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요가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였다.
나로 살고 있나요?
다소 난해한 철학적 질문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단순하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떠한 기질적 특성이 있으며 어떤 공간을 만들고 머물고 싶어 하며 무엇에 영향을 받고 극기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세상과 닿는 나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호기심 어린 물음표로 내겐 다가왔다.
아이를 낳고 나서 가장 달라지는 건 역시 몸이었다.
출산전의 몸으로 돌아간다? 그건 글쎄다. 다만 출산과 육아를 통과한 내 몸은 보다 둥그래졌달까? 보기에도 그렇지만 몸의 성질 또한 그러해졌다. 하하하
두툼한 곡선의 형태로 변화한건 몸뿐 아니라 마음도 그러했다. 손을 쓰는 방법도 변화했는데 훈련을 통해 핸즈온(회원들의 몸을 교정할때 손을 쓰는 행위)을 할때보다 아이들을 케어하며 자연스레 손끝는 더따뜻하고 섬세해졌다. 그리고 부단히 애쓰던 시절 복근이 뚜렸했던 그때보다 지금의 내가 온순하다 느껴진다. 물론 출산과 육아로 흐트러진 몸은 바로 세우고 비뚤어진 골반은 교정해야겠지만 찬찬히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관심과 사랑을 더한다면 분명 좋아질것을 안다. 출산과 육아는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꾸준함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보여주었으니까.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나은 나에 대한 갈구가 기본적으로 있어서 자기계발 책을 무던히도 읽어댔었는데 요가를 하면서 느낀 건 자기계발이 아니라 자기 발견이었다. 자기가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 순수한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관점은 계속된 채찍질이 익숙했던 내겐 전혀 다른 접근법이자 전환이었다. 자기의 방식에 매몰되어 애쓰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타고 가며 세상과 조율할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것이 요가의 단호하고 부드러운 실제적 가르침이었다.
내게 요가와 육아는 알아차림이 어떻게 삶을 비추는지 보여준 이론과 실전이자 자기수련과 삶의 수행이었다.
요즘의 내가 가장 끌리는 단어는 담백이다.
그리고 담백한 자신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자기 자신으로 살자. 굿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