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나를 향해 걷는 열걸음, 단 하나의 나로 살게
혼독함공독서일지
나는 최진석 교수가 좋다. 그의 동양적 철학과 도가 사상을 펼치는 카리스마, 여기에 둘러 말하지 않는 직설화법. 나는 어영부영 흘러서 소리 없이 섞이는 사람이지만, 거센 물살 앞에서는 역류하고 만다. 그러나 최진석 교수는 중심을 나에게 두고 나아가라 말한다. 눈치 보지 말고 뒷짐 지지 말고 그러나 요란 떨 것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라 한다. 그런 그의 정신세계는 유유한 도가 사상과 옛것의 존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고전 읽기를 권하는 이유다.
나는 고전이 좋다. 예술과 문화 영화와 책도 정통이 좋고 전통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책만 이야기해보면, 내가 고전을 재독再讀하는 이유는 ‘그때는 그래서 맞고 지금은 이래서 맞다.’가 아닐까. 나를 둘러싼 환경 처지 마음에 따라서, 같은 책은 달리 온다. 같은 책이지만 그 책을 대하는 나는 같지 않다.
요즘 다시 읽는 고전에서 그때는 몰랐던 나의 독서 자세를 돌아본다. 그때는 책 속 글字를 읽었다. 지금은 책 속 글閒을 읽는다. 그때는 눈에 보이는 순간을 읽었다. 지금은 마음에 보이는 영감을 읽는다. 글자가 아닌 행간 숨을 뜻을 찾는다. 내가 여유 있음이라. 이제 좀 살만해졌음이라. 최진석 교수가 전하는 말은 나에게 있어 철학적인 삶을 이끈다. 그가 권하는 노인과 바다. 내가 모비딕을 읽을 때 꼬리를 무는 책이다.
<노인과 바다>가 수식과 화려함이 아닌 무미건조를 선택한 이유는 헤밍웨이는 단지, 향미가 가득한 처음부터 매력적이었던 빵이 아니라 씹을수록 음미하게 될 식사용 맨 빵을 선물하고 싶었을 거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각기 다른 환경과 처지를 반영한, 각자의 미각을 흔들 식도락을 준비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노인과 바다>가 나에게 결코 재미없는 소설임에도 계속해서 내 안의 무엇을 찾으려 읽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