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할 때까지만 쓰겠습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12

by 김선하

1.

해야겠다 맘먹은 일이 생기면 일단 합니다. 잘해야지 하는 다짐보다는 후딱 해치우자 하는 마음으로 일에 달려듭니다. 하고 싶은 일 하지 않고 망설이다 보면 결국 그것 때문에 병이 납니다. 목전에 일을 두면 준비고 계획이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렇게 해버린 일이 망설이다 기회를 놓친 때보다 덜 후회스러우니 당행이라면 다행입니다.


2.

음식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늘 김밥 먹어야지 생각하면 바로 냉장고 문을 열고 김밥에 넣을 재료를 꺼냅니다. 김밥용 단무지가 없습니다. 배달 음식에 같이 온 반달 단무지 몇 봉을 모아 둔 것을 꺼내어 채 썰어 접시에 담습니다. 그것으로는 좀 모자라 피클을 썰고 김치를 씻어 물기를 짠 후 세로로 길게 잘라 둡니다. 이렇듯, 하고자 할 때 뭐 하나 모자라는 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어떤 식으로든 대체할 것이 있고 딱히 없으면 없는 대로 합니다.


나는 게으르기도 하고 고민도 많은 성격입니다. 그런데 하고 싶다, 해야 한다, 면 달려들 듯합니다. 성격이 급하고 성질이 차가운데, 이런 성급함이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실수를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에 서툰 때, 망설이는 초보에게는 나름 괜찮게 작용합니다. 그리고 글 쓰는데도 장점이 됩니다.


3.

쓰자!

마음먹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면 바로 타이핑 시작입니다. 툭 튕겨 나온 한 단어, 순간 스쳐 간 생각, 던져진 주제, 사진 한 컷. 그냥 있는 것, 그것만으로 일단 씁니다. 모든 글을 계획하고 기획하고 쓰지는 않습니다. 쓰다 보면 써지고 쓰면서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냥 쭉 씁니다.


길을 가다 막다른 길에 서면 멈춰 서서 오던 길을 뒤돌아보듯, 쓰다가 막히면 머리를 긁적이며 마우스를 위로 올려 썼던 글을 읽습니다. 그러면 또 뭐가 써집니다.


하자!

잘하자! 보다는 그냥 하자! 합니다. 제대로 완벽하게 보다는 고민 말고 완주하자.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 하는 마음으로 완성보다는 완주에 목표를 둡니다. 그러니 고고가 가능하지요.


4.

이런 친구가 있습니다. 여행 일주일 멀게는 한 달 전부터 여행지에 유명한 맛집, 쇼핑 리스트, 핫 플레이스를 검색합니다. 시간대로 장소별로 꼼꼼히 계획하고 준비합니다. 입고 갈 옷과 세면도구 화장품에 액세서리까지 챙깁니다.


나는 그 친구를 보면 여행도 가기 전에 지친다고 애먼 소리를 하지만, 여행 가방 하나 싸는 것만 보더라도 그런 사람은 모든 일에 완벽하게 준비하고 대비한다는 것을 짐작합니다. 철저하다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그냥 성격과 취향의 문제인 것이지요.


5.

글쓰기도 똑같습니다. 나는 글을 많이 쓰던 사람이 아니라서 잘 쓰려고 다짐하면 할수록 시작도 어렵고 끝도 보이지 없습니다. 쓰기는 생각- 계획- 준비- 기획으로 순서와 과정이 단순해 보여도 실제 서보면 신경조직보다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한 줄 쓰고 생각하고, 한 문단 쓰고 다시 위로 올라가서 수정하고, 그러다 보면 결론은 나지 않고, 계속 맴돌다가 헛돌다가 합니다.


말 그대로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이지요. 데드라인이 없는 습작 시절, 처음 글쓰기 할 때 딱 그랬습니다. 원고지 다섯 장을 채우는데 한 시간 주면 한 시간 글 쓰고, 하루 주면 온종일 책상에 앉아 글과 씨름합니다. 쉽게 쓸 것과 어렵게 쓸 것을, 넓게 쓸 것과 깊게 쓸 것을 구분 못 하고 그저 책상에 앉아 키보드 자판만 썼다 지웠다를 무한 반복했습니다. 마치 연산 문제를 사고력 풀이하는 아이처럼 말이지요.


6.

학생들과 공부를 하다 보면 또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한 시부터 세 시까지 공부하자, 하면 아이들 대부분이 시곗바늘만 보고 끝나는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며 허송세월합니다. 그런데 10쪽부터 20쪽까지 푸는 사람 먼저 가자, 하면 푸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내 글쓰기도 딱 그렇습니다. 약속이 있거나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후딱 쓴다는 겁니다. 평소 두 시간 걸리는 A4용지 분량을 30분 만에 끝냅니다. 그렇다고 긴 시간에 쓴 거에 비하면 아주 엉망도 아닙니다.


7.

이후로 글쓰기 기준이 생겼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쓰는 겁니다. 새벽 글쓰기, 방과 후 글쓰기, 주말 몰아서 쓰기, 이런 글쓰기 시간대가 아니고 말 그대로 쓰는 시간을 정합니다. 글을 쓰자 생각하고 책상에 앉은 시각으로부터 50분이 뒤 알람을 맞춥니다. 50분 뒤 알람이 울리면 쓰던 글을 더 진행하지 않고 마무리합니다.


초고가 끝나고 수정할 때도 데드라인을 정합니다. 초고에서 완고가 되기까지 아홉 번은 수정합니다. 최종 원고가 되기까지 일주일, 한 달 간격으로 숙성하고 꺼내서 수정하고 다시 숙성하고 꺼내서 수정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정 기간에 틈을 주다 보면 어제 보이지 않던 것이 오늘 보이고, 오늘 보이지 않던 것이 내일 다시 보이는 경우가 생깁니다. 원고를 한 번에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여러 번 간격을 두고 수정하는 것이 내 방식입니다.

8.

북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최근 책을 출간한 5인의 저자에게 글 쓰는 데드라인이 있나요? 질문을 던졌습니다. 공통된 답은 지금 나와 같은 방법을 하고 있다 합니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앞으로도 당분간 그렇게 쓰려고 합니다. 물론 글 잘 쓰는 사람, 글 쓰는 게 업인 사람에게는 해당치 않겠지만요.


땡!!! 알람이 울립니다. 이제 마무리하고 노트북을 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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