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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Oct 04. 2023

불편한 질문과 배려한 질문은 다릅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96

1.

명절에 가족 친지 식구가 모이면 묻지 말아야지 하면서 으레 물어보는 게 있습니다. 결혼을 했다면 "애는 언제 낳을 거니?"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취준생이라면 "취업은 언제 할거?" 정해 놓지 않은 것에 기한을 정하라는 듯, 꼭 "언제"에 집착해 질문합니다.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옆에서 눈치를 주면, 오랜만에 만났으니 궁금하고 걱정이 되어서 묻는 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 합니다. 다시 그 말에 상대가 불편할 것을 모르고 말이지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당사자만 난감할 뿐이지요. 당사자도  모르는 이 답을 상대에게 명백하게 설명할 수 없음이 답답할 뿐입니다. 그러니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법한 질문과 걱정은 접어두었으면 합니다. 물론 나의 바람이 어른들에게까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2.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꼭 알고 싶은 것 중 하나, 때로는 알아야 하는 것 중 하나. 바로 "무슨 일 해?"입니다. 서로 신상을 알고 만나는 경우도 있고, 만나려다 보니 미리 알아두기도 합니다. 우연히 혹은 준비 없이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나오고 질문을 통해 알게 됩니다.


나이, 사는 곳, 결혼 유무, 이런 것은 묻기 꺼려지지만 그래도 족보가 꼬이지 않으려면,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 눈치라면 괜찮습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취미, 여가활동 하는 일을 묻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무슨 일 해?" 질문에는 그 사람의 성향과 성격 관계 유지에 있어서 알아두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일해?"는 좀 다른 질문입니다. 그 사람의 수준 수치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보일 수 있습니다. 일하는 곳을 묻는 것은 마치 집의 규모나 연봉을 묻는 듯 멀쑥하고 낯 가려울 수 있는 겁니다.



3.

가령, 학부모 모임에서 아이들 공부와 학원이야기는 필수면서 이런 정보 때문에 나가기도 합니다. 학원이야기를 할 때면 "요즘 무슨 학원 다녀?" "거기서 뭐 배워?" 까진 부드럽게 연결되고 오가는 대화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디 학원?" 하면 그 학원 규모와 수준을 짐작할 수 있어서 때로는 자신의 아이 수준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질문은 비슷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달라서 묻고 답하는 것을 꺼릴 때가 있습니다.


입시철은 더욱 그렇지요.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금기어라면 "어디 갔어?"입니다. 평소 자주 왕래하며 아이의 성향과 학습 이야기가 오갔다면 당신 아이는 문과니 이과니, 일반고니 특목고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시철이 끝나고 새 학기가 될 때까지도 학부모사이에서는 "그 집은 어디 다녀?"는 묻지 않는 것이 관례가 된 지 오랩니다. 자랑할 만하면 어련히 알아서 할까 싶어 기다립니다. 굳이 말하지 않는다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니 일부러 물어서 속상한 일은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4.

질문에는 예상할 수 있는 답이 있습니다. 질문은 질문 자체만으로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가 있습니다. 단순히 육하원칙에 의하지 않고서도 특정한 의문사 하나를 덫붙여서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너는 누구와 밥을 먹었니?" 

나 말고 요즘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궁금해서 물을 수 있습니다. 

"언제가 편해? 밥 먹을 시간은 충분하지?" 

한가한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 먹을래?" 

어떤 분위기와 메뉴를 좋아하는지 궁금하고 배려하려는 소리입니다.

"나와 밥 먹을래?" 

특정 의문사를 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친해지고 싶어"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정도로 알아들으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이라면 대답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꼭 명쾌한 답을 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질문의 정확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것이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관계를 이어가는 길입니다.



5.

"이번 달은 일이 많지? 쉬엄쉬엄해! 모임엔 나올 수 있겠어? 그래도 밥은 먹고 일해라. 네 사무실 근처에서 정할까?" 

친구에게 문자를 받았습니다. 일이 많아서 모임에 못 나올 것을 염려한 친구가 내 근황을 묻고 모임에 올 수 있는지 답을 듣기 위함입니다. 친구의 안부 문자가 아니라 걱정과 당부의 문자가 고마워서 나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이번 주 마무리할 게 많네. 그래도 밥은 먹고살아야겠지?"

이같이 답을 포함한 내 질문의 대답은 그래 밥 먹자! 였습니다.


6.

글이 술술 나온다는 것은 질문을 정확히 파악하고 의도를 알아차린 때입니다. 반대로 한 줄도 쓸 수 없어 애먼 머리카락만 돌돌 말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몰라 답을 구할 수도 없는 경우입니다. 글을 쓰려면 쓰려는 주제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그에 맞는 소재를 골라야 합니다. 그리고 맞게 써야 합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서 답하듯이, 주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글을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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