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서 엄마로

by 이수민

40년간 딸로 살다 40살이 되어서야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다. 첫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난산이었고 태어나자마자 사경을 진단받아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았다. 소리에 매우 예민해서 두 돌이 되어서도 청소기를 돌리면 자지러졌고 덕분에 이유식을 하기 위해 돌려야 하는 믹서기는 다른 방에 가서 이불을 덮어쓰고 돌려야 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매우 호기심이 왕성했고 눈을 뜨자마자 울어댔고 네 살이 되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쾌속으로 움직였기에 아이를 따라가기에 종종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진작에 알았는지 모른다. 무언가 내가 후달린다는 걸, 달리 말하면 아이의 에너지 수준이 나보다 빠르고 높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즉,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왕성한 예민하고 겁 많은 아이… 앗, 이건 내가 아닌가? 이것이 투사인가? 나랑 전혀 다르게 생긴 첫아이의 기질이 어떻게 나랑 같은 것인가? 오늘 아침에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 안돼 마음에 심은 원칙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 얘기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돼 나의 요가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들은 조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육아에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흔들리는 자의식으로 회복을 반복해 온 나로 써는 가장 어려운 미션처럼 느껴졌다. 일관성이라… 40년 인생에 무언가 교훈은 있겠지 싶어서 일주일 정도 나름의 데이터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내가 나를 키운다면 이것만은 뿌리내려주고 싶은 세 가지를 마음에 심었다.


첫째, 가족.

말해 무엇하랴 모든 관계는 엄마로부터 시작되어 가족으로부터 확장되는 게 아닐까. 그 기반이 흔들려 평생을 헤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것도 자신의 여정이지만 가급적 부모가 된 나로서는 우선 원칙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 가족 세우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나이와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것을부터 시작이구나 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나 또한 그러했고, 가족이 각자의 여정을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니까.


둘째, 자연.

외부지향적이고 보이는 것들이 기준이 되어버리면 그것에 나를 제단하고 짜 맞추어 누구인지 모를 이를 거울 속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20대 중후반 거울명상을 했던 내가 그랬다. 집단 무의식에 쉽게 사로잡히고 쉽게 믿어버리고 나약했던 자의식으로 결국 내가 아닌 것들로 가득 채워진 나를 보아야만 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편하게 느끼는 것, 즐거운 것, 맛있는 것, 행복한 마음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부자연스러웠다. 요가를 만나고 빨래를 하듯 하나하나 새롭게 나의 취향과 호흡과 신체와 마음과 행복을 정의하게 되었는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나다운 거였구나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요가를 하며 자연에 대한 갈구와 자연에 있을때 충만함이 깊게 느껴졌다. 숲을 걷고 산책을 하고 노을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시냇물에 발을 씻으며 새로이 세포들을 깨워주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불필요하게 가식의 삶에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등원을 하다가 아이가 나무를 보거나 거미를 발견하거나 나비를 만나면 기다려주려 한다. 그리고 친정아버지가 가꾸신 시골의 힐링정원에도 자주 가보려 한다. 서울에 사는 나에게 자연과 함께 아이들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꽤나 부지런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셋째, 경험.

나름 성공하고 똑똑한 의사가 티브이에 나와서 마치 경험한 듯이 자신에게는 어떠한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자만심과 우월감에 대해 매우 놀란 적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토대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으며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우리는 나름 각자의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머리로 알아야 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데이터를 확장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견해이다. 요즘 은찬이는 “내가 할래”를 입에 달고 사는데 부글부글하다가도 한편으론 그래 그래야지 네 삶이 되지 싶기도 하다.


나의 엄마 아빠가 그러하셨듯 나의 아들들에게도 그들에게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나름 심혈을 기울여 일관된 육아원칙을 고민한 흔적쯤이라 생각했으면 좋겠다. 대를 이어 전해지는 마치 씨간장처럼 덕분에 나는 섬세하고 회복탄력성이 강한 (신랑은 유리구슬이라 놀리지만) 지금의 나와 살고 있다.

잠든 둘째 아이 곁에서 새로 마련한 아이패드와 키보드로 한결 수월하게 글을 쓰고 있는데 참 안온하다. 그리고 이 여유의 시간, 우리의 아이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이 나는 걸 보니 나도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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