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이 되던 해, 1월 1일 요가원을 인계받아 시작한 첫날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9년, 코로나로 옮긴 곳에서 3년 , 총 12년 동안 요가원을 운영하고 첫아이가 태어나기 24일 전 마무리를 하였다. 지금은 살던 대구가 아닌 서울에서 생각지도 못한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내 생에 없을 줄 알았던 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요가원을 제안받던 시기, 베프도 같은 제안을 받았다. 성사되기 직전 그녀는 요가원을 하겠다는 마음을 놓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곧 아이가 태어났다. 가녀린 그녀는 아이를 낳고 매우 쇠약해졌는데 산후 처음 본 그녀는 핏기가 없는 얼굴에 조금 길었던 머리를 짧은 단발로 자르고 말간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그리고 몇 년간 기력을 찾지 못했다. 보는 나도 속상했다. 나보다 더 아사나를 잘했고 요가를 투명하게 받아들이고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곁에서 보아왔기에 너무 긴 시간 동안 일어서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입 밖으로 꺼내면 그 친구가 더 슬퍼할 것 같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기고 함구하며 마음으로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친구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자 그 친구는 슬슬 등산도 하고 우리가 공부했던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생활에 침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에도 그 친구에게 요가원 제안이 왔는데 무언가 시원찮게 성사가 되지 않고 뜨뜻미지근한 시간이 흘러갔다.
올해 친구의 아이는 10살이 되었고, 우리 집 둘째는 2살을 맞이했다. 그 사이 나는 모든 액세서리 없이 4년을 보냈고 머리감을 에너지도 아끼고자 초단발머리를 서슴없이 선택했고 가지고 있던 옷의 70%를 버렸고 링거 맞을 시간도 아까워 약만 타오는 아줌마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그녀가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드. 디. 어 본인의 요가원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마침 강사로 있던 곳의 요가원의 원장이 어떠한 사정으로 급히 넘겨야 했고 친구가 그곳을 운영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요가원의 사이즈나 구성도 나쁘지 않았고 위치나 시기도 적절해서 마음이 흡족하다 못해 정말 10년 묵은 체증에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하는구나!
겉으로는 담백하고 잔잔해 보이는 그녀지만 언제나 요가를 마음에 품고 사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떠한 식으로든 놓지 않고 10년이라는 시간을 그녀는 자신만의 속도와 스타일로 요가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시기가 되어 드디어 꽃을 피운 다고 생각하니 기특하고 대견하고 존경스러워졌다. 과연 성격 급한 나는 그렇게 인내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를 드러내고 내가 뛰어나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지만, 그 속에서도 전체의 조화를 위해 한걸음 물러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존재가 ‘엄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친구가 요가원을 새로 시작하는 날은 2026년 1월 1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시기 다른 임무를 교차하며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가 운영하는 요가원에 오는 이들은 내가 아는 한 가장 투명하게 요가가 투과되어 전달받는 아주 특별한 시간을 선물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모든 엄마들이 육아의 시간을 통과하며 한층 더 사려 깊고 조화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리라고 생각한다.
om shanti shanti shan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