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01

by 김선하

1.

어제 점심부터 해물 육수 들어간 된장국이 먹고 싶었습니다. 냉동실을 죄다 훑어보아도 바지락 하나가 없어 아쉬운 대로 된장 묽게 풀어 호박 감자 넣고 끓여 먹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제때 먹지 못하면 두고두고 생각나는지라, 아침 눈뜨자마자 마트에 가야지 했습니다. 아이들 간식거리 사면서 비상으로 바지락이나 조갯살 사 둘 생각으로 나가려던 차에 핸드폰을 문자가 옵니다.

‘바지락 한 상자 현관에 뒀다. 바로 캐 온 거라 싱싱하니 오늘 내로 먹으렴.’

현관 앞에 스티로폼 박스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열어보니 바지락이 상자 한가득 들었습니다. 비린내 없이 바다 냄새 가득 퍼지는 것이 아주 싱싱합니다. 오징어나 낙지로 말하면 그야말로 생물입니다. 그런데 우리 식구 먹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마트에 가서 손질된 조갯살이나 한 봉지 사서 편하게 먹으려 했습니다. 이 귀한 것을 받고도 다듬어 보관할 생각에 보낸 정성이 귀찮음으로 바뀝니다.

2.

얼마 전에는 지인이 과실을 한 포대 보내왔습니다. 집에 설탕이 많이 있다 자랑했더니 딴에는 내 생각해서 청 담으라고 보낸 겁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청담아 선물하는 재미로 열심히 과실, 설탕, 항아리 사서 청을 담아 지인과 이웃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요즘은 해놓아도 먹을 식구가 없고, 뭐 하나 챙겨 먹는 것도 세상 귀찮고, 집안에 늘여놓고 치우는 것이 번잡스러워, 조금씩 사다 먹기로 했습니다. 사정이 그러니 요즘은 음식 재료를 주는 이도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이 속마음입니다. 그러다가도 또 받으면 정성이 고마워서 씻고 다듬고 뚝딱뚝딱 음식을 해서 나눕니다. 그런 것을 아니까 또 지인들은 귀한 것을 보내는 것일 테고요.

3.

스티로폼 상자에서 바지락이 담긴 비닐포대를 꺼내 가위로 포대 입구 한쪽을 잘라내 바지락을 쏟아 대아에 담습니다. 소금 뿌려 해감하고, 손으로 문질러 흐르는 물에 씻고 헹구기를 몇 차례. 다 씻은 바지락은 한 번에 끓일 겁니다. 큰 음식 할 일이 없어 베란다 창고에 두었던 찜통을 꺼내 물로 헹구고 난 뒤, 그 안에 깨끗이 씻은 바지락을 넣습니다.


이렇게 많은 양을 조리할 때는 가스 불이 좋습니다. 가스 냄새와 유해물질이 싫어서 가스레인지에서 인덕션으로 바꾼 지 오래되었습니다. 인덕션에 냄비를 올려두고 요리하면 깨끗하고 청소하기 편하지만, 요리하는 맛이 떨어집니다. 요리는 불 맛이라는 게 요럴 때 아쉽습니다.


찜통에 물을 붓고 바지락살을 넣은 후 불 세기를 최대로 올립니다. 끓어 넘 칠 만하면 찬물을 한 그릇 부어 끓는 거품을 진정시킵니다. 커다란 국자로 바지락 위아래 두어 번 위치를 바꾸어 줍니다. 두어 번 끓고 나면 불을 끄고 찬물에 식힙니다. 바지락살을 발라 통에 담고 껍질은 따로 모아서 버립니다. 껍질만 20리터 쓰레기봉투에 반 이상이 쌓입니다.

휴... 들인 시간과 노동력에 물값 봉툿값을 생각하면 마트 가서 5000원짜리 한 봉지 사서 먹는 것이 깔끔하고 편한 게 사실입니다.


4.

한숨도 잠시, 내 손으로 직접 다듬어 통에 담은 바지락살을 들여다보면 금세 뿌듯합니다. 두어 시간 고생한 것은 온데간데없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지퍼백에 한가득 넣어 냉동실에 넣습니다. 해물 된장국이나 칼국수 끓일 때 요긴하게 쓰일 것입니다.


바지락을 다 마무리하자 아들이 점심엔 칼국수 먹고 싶다 합니다. 감자 호박 넣고 바지락칼국수 끓여 먹었습니다. 바로 담근 겉절이가 없으니 아쉬운 대로 바지락 한 움큼 쥐어 초고추장에 매실액 넣어 무쳐냅니다. 덜 씻겼는지 좀 짠맛이 있는지 물 반 육수 반 들이킵니다. 그런데도 집에서 손질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정성이 들어간 것이기에 맛있게 먹어줍니다.

5.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인 수고로운 글일수록 널리 읽히고 깊이 느껴집니다. 내 책은 개인적인 글로 시작합니다. 다이어리 메모나 일기 몇 줄 정도였지요. 그 글들이 책으로 이어질 것을 염두하고 원고작업하면서는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내 가 아닌 당신, 모두를 생각하면 나의 무게와 크기가 달라집니다. 나로부터 형제자매 이웃도 보이고 당신과 사회도 보입니다. 작가는 혼자 글을 쓰지만 밖으로 나간 책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책이 아닙니다. 개인 글이 아닌 사회적 글이고, 내 이야기이지만 책을 읽는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책임 있는 글을 쓰도록, 사회적인 책임의 글이 되도록 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