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고통스럽고, 밤잠을 설칠 때도 있지만,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삶을 살고 꿈도 꾸고 메아리랑 땅콩사탕을 즐기는 날들도 있는 거야.” (�p.328)
나는 바쁩니다
정신없이 바쁩니다
밥은 먹고 다니니?
도대체 잠은 자는 거야?
사람들은 나를 걱정하고 나를 위로하고 나에게 조언을 합니다
나는 오후 출근자입니다
오전에는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낮동안 그 에너지를 하는 일에 쓰고
밤이 되면 바닥난 에너지를 보충하여야 한다, 고.
그러나 나의 하루는 에너지를 비축하고 소비하고 충전하는 유형은 아닌 듯 합니다
오전 오후 밤 세 개의 시간을 나누어 쓰고
다이어리는 빈틈없이 같은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에너지를 쓰는 동안 다른 에너지를 채웁니다
다람쥐 쳇바퀴를 돌 듯한 이 하루를 위해
나는 내 하루의 다양한 포맷을 규칙적으로 만들어 반복시키고
결국, 습관이 되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미친 듯 전쟁을 치르는 이유는 뭘까요?
“결국에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날들이란 아주 눈부시고 경이롭고 신나는 일들이 일어나는 날들이 아니라 소소한 즐거움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그런 날 같아요. 진주 목걸이에서 진주알들이 알알이 흘러내리는 것처럼요.” (�p.261)
아침부터 또 바빴습니다
점심 먹을 시간은 점심밥을 먹는 대신 일 하나를 마무리하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김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오늘은 수요일, 혼독함공-선독서후수다 가 있는 날입니다
오늘은 매월 마지막 주 독서모임 행사, 앤데이가 있는 날입니다
수요일 오후 1시부터 5시,
4시간이 나에게는 하루를 버티고 일주일을 버티고 한 달을 버티게 하는 시간입니다
오전 전쟁이 끝나고 맞이하는 이 시간, 나에게는 평화입니다
언제 바빴던가 코웃음짓고, 언제 힘들었던가 의아한 내 표정으로 앤과 만납니다
오늘도 앤이 전하는 말을 나에게 옮깁니다
연필을 빌려 종이에 필사하고, 목소리를 빌어 낭독합니다
앤 속엣말은 내 속엣말이 되어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응원합니다
나는 이 평화를 위해 기꺼이 전쟁을 선택했고
전쟁 뒤 맛 볼 평화를 즐겁게 누리겠습니다
앤이 꿈을 꾸듯 말했다. “한 해가 거대한 성당 안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부드럽게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는 것 같지 않니?” “그렇지만 우린 서둘러야 해. 시간이 별로 없어.” “그럼 빨리 걸을게. 하지만 말은 시키지 말아줘. 난 그냥 오늘의 사랑스러움을 들이마시고 싶어. 공기로 만든 포도주를 내 입술에 들이밀고 있는 것 같아.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한 모금씩 마실 거야.” (�p.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