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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Oct 03. 2023

나는 책과 놉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95

1.

나는 애서가愛書家입니다. 애독가愛讀家는 아닙니다.  나는 책을 좋아합니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과 함께 노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책이 좋아서 책과 놉니다.  나는 책을 다루고 대하고 함께 하는 나만의 유희법이 있습니다. 책을 취미 시간 때우기라고 말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귀한 시간 내서 책을 들었는데 어떻게 단순히 시간이나 때우려고 책을 읽는다는 건지 사실 이해되지 않습니다.


나는 책 한 권을 들일 때 하나의 영화, 연극, 미술관람처럼 작품을 대하듯 합니다. 보통 한자리에서 한 권을 읽습니다. 반나절 독서, 수요 독서, 열차 독서 뭐 이런 이름을 붙여서 공간과 시간을 제한합니다.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 두어 시간 자리에 앉아 모든 소음과 방해물을 차단하고 집중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정해진 시간과 장소, 그리고 자세도 바르게 합니다. 시간이 남아서 잠깐, 일하는데 필요해서 참고사항으로, 편하게 침대나 소파에 누워서는 읽지 않습니다. 나와 같지 않다고 뭐라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내 독서의 성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학생이 교과서를 대하듯 성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책에 어울리는 시간과 장소와 나의 옷매무새와 태도까지 정하고 독서에 들어갑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대체로 그렇습니다.  


일단 책을 펼치면 제목, 앞 뒤 겉표지, 띄지, 책날개에 부가된 저자소개나 붙임말을 읽습니다. 그리고 목차를 훑고 처음부터 읽습니다  순서 없이 읽을 만한 시나 에세이도 꼭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습니다. 분명 목차를 정하고 나열한 데는 작가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포스트 잍을 붙입니다. 다 읽고 난 뒤에는 밑줄 그은 문장을 컴퓨터에 필사하면서 그 문장에 관한 한 줄 느낌을 적어둡니다. 보통 이런 것을 정약용의 독서법 중 초서라고 합니다. 적어 둔 문장을 며칠 뒤 다시 읽으며 그중 나의 처지와 상황에 맞거나 나에게 꽂힌 몇 개의 문장을 빌어서 느낌과 함께 내 독서일지에 기록합니다. 그리고 한 주 한 권 내가 속한 독서모임 혼독함공에 독서일지를 올려 인증합니다.


3.

책과 노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책을 고르는 기준이 좀 그렇습니다. 나는 법정스님과 헤르만헤세와 그 외 손에 잡히는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정리에 관하거나 철학적인 에세이를 제외하면,  작가주의나 특별히 선호해서 읽는 장르가 없습니다. 책 표지가 예쁘면 읽습니다. 읽고 좋았던 책이 이후에 개정판, 한정판, 초판본이 나오면 재구매하여 다시 읽습니다. 책을 쌓아두지 않으려고 다 읽은 책은 어울리는 사람에게 전달하거나 일 년에 두어 번 모아서 중고서점에 내놓습니다. 한 해 읽은 책 중 한 권을 선정해 종교서적과 함께 해마다 같은 책 다시 읽기를 합니다. 그렇게 추가한 책이 쌓여서 해마다 읽어야 할 책 수가 늘었습니다. 쓰는 동안, 연금술사,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법정 스님과 헤르만 헤세 책, 불교성전, 지장경, 숫타니파타, 올해 또 한 권이 늘겠지요.


4.

책을 읽기 전, 읽는 동안, 읽은 후 그 책에 대한 콘셉트를 잡습니다.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권에는 루셀 군인이 등장합니다. 그해 가을과 겨울엔 주야장천 트렌치코트를 입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에는 당연 모두가 아는 홍차와 마들렌이 나옵니다. 1권을 읽었던 몇 해전 1월에는 모든 모임을 홍차집에서 했습니다. 홍차를 공부하고 홍차티팟이 있다는 곳은 가까스로 구경을 다녔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혹은 읽은 후 책 속 재미난 부분을 따라 하고 등장하는 인물이 되어 그처럼 옷을 입고 행동하고 사고합니다.

❝마들렌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어린 시절 이후로 그 입술에 닿은 적이 없었던 따라서 이후의 연상에 의해서 변질되지도 않은 채로 남아 있던 케이크 하나가 졸지에 그를 풍부하고도 친밀한 기억의 흐름 속으로 들어서게 해 준 것이다. 새로 발견한 경위감을 품은 채 그는 레오니 고모네가 예전에 살던 낡은 회색 집을 콩브레 마을과 그 주변을 회상한다. 그 기억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가 결국 서술하게 된 소설은 어떤 면에서 완전하고 확장되었으면서도 제어된 프루스트적 순간이다. ❞


이런 세부 사항들은 마들렌이 단순한 회고의 순간보다는 음미의 순간을 환기시킨다고 서술해야 한다니 나도 작가의 의도를 따릅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2권 전권을 읽으며 살롱 마담을 꿈꾸고 요리와 손님상차림에 관심을 둡니다. 책에 언급된 프랑스 요리에 도전합니다. 라구는 어려운 음식이라고 생각해서 매번 라구 전문점에서 소스를 사다 먹었습니다. 급하게 먹고 싶은데 당장 살 만한 곳이 없어서 이참에 해 먹기로 했습니다. 해보니 할만합니다. 아이들도 대박! 맛있다! 합니다. 성공입니다. 나는 이래서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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