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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Oct 02. 2023

수필은 산문시가 아니라 산문입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94



1.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글 하나 써오라고 하면, 긴 글은 써본 적이 없어서 그나마 짧은 글이라도 써야 하니 시 한 편 써옵니다. 글쓰기나 문예 창작 수업에서도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짧은 글부터 써보자는 생각으로 시 창작반에 등록합니다.


처음 글을 접하는 사람들은 짧게 쓰는 게 쉽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원고지 한 장을 채우는 것과 10장을 채우는 것 100장을 채우는 것은 숫자상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체감가능한 것입니다. 원고지 한 장은 채웁니다. 그래서 시는 짧게 써도 되니 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문학적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어렵고,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는 어찌어찌 쓸 만하고, 시는 그나마 덜 어렵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래서 글쓰기반 하면 시작반이 시창작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 근거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엄연히  장르가 다르니 쓰는 문체와 구성과 여러모로 다른 것인데 쉽고 어렵고 레벨이 장르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물론 이런 말은 일부의 의견이라 생각하렵니다. 굳이 세 개의 반을 나눈다면 시반이 가장 고난도 반이라고 생각합니다.


2.

수필 혹은 에세이라 불리는 이런 장르는 산문에 속합니다. 소재와 주제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따라 수필 종류가 나누어지는데 요즘은 수필과 에세이를 같은 장르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 나를 둘러싼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 일기나 편지 혹은 여행 후기 등도 모두 에세이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수필은 이런 소재를 가지고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씁니다. 때에 따라, 같은 소재라도 주제에 따라 개인적으로 가볍게 혹은 공공적으로 다소 무겁게 접근합니다.


시는 에세이와 같은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표현 방법과 형식에 의해 쓰는 글입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과 의미에 따라 함축과 은유를 사용합니다. 거기에 운율을 맞추어 리듬감도 살려야 합니다. 요즘은 산문시라 하여 표현법과 형식이 자유롭긴 하지만 엄연히 시의 형식과 요소가 있으니 이에 맞는 글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기본기를 닦은 후, 고전시든 산문시든 서사시든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글쓰기가 너무 부담스럽다면 자유시라 하여 부담 없이 가볍게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글을 쓴다면 시보다는 산문 에세이를 권하고 싶습니다. 일기, 편지, 상품평, 체험 후기, 리뷰, 리포터, 칼럼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에세이를 쓰면 기본적인 문장 형식과 표현을 익힐 수 있습니다. 주어 목적어 보어 서술어를 배열하는 것만으로도 문장 기본기를 익힐 수 있습니다. 그렇게 쓴 문장을 묶으면 문단이 됩니다. 그 문단을 처음 중간 끝 순으로 이어 붙이면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주제를 명확히 하고 앞, 뒤로 구성을 하면 완성된 글, 하나의 원고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에세이가 쓰기 쉬운 글, 쉽게 쓰인 글은 결코 아닙니다.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시작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시보다는 에세이가 편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고를 쓰고 수정하는 단계에서 늘리기는 쉽지만 줄이기는 어렵습니다. 삭제해야 할 때는 쓰는 동안 고심했던 기억에 미련이 남아서 두 눈 꼭 감고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시를 에세이로 늘리는 것이 맘 편할 것 같습니다.



3.

내가 엄마를 소재로 책을 내고자 했을 때는 제목도 장르도 <엄마 詩>였습니다. 그러나 에세이로 장르를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시나 메모로 짧게 쓰인 초고는 마치 글을 쓰기 위해 모아둔 재료 같았습니다. 이제부터 뼈대 위에 살을 붙이고 근육을 만들어 보기 좋게 매끈한 글로 탄생시킵니다. 


양으로 보면 원고지 5장을 족히 20장 정도 늘려야 합니다. 함축과 은유를 풀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다 풀어헤치면 속이 다 드러난 뻔하고 재미없는 글이 됩니다. 적당히 가리고 숨기고 그러면서 드러내야 하는 겁니다. 소재도 이야기도 주제도 있는 표현 양식과 기술로 요리해야 합니다. 


내가 쓰려는 글의 주제 대상 의도를 아는 것만큼 내 글의 장르를 알고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 알고 씁시다

시:일정한 형식에 언어적 음악적 회화적 요소를 통한 문학 작품이다 

산문: 자유롭게 쓴 글 모든 문학까지 포함한 글쓰기다

수필: 인생 자연 생활에서 경험과 생각을 쓴 문학적 글쓰기다

중수필(에세이): 지적 사회적 논리적 객관적 성격을 띈다

경수필(미셀러니): 감성적 주관적 개인적 정서적 성격을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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