 상태
-느낌: 둔하고 개운하지 않음
-높이는 것: 과식, 수면의 불규칙과 과다상태, 움직임 부족과 감정억압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세가지 구나가 변화하는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무조건 적인 것은 없죠. 다면적인 영향들이 있으며 이를 알아차려 삶을 아름답게 구성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