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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May 15. 2024

당신의 철학, 목표, 북극성, 고삐는 무엇인가?

혼독함공 독서일지



노자의 도덕경에 신선이 나온다. 긴 수염에 하얀 도포 자락 휘두르고 죽비 든 신선이 물에서 노닌다. 한량답다. 엄마는 당신의 팔자가 서러워 딸은 자유롭게 살라고 수양 엄마를 들이고 선하라 이름 지었다. 仙河. 신선 선, 물 하. 엄마의 바람은 반대로 이루어졌다. 백조는 수면 위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지만, 수면 아래에서 침수되지 않으려 온갖 발버둥을 친다. 반백 년 나는 이름값 하려고 악으로 깡으로 온갖 자존심을 내걸고 산 백조였다. 그런데 나는 뭐하러 이렇게 살았을까? 돌아보니 이유가 없다. 명분이 서지 않았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저 날뛸 뿐이었다.


『당신의 고삐는 무엇입니까? 경전이란 자기 소명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말합니다. 28쪽』


나는 지금 백조와 신선을 오가며 시절 놀음 중이다. 살면서 바닥을 치고 보니 이제 고개를 치켜들어도 될만하다. 나는 산새가 좋은 절을 찾아 신선놀음이나 해볼까 했는데 공양간에 머무는 게 좋아졌다. 그러더니 주지 스님은 나에게 문수행文殊行 법명을 주셨다. 또 이름값을 해야 한다. 공양간에서는 울력이 보시라 하던 내가 법을 전하는 실천으로 보시해야 한다. 무명과 무지에서 밝음을 찾는 수행자는 순례의 길을 걷고자 한다. 이제 건너가는 자가 되보려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너와 나, 나와 나, 너와 너 무수한 관계로 존재한다. 인연이다. 젊어서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나는 나를 믿어요! 답했다. 이후 나는 유아독종, 독고다이, 고집불통 별명을 떠안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제대로 알지 못한 대가는 불명예스러웠다.


『붓다는 어떤 고삐 어떤 소명을 가졌을까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세개고 오당안지,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홀로 존귀하다. 자신을 존귀하게 대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꽉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하겠지요. 삶 속에서 각자의 나 자신을 자꾸 지켜야 합니다. 붓타의 고삐는 고통스러운 세상에 갇혀 고통받는 대중을 구제하는 것이었다. 40쪽』


양력 생활자 직장인은 음력 초하루 법회 가는 게 어렵다. 내가 만나는 부처님 말씀은 절에 가지 못하니 스님 법문을 대신해 숫타니파타와 법구경 불교성전을 읽는다. 또한 종교자가 아닌 수필가로서 존경하는 법정의 글에서 부처님 말씀을 배웠다. 다만 내가 불자며, 신앙자로서, 어미인, 내가 하는 일이 있다. 매주 월요일 출근 전 도심에 있는 절에 들러 반야심경, 다라니경, 여기에 자녀를 위한 기도문을 읽는다. 이것을 내 신성한 루틴으로 삼아 빠짐없이 반복해서 외우듯 읊듯 한다.


“기도할 수 있는데, 기도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 말이 와닿는 것은 나에게는 내가 잡고 흔들어야 할 분명한 고삐가 쥐어져 있고 나는 그 고삐를 놓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주문처럼 읽는다. 이것은 낮과 밤의 대비 속에서 아침 저녁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듯 편안과 불편, 기쁨과 슬픔에 널뛰지 않고 선정에 들도록 애쓴다. 이 모든 것은 나와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는 소망 의식이다.


종교학자나 철학자가 반야심경을 해석하고 스님이 반야심경을 현재에 맞게 비유해 합법적으로 법을 전한다. 불교 신자는 실천행과 간증을 통해 반야심경의 위대함을 증명한다. 나는 불교를 종교보다는 철학에 이론보다는 실천에 둔다. 이런 인연으로 오늘 읽은 최진석 교수의 반야심경은 제목이 반야심경이 아니라서 좋았고 건너가는 자라서 더 좋았다. 노자의 도덕경을 말하는 동양 철학자는 반야심경을 어떻게 해석할까? 그리고 왜 반야심경을 지혜라 하지 않고 실천에 두었을까.


『반야심경의 지혜를 탐독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왜 책의 제목이 건너가는 자일까요? 반야심경은 정말 익숙한 이곳에서 새로운 저곳으로 건너가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고 합니다.


인연생기因緣生起라 함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은 없고 오로지 관계 맺고 엮이는 방식에 따라 잠시 그것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의 불교적 용어이지요. 원래 그러한 성질이 없다는 공空 개념과 상통합니다. 내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현실적인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또 나라는 개별적인 개체에 매몰되지 않은 채로 관계의 연속성에서 존재하는 나를 인지할 때 참된 건너감으로써 삶의 도약을 이룰 수 있다 합니다 -여는글-』


나도 반야심경을 외우듯 끊임없이 정진하고 지혜를 쌓을 수 있을까? 윤회를 벗어날 수 있을까? 업을 소멸할 수 있을까? 어제의 고통이 오늘은 상처로 남아 내일은 아무 일 없는 날이 되길 바란다. 다만 행복해지려고 발버둥 치던 과거에서 벗어나 나아짐에 만족하고 무소유적인 공적인 삶을 살길 바란다. 부디 내가 내 사랑하는 사람이 탐진치로 업을 쌓는 무지에서 벗어나길 기도한다. 나를 알고 바른 곳을 향해 건너가는 자가 되길 바란다. 오늘도 되어감에 만족하고 있음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코스 카잔키스의 묘비명처럼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자유롭길 바란다.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다』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는 순례자가 되길, 자유로운 유목민이 되길 바란다.


나는 나 하나로 존귀한 사람이다. 나는 나를 귀하여 여기고 풀 하나 사람 하나를 귀하게 여길 것이다. 나는 하루 위 하늘 아래 존귀한 사람이다. 고삐를 쥐듯 노를 저어 강을 건너는 자다.


지치지 않게 반복하여 리듬감 있게 지속해야 주문에 담긴 마법이 실행된다 했다. 반복과 지속으로 묵묵히 건너는 자, 바라밀다를 행할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 봉축식 인례자로서 반야심경을 읽는 오늘 인연에 감사하다. 나에게 반야심경은 막힘 없는 숨이고 꺼지지 않는 등불이다. 나는 오늘도 귀한 나를 위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주문을 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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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도서평이된다면정약용초서처럼

#책도스포일러가있다면작가님실례하겠습니다

#이많은책을왜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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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재밌는거있으면그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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