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자의 일상 철학 083
1.
“나는 사십에 은퇴하고 작가가 될 것이다.”
나의 20대. 내가 대학 2학년 재학시절 내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던 나의 미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빨리 성공하고 일에서 은퇴하여 즐기려는 그때의 나는, 요즘 말하는 MZ세대 파이어족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아니었을까요?
마흔을 일 년 앞둔 십 년 전, 계획대로라면 지금 나는 대양주 어딘가에 여가 주택(세컨드 하우스)을 두었을 겁니다. 한국과 두 나라를 오가며 글 쓰는 작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화장실 빼고 모든 게 은행 네 것인 집에 살며 여전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애란이 부른 <백세인생> 가사처럼, 십 년 전 사십, 지금의 오십 또한 젊은 인생입니다. 은퇴하기엔 빠른 이릅니다. 그때 내 청춘의 눈으로는 시대가 급변하고 인간 수명이 길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내 계획은 시행착오였음을 인정하고 다시 내 미래를 수정합니다. 은퇴 시기 십 년 연장과 함께 꿈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확대되었습니다.
2.
“나는 오십에 작가가 되어 자유로운 유목민이 될 것이다”
내 나이 사십. 자유로운 디지털 유목민이 된다는 것은, 가족과 직장으로부터 시간과 공간적인 독립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경제적인 여유나 독립이 뒷받침되면 금상첨화겠지요. 재별이나 상류층만 한 돈을 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족하면 먹고살만합니다. 밥만 먹고살 수는 없겠지요. 외식도 하고 놀러도 가고 친구도 만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초생활비 외에 여가 돈이 필요합니다. 그것까지 해결되어야 내가 꿈꾸었던 자유로운 디지털 유목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가볍게 보면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영감을 입힌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들이면 예민하고 섬세한 행위이며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창조예술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양육환경에서 워킹맘인 나는 한가로이 글이나 쓰고 있을 시간과 여유가 없습니다.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사치이고 엄마 의무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핑계가 아니고 현실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나의 양육자와 워킹맘으로서 은퇴는 두 아이 중 하나만이라도 미성년자 꼬리표를 뗄 무렵으로 정했습니다. 엄마로서 직접적인 책임과 보육에서 벗어나도 괜찮을 시점, 즉 아이 고등학교 졸업이 그 시기였습니다. 은퇴를 위한 남은 십 년은 나의 글쓰기가 시작되는 시점이고, 작가가 되기로 한 결심이 실천되는 시기였습니다.
작가로서, 특히나 글을 쓰는 작가로서, 작업한다는 것은 작업 환경을 내 의지대로 옮기고 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과 사무실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나는 글을 쓰는 공간이 자동차 실내 운전석, 아이들 학습 센터 대기실, 가끔 카페였습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지금처럼만 유지해도 글 쓰는 환경은 나름 나쁘지 않습니다. 작가가 더 좋은 창조 공간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면 여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당장 일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글 쓰는 작업이 잘 되면 용돈은 벌 수 있고, 혹시라도 더 잘 되면 생계유지도 가능하며, 하늘이 도우면 베스트셀러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먹고살아야 하는 일차적인 생계유지를 위해 일했습니다. 나 같은 무명작가, 습작생이 글만 써서는 먹고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양육을 책임질 고정수입을 위해 일해야 했고, 이 시점이 끝날 무렵이 독립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십에는 그동안 해오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해서 먹고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오십에 작가가 되기로 했고, 나는 오십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3.
“나는 나의 꿈과 시간을 디자인할 것이다”
오십이 되었습니다. 이번엔 돈이 아닌 시간을 중심으로 인생을 디자인하며 4444법칙을 만듭니다. 제2 인생 준비를 위한 책을 쓰고 읽는 4시간, 먹고사는 생계형으로서 일하는 4시간, 아이와 가정을 위한 엄마로서 지내는 4시간, 사람을 제2의 재산으로 삼아 함께 운동 여가 취미 공부하는 4시간. 완벽주의는 아니지만, 슈퍼우먼의 로망을 버리지 못하는 워킹맘은 일단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바빠서 힘들어도 불평이나 핑계는 없습니다. 다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모구 해내기에 모자란 시간을 이래저래 짜내어봅니다. 가족이 일어나기 전 이른 아침 두 시간과 모두 잠든 후 늦은 밤 두 시간, 합하면 4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요즘은 늦은 밤까지 자지 않고 시간을 보내 새벽 시간보다는 밤시간을 이용합니다. 이때는 책과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오후 출근자인 나는 집안일이 끝나는 늦은 오전부터 오후 출근 전까지 4시간이 생깁니다. 이때는 여가 취미 무엇이든 배우며 공부합니다. 오후엔 출근해서 4시간 동안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깝다 하며 먹고사는 일에 집중합니다. 퇴근하고 저녁이 되면 가정주부로 변신. 두 아이를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공부 봐주고 엄마의 시간으로 4시간을 채웁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선물은 바로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입니다. 재벌이라고 25시간, 소외계층이라고 23시간, 청년이라고 26시간, 어린아이라고 23시간 각각 다르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남녀노소 상하계층 구분 없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시간은 쓰지 않고 쌓아둔다고 복리 이자가 붙거나, 알차게 썼다고 세금 내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각자 주어진 시간을 계획대로 디자인하고 써야 합니다.
4.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내 꿈은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화법을 잃어버렸습니다. 꿈은 움직이는 겁니다.
“내가 움직여야 한다고, 뭐라도 해 봐야 한다고, 목표와 계획만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 것은 쓸모없는 거다. 뭐라도 해봐야 한다. 하는 동안 실패란 없다. 실패하지 않는 인생으로 살려면 뭐든 해야 한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소중하게 가슴속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것,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는 것, 손에 잡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그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어야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나름대로 내 인생 계획을 세워 달렸고, 다시 수정해서 달리는 중입니다. 달리다가 쉬어야 할 때도 있고 걸어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다시 수정하겠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내 속도를 조절하며 달리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잘 살아가겠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고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알 수 없는 게 인생입니다. 넘어졌다가도 금세 일어나려면 오래 달리려면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야 하고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곳에 시간이란 마감을 두고, 시간이란 흐름을 인지하며, 시간을 디자인하고 성장해 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