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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Sep 13. 2023

글을 정화시키고 포장할 수 있습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75


1.

"야! 적당히 해. 너 어디 말하는 학원 다니냐?"


학창 시절 진짜 말 잘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도 이 친구가 하면 배꼽 빠지게 웃깁니다. 얼굴 표정과 몸짓을 흉내 내고 목소리까지 변조합니다. 그러니 쉬는 시간 그 친구 주변은 항상 북적였습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려도 시끌벅적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불행하게도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고 선생님에게 언제나 가시였을 겁니다. 그 목에 걸린 가시는 친구를 향한 이 한마디로 내배어졌습니다. 


"말만 뻔질나게 하는구먼. 너 잘되면 변호사! 안되면 사기꾼이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건너 듣기로는 자영업자, 가게 사장님이 되었답니다. 뒷말하기 좋아하는 친구 표현을 빌리자면, "역시나 말발로 가게가 잘 된다"고 합니다. 나도 동네 장사해봐서 아는데, 가게운영이 말발만으로는 가능치 않습니다. 성실하고 노력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 친구 가게가 잘 된다는 것은, 장사 잘한다!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장사수단이 좋다!고 포장해주고 싶습니다.



2.

사촌 언니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내가 책을 내고 나서 만났으니 당연 책 이야기가 디저트입니다. 오래전, 사촌 언니의 친구가 책을 냈는데 격려 차원에서 책을 몇 권 사서 지인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일단 선물은 받으면 좋습니다. 선물하는 사람이 받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고 제 때에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선물이 부담일 때가 있습니다. 기대 이상의 큰 선물일 경우입니다. 선물이라는 게 받고 입 닦을 수만은 없으니 언젠가 마땅한 기회에 갚아야 합니다. 그러니 너무 큰 선물을 받으면 순간은 좋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부담스럽습니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선물이면 사탕 하나도 좋은 겁니다. 그런데 꼭 선물이 좋은 것만은 아닐 때가 있습니다. 경품 응모에서 시가 30만 원이라는 1등 홍삼보다는 2등 오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나 3등 커피 한잔 쿠폰이 반가울 때가 있습니다.


선물에도 선호도가 있고 개인에 따라 피하고 싶은 종류가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 선물은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 선물은 공부 안 하는 학생에게 교과서 던져주는 격입니다. 아무리 교훈적이고 베스트셀러라 해도 책을 안 읽는 사람에게는 어떤 귀한 책도 한낱 종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내가 책 냈다고 책 사서 읽으라는 말은 참 어렵습니다. 먼저 사서 읽어준다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사촌 언니는 "책 하나 줘봐라." 합니다. 국문과를 졸업하고 국어 선생님을 한 사촌 언니는 평소 책을 많이 읽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독서 관련해서 조언자이며 조력자였습니다. 그러니 책을 건네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둘러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니 글솜씨가 형편없으면 혹평할 게 불 보듯 뻔합니다.  "읽어보고 괜찮으면 몇 권 사마" 합니다. 더는 안사도 좋으니 직격탄만 맞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 앞섭니다. 



3.

"수고했어. 나쁘지 않네. 포장도 적당히 했고."


피곤해 일찍 자려고 누웠다가 책 주인공인 고모 이야기가 궁금했답니다. 몇 쪽만 읽자 했는데 반 이상을 읽었다고 합니다. 문체가 깔끔하니 읽을 만하다 합니다. 휴, 일단 합격입니다. 


평소 둘이 만나면 워낙 서로에게 솔직하다 보니 정화되지 않는 단어들이 튀어나옵니다. 나름 나도 독자를 두고 쓴 책이니 글에서는 그런 직접적이고 걸러지지 않은 단어 대신 보이는 적당한 단어들로 대체했겠지요.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만 걸러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냥 내지르면 작가가 아니라고. 그런 면에서 포장도 필요하다고 격려를 덧붙입니다. 글을 쓸 때는 솔직하자 다짐합니다. 하지만 거칠고 모난 것을 거르고 다듬고 포장하는 것, 그게 또 글을 쓰는 작가의 본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식적이거나 거짓이 아닌 정제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아무튼 이번 책이 나쁘지 않다니, 선물해도 창피하지 않겠다니, 다행입니다. 오늘 문과생의 내 책 서평은 안도의 한숨으로 일단 통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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