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자의 일상 철학 092
1.
수요일 아침 8시 30분, 대전역 선상 주차장 도착.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 탑승
일정대로라면 지금 시각 나는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 책 한 권을 읽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여기는 어디? 네! 나는 지금 나의 집 거실에 앉아있습니다. 이 시각 나는 왜 내 집에 있는 걸까요?
2.
오늘 일정을 위해서는 지난주에 네이버 예약을 해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습니다. 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니었나 봅니다. 나의 네이버 예약창 어디에는 예약 상항 없음. 요즘 일정을 잡으며 힘들고 당황스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인터넷 예약입니다.
옛날 반백 살이면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지금 나이 오십에 인터넷과 핸드폰 사용이 서툴고 이를 겁먹는 어른이 있습니다. 집안 가전제품이나 사무실 전자기기 앞에서 공포마저 느끼는 기계치, 기계 젬병이라 소문난 사람. 핸드폰의 장점과 편리성을 목전에 두고도 배우고 싶지 않다는 귀찮음을 내세운 사람. 아이의 단체 여행 보험료 720원을 은행 창구에서 수납하며 수수료 1500원을 납부하고, 카톡으로 전화가 오면 사기꾼이라고 전화기를 엎어 두고, 인스타에 DM이 들어오면 내 신상이 털렸다고 불안해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인터넷 예약을 한다는 게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찌어찌해서 처음 두 번은 인터넷으로 예약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이제 좀 할 만한가 하던 순간에 다시 내 머리는 먹통이 되었나 봅니다. 분명히 예약한다고 했는데 예약 창에는 예약 없음으로 나옵니다. 하.
3.
오늘 아침, 8시 30분 열차를 타기 위해 8시 20분 대전역 플랫폼에 도착했습니다. 탑승 5분 전, 타는 곳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열었습니다. 서울 다닐 일도 기차 탈 일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주 같은 장소를 갈 때때마다 열차 타는 곳, 열차 번호, 좌석 번호를 재차 확인합니다.
낯선 서울 여정은 가고 오는 풍경을 바라봄이 아니라, 열차와 지하철 방향을 바라봄입니다. 가고 오는 데만도 신경이 곤두선 사람이 예약까지 하려니 쉽지 않은 여정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노고 끝에 역에 도착하고 이제 열차에 발을 올리려는 순간. 아! 코칭 예약 창에 무엇도 예약 내역이 없습니다. 내가 없습니다. 취소도 아닙니다. 나는 처음부터 예약한 적이 없었던 겁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전쟁터에서 칼도 뽑아보지 않고 말고삐를 당겨 돌아가는 장수처럼 맥 빠지는 일을 내가 하고 있습니다.
4.
오늘 하루 어디 가서 뭐 하고 놀지? 운전대를 잡고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옵니다. 일단 집으로 들어와 거실에 앉으면 다시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여행도, 외출도, 집 앞 마실도 마다하지 않는 나지만, 꼼짝 않고 칩거 생활도 능숙하게 잘합니다. 일 년에 여름, 겨울 한 달 스님들 하안거, 동안거를 흉내 내며 놀아본지라 집에서 머무는 맛을 압니다.
침대나 소파와 한 몸 되어 드라마 정주행도 괜찮습니다. 나 혼자만을 위해 평소 먹고 싶던 음식을 요리하는데 기꺼이 시간과 노동을 씁니다. 집 안 구석구석 물건을 정리하고 화단을 정돈하는 것으로 에너지를 얻습니다. 단순히 집에서 빈둥거리지 않는 명랑한 은둔자의 본성은 역마살이 있는 걸까요? 이렇듯 집에 있어도 바닥에 궁둥이 붙일 시간이 없습니다. 아마도 내 역마살은 팔자요 만성질환 그런 건가 봅니다. 오늘은 일단 집에 있기로 했습니다.
5.
거실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습니다. 아침에 들고나갔던 커피 담긴 텀블러를 가방에서 꺼내 노트북과 함께 테이블 위에 올립니다. 노트북을 열고 원고를 읽어 내려갑니다. 소리를 내어 읽고, 대화가 들어있는 원고는 부산 사투리를 흉내 내 연기하듯 읽습니다. 코치는 원고 수정할 때 낭독, 소리 내서 읽을 것을 추천했습니다. 평소 존경하는 어르신도 좋은 글은 소리 내어 읽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나는 원고를 수정하거나 기도를 할 때 낭독을 곧잘 합니다.
내가 읽는 나의 수필은 낯설고도 설렙니다. 이번 수정은 운문으로 썼던 원고를 산문 형태로 변환하기입니다. 운문에서 산문시로 옮겨볼까 제안했더니 그냥 산문으로 가자고 합니다. 좋습니다. 운문이 산문이 되는 것은 운율을 펼치고 주어 동사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에 떠다니던 함축된 것들을 늘어짐 없이 펼쳐야 합니다. 묘사와 서술이 적절히 더해져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말장난이 아닌 글짓기가 되어야 합니다.
평소 써두었던 읽은 책 속의 문장을 소환합니다. 멋지다 싶었던 문장 모음 몇 장을 읽고 나면, 그렇지 하는 모방과 창조 사이에서 글 보따리가 열릴 듯 닫힐 듯합니다. 얼른 골라내 내 글에 더해봅니다. 운문이 산문으로 옮겨지는 것이 무조건 더하고 길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함축과 절제도 산문에는 필요합니다. 주어와 동사와 보어와 목적어 그리고 수식어구가 적절히 교차하면 쉽고 간결한 형태를 보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충분합니다.
6.
‘어서어서 건너 지이다’라는 기도문처럼 ‘어서어서 문장을 다듬고 이야기를 마무리하여 한 꼭지 한 꼭지 넘깁니다. 잠시 쉬어갈 때는 점심을 차려 먹고 책을 조금 읽습니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켜고 마감 시간에 쫓기듯 시간을 정하고 원고 수정을 합니다. 잘하든 못하든 완주가 목표입니다. 다시 쉬는 시간이 오면 커피믹스 두 개 넣은 커피잔을 들고 소파에 가서 조금 전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칩니다.
노트북이 놓인 테이블과 커피잔이 포개진 식탁을 세 번 왔다 갔다 하니 벌써 저녁 9시. 아이들이 올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도 명랑한 운동자는 칩거하며 작가 놀이를 끝내고 막 퇴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