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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Sep 20. 2023

나는 왜 쓸까요? 3. 읽으려고 씁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82


1.

나는 무엇을 쓸까요?

일차적으로는 기억을 위한 메모입니다. 어릴 적 엄마는 학교 가는 나에게 집에 와서 해야 할 일을 쪽지에 적어두었습니다. 지금처럼 포스트잇이나 편지지 메모지는 아니었습니다. 광고지 뒤에 몇 자 쓰거나 노트에 적어서 펼쳐두었습니다. 학교 잘 다녀왔니? 오늘은 어땠어? 하는 인사는 한 줄도 없었습니다. 저녁에 연탄 배달 오면 지하실 문 열어주기, 교복 빨아서 널기, 이삿짐 넣을 빈 박스 모아놓기. 뭐 이런 거였습니다. 


가끔은 엄마가 한 말이 기억나지 않아 애먼 나만 혼자다 보니 그것이 억울해서 엄마가 써 놓은 종이는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습니다. 모아놓은 종이가 쌓이다 보니 메모 뭉치를 보관할 집게가, 그것들을 담아 둘 상자가 필요했습니다. 메모지를 모으고 보관하다 보니 어느새 분류를 할 정도였습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심부름이 적힌 종이, 주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적힌 종이, 그중에서 예쁜 종이나 편지지. 이렇게 저렇게 나누어 상자에 담아 보관하더니, 어느샌가 나는 엄마가 끄적였던 종이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후 내 일기장 메모지 다이어리는 색볼펜과 스티커로 꾸며졌습니다. 그러면서 쓰고 가꾼다는 것에 즐거움을 알았습니다. 요즘 말로는 다꾸라고 다이어리 꾸미기가 소확행으로 유행하기도 하지요.



2.

나는 왜 쓸까요?

대학에 들어가면서 과제와 학습을 위한 글쓰기를 했습니다. 목적과 방향에 맞는 글쓰기를 하게 되었고 취미생활인가 싶더니 직업으로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돌고 돌아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앉았습니다. 결국에 책을 내는 작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재미있고 신나는 취미 정도였습니다. 이후 제대로 된 글을 쓰자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고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으면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쓰지 않으면 읽지 않아도 되고, 읽지 않으면 시간이 남을 것이고, 남는 시간에는 영화 보고 나들이 가고 뭔가 다른 취미를 가졌을지 모릅니다. 왜 나는 찰나를 즐기지 못하고 지금 여기서 마음과 아웅다웅 다투고 있는 걸까요? 나가지 못하는 글을 붙들고 발만 동동 구르며 시간을 재촉하는 것일까요?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요?


나를 들여다보는 도구는 다양합니다. 오로지 물성에 의지해 겉모습부터 볼 수 있는 거울이 있습니다. 나의 외모와 표정으로 외형적인 남들의 평판이 가능한 도구입니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오감 모두가 나의 근본이며 원천입니다. 부인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본연의 나입니다. 나의 취미생활, 직업으로도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수준을 들여다봅니다. 사적인 관찰에서 공적인 평판이 가세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조합하면 나입니다.


그 많은 도구 중에서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보고 관찰하고 찾습니다. 처음부터 나를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반성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쓰는 동안 그 안에 내가 보였고 나의 문제가 보였고 해결도 제시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쪽지나 메모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 내가 쓴 글은 내가 읽는 최초의 독자이고 최다 팬이 될 것이며 글 속의 의미나 전개를 책임져야 하는 위무를 지닌 사람이 됩니다.


3. 

읽으려고 씁니다.

나는 쓰는 동안 여러 번 내 글을 읽어 내려갑니다. 초고에서 퇴고를 거쳐 완벽하지 않은 글에 최대한 완벽하려고 노력합니다. 완벽은 아니더라도 완성만큼은 해내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몇 번은 더 읽게 됩니다. 그래서 나를 들여다보고 그것에 감동과 위로를 받습니다. 내가 쓴 글은 내가 가장 잘 압니다. 네가 얼마나 잘 쓴다고? 웃을지 모르겠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내 글 내 이야기에서 가장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잘 써야 합니다. 못 쓴 글 안 좋은 글을 읽으며 치유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좋은 글, 괜찮은 글을 완성하려면 다른 사람의 글을 보아야 합니다. 나와 소재가 같은 글은 어떻게 전개하는지, 나와 주제가 같은 글은 어떻게 구성하는지 비교합니다. 장사와 경영처럼 글쓰기도 벤처마킹을 하는 겁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울 때 다른 집에서 어떻게 하는지 구경하고 관찰하고 상담하고 모방합니다. 글을 쓰는 동안 남의 글도 읽습니다. 잘 쓴 글 좋은 글은 읽어보고 밑줄 긋고 따라서 써봅니다. 그리고 내 글에 활용도 하고 그러다 보면 의도하지 않고도 내 글 속에 스며들어 갑니다.


적극적인 글을 쓰는 행위, 책을 내는 것은 성직자처럼 전문가처럼 과정은 성스럽고 섬세하며 결과에 책임져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합니다. 내 글도 남의 글도 읽습니다. 그래도 내 글을 내가 가장 많이 접하게 됩니다. 나는 내 글을 읽으려고 씁니다. 그리고 내 글에서 공감하고 위안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그 느낌을 다른 사람도 공감하고 위로받으라고 책으로 내보입니다.


기록과 치유를 위한 메모는 글이 되고, 글이 모여 책이 됩니다. 내 안에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읽으려고 씁니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내 글을 읽으려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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