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하 Sep 18. 2023

​나는 왜 글을 쓸까요? 1. 이기려고 씁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80


1.

作家

작가,  시가 소설 회화 조각 따위 예술품의 제작자, 특히 소설가를 일컬음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작가 안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유화든 수묵화든 그림을 그리는 사람, 손글씨든 붓글씨든 종이나 그 무엇에 써내는 사람, 춤도 음악도 그러하고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만들어 내는 사람, 예술품을 창조하여 제작하고 보여주는 사람 모두가 작가입니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내고 그것으로 다른 활동을 넓히겠지만 가운데 나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직업은 작가가 될 것입니다.



2.

나는 왜 쓸까요? 글 쓰는 동안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요? 누군가는 책 내서 베스트셀러가 되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쓰는 거라 합니다. 내가 아는 한, 글을 쓰고 책을 내서 큰 부자가 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책을 내고 외부 활동으로 돈을 버는 경우는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가뭄에 콩 나듯 하면 글 하나가 책 자체가 돈이 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돈을 버는 것이 목표라면 지금 하는 일에 시간을 더 할애하면 됩니다. 내가 하는 일은 시간대비 수입을 늘리는 일이니 내 영역의 시장에서 열심히 많이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하는 일을 줄이고 글 쓰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그러니까 왜 나는 글을 쓸까요?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닌데 왜 나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글을 쓰고 있는 걸까요?


내가 글을 쓰면 사는데 유익할 것을 알아차린 것은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할 말 다하는 애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상대를 배려한 말이나 선의의 거짓말이 가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때문에 일부러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선하답다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남 시선을 염두에 두거나 눈치 보지 않고 나의 기분과 의견을 표현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까지는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이나 속담 격언을 메모하고, 일기장에 적어두는 습관 덕분입니다. 어른들은 나를 어른스럽다고 칭찬했고, 친구들은 나를 또래보다 성숙한 꼬마 철학자 같다고 평가해 주었습니다. 그에 상응하려고,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좋은 글을 메모해 두었다가 적재적소에 내뱉었습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메모와 일기 쓰기 덕분이었고, 그때 그 글들이 타인의 책에서 베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 것이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비해 성숙했고 애늙은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여고생인 나는 '나의 단어, 나의 문장, 나의 말'을 갖고 싶었습니다.



3.

내가 당당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글을 쓰는 데는 성격이 한몫을 합니다. 나는 매사가 급하고 작은 일에도 흥분을 합니다. 좋으면 좋아서 호들갑을 떨며 하하거립니다. 슬프면 슬퍼서 훌쩍거리고 대성통곡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나서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씩씩댑니다. 좋게 보면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고, 나쁘게 보면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복합적인 갖가지 성격과 감정을 나는 거의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나의 감정 표현이 분위기를 띄우고 주변을 화기애애하게 만들곤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불에 기름을 붓듯이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상대가 한참 화가 나서 씩씩 거리고 있는데, 나중에 말해도 될 것을 그때 정곡을 찔러 쏘아댑니다. 사람의 감정을 터뜨리고 심지어 폭발시켜 상황의 최악에 이릅니다.


논쟁이나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말다툼에 끼이는 일도 있습니다. 평소 표현이 단도직입적이던 나는 상대에게 일단 내지르고 일방적인 쏘아붙임으로 시작합니다. 기선 제압하겠다는 요량으로 말이지요. 그러나 강하면 부러집니다. 흥분한 상태로 내 입 밖으로 터져 나온 말은 주워 담기엔 늦어버렸습니다. 나도 내가 무슨 의도로 내뱉었는지 순간 모르고 저지른 것이지요. 상대는 당황하거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제 상대방의 역공이 시작됩니다. 아주 차분하게 조용히 천천히 말이지요. 일목요연한 상대의 말에 나는 설득당하고 부끄러워집니다. 상대와 이야기할 때는 꼭 논쟁과 싸움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입니다. 성질이 급하고 흥분만 할 뿐 차분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하니 조목조목 따지거나 설명하여 상대를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게 어렵습니다. 시작은 거창하지만, 마지막에는 기운만 빠지고 상대방에게 제압당하듯 설득당하고 맙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고 고요함이 함성을 이기는 격이지요.



4.

그래서 쓰기로 했습니다.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고 외워서 연기하듯 말이지요. 나는 내가 할 말, 따지고 물어야 할 말, 을 종이에 적습니다. 큰 거래나 중요한 일에는 주어 동사를 붙이고, 감정과 표현까지 추가해서 시나리오를 씁니다. 그리고 읽습니다. 그러고 나면, 상대를 대할 때 흥분된 마음이, 급한 성질이 좀 가라앉습니다. 물론 글을 쓰는 동안, 욱하는 상황을 예상하고 벗어나 나를 들여다봅니다. 그런 면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보호한다는 것은 상대로부터 공격에 맞서는 것이고 상처를 보듬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이렇듯 나는 나의 흥분과 욱하는 마음을 이겨서 내려놓게 하려고 글을 씁니다. 결국 남을 이기는 결과를 낳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여우각시탈이 아닌 여우를 떠올렸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