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자의 일상 철학 26
1.
세상사 운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조건 열심히만 한다고 다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하는 일과 사람과 연이 맞아야 하고, 하는데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보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합해져서 빛을 발할 때 운때가 들어섰다, 고 말하는 것 아닐까요? 나는 관상가도 아니고 타로나 사주를 보는 사람도 아니지만, 운세라는 것이 그럴 것 같습니다.
2.
나는 일 욕심이 많습니다. 누가 "같이 할래?" 하면 "응!" 합니다. 선 대답 후 수습. 일단 대답부터 하고 나서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하는데 또 생각해 보면 못할 것도 없지 싶습니다.
가만히 있는데 일이 나를 찾아온 것인지, 내가 일거리를 찾아 나선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나는 일을 좋아하고, 일을 무서워하지 않고, 어딜 가나 할 일을 떠맡습니다. 이 또한 떠맡는 것인지 떠맡아진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단,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사람이 있으니. 나의 쓸모가 없지는 않음 자체가 위안이고 힘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일복은 타고난 것 같습니다. 가는 곳마다 일손이 부족했고 내가 거들어야 했고 또 적재적소에 내가 불리었고 부려졌습니다. 나는 말 그대로 뭣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일했습니다. 달리라면 달리고 걸으라면 걷고 누우라면 눕는 시늉까지 하며 일이 좋아서 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나는 왜 무엇을 위해 무작정 걷고 달리고만 했을까 자문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했던 겁니다.
3.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말>에서 “쉬지 않고 걷지 않고 매일 나의 길을 달렸다” 고 합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거기까지 나는 하루키와 닮았습니다. 하지만 하루키는 쉬지 않고 걷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매일을 하루 같이 이어 나갔습니다. 나는 걷다가 뛰다가 했습니다. 넘어져도 주저하지 않고 잠깐 쉬다가 다시 걷고 나아지면 다시 뛰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뛰다가 걷다가 쉬다가 반복할까요? 언제쯤이면 하루키처럼 페이스를 잃지 않고 꾸준히 제 속도로 뛸 수 있을까요?
어제는 하루키 흉내를 내어 보려고 체육관에 가서 러닝머신 위를 뛰었습니다. 평소 기울기 7, 걷기 6으로 설정하고 경보하듯 빨리 걷기를 합니다. 기울기 10, 속도 9로 상향 조절한 뒤 경보보다 좀 더 빠르지만 전속력은 아닌 경보보다 조금 빨리 뛰었습니다. 아. 채 10분도 뛰지 못하고 멈춤 버튼을 눌렀습니다. 까지 껏 하면 되지! 쉽게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무작정 뛰자고 마음먹고 뛰어든다고 뛰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걷겠습니다. 러닝머신 위에서도 기울기와 속도를 한 단계씩만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빠르게 걷겠습니다.
장거리 레이서, 마라토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달려야 합니다. 마지막 스퍼트를 낼 지점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 때나 속력을 내고 힘을 내어서는 안 됩니다. 단거리 레이서는 다릅니다. 스타트와 순발력이 필요하고 넘어지거나 걸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하게도 나는 장거리 레이서입니다. 걷지 않고 속도를 내어 뛰기만 하면 됩니다. 빠르고 느리고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일정 속도로 꾸준히 달리면 됩니다. 그 속도라는 것도 무작정 낸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잘 뛰고 잘 버틴다면 맘껏 속도를 내도 좋지만, 오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속도 자기만의 페이스가 가장 중요합니다.
4.
장거리 레이서, 마라토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달려야 합니다. 마지막 스퍼트를 낼 지점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 때나 속력을 내고 힘을 내어서는 안 됩니다. 단거리 레이서는 다릅니다. 스타트와 순발력이 필요하고 넘어지거나 걸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하게도 나는 장거리 레이서입니다. 걷지 않고 속도를 내어 뛰기만 하면 됩니다. 빠르고 느리고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일정 속도로 꾸준히 달리면 됩니다. 그 속도라는 것도 무작정 낸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잘 뛰고 잘 버틴다면 맘껏 속도를 내도 좋지만, 오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속도 자기만의 페이스가 가장 중요합니다.
5.
마라톤은 인생이라던데 마라톤은 글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 책 한 권을 출간한 새내기 작가입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매일 글을 썼습니다. 오늘 저녁 원고는 아침에, 내일 녹음 원고는 점심에, 휴가 간 동료의 아침 원고는 밤과 다음날 새벽에 썼습니다. 속도 조절이 불가능한 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 점심 저녁 밤 쉬지 않고 마감 시간에 쫓기듯 써버린 일회성 원고가 되기도 했습니다. 쫓기듯 쓰는 글은 지양하겠습니다. 마감은 있되 충분히 사색하고 수정하고 마무리 짓는 글을 내보이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쉬다가 걷다가 뛰다가 하겠습니다. 예전의 나는 내 수준도 모르고 무작정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한참을 쉬었습니다. 다시 일어나서 뛰어야 할 때는 뛰는 법을 까먹고 걷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하루키가 지금처럼 매일 하루 같이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 쉬고 걷고 뛰고를 무수히 반복했을 겁니다. 그러니 쉼과 걷기를 생략하고 달릴 수 있는 겁니다. 나도 언젠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내일 다시 체육관에 나가서 걷다가 뛰기를 도전해 보겠습니다. 내일은 딱 10분만 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딱 10분만 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