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 말고 미라클 퇴근 갓생살이를 합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25

by 김선하

1.

대학교 2학년부터 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학원 강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생으로 있는 2년 동안 취직만 되면 그만둔다는 마음으로 강사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저녁에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학원가에 입성했습니다.


학원밥을 먹은 지 족히 20년이 되어 갑니다. 일하는 중간에 아이 둘을 낳고 몸조리하는 몇 개월, 번아웃이 와서 모든 것을 놓았던 2년. 뭐 그 정도를 제외하면 계속해서 일을 했습니다.


몇 년 전 학원가 중심에 있던 학원 하나를 정리하고, 올해 학원 규모를 한 번 더 줄였습니다. 현재는 열두 평 남짓한 사무실을 아지트 겸 강의실로 공유하며 덕업일치를 이루는 중입니다. 올해는 내 삶의 전환점을 삼고자 수업시간을 조절해서 현재는 주 5일 네 시간만 일합니다. 수업이 끝나고 뒤정리하면 보통 8시가 퇴근시간입니다. 그러나 바로 퇴근하지 않습니다.


2.

자기 계발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 재벌가나 유명인들을 보면 미라클 모닝을 합니다. 나는 새벽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서 아예 시도도 하지 않고 대신 미라클 퇴근으로 갓생을 삽니다.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다 나가면 여기 남은 사람은 나 혼자입니다. 우선 형광등 스위치 네 개 중 두 개를 끕니다. 주황빛 전구를 끼운 장스탠드 스위치를 켭니다. 눈부신 밝음에서 따스한 아늑함으로 강의실은 아지트로 변신합니다. 이제 내가 개인적으로 할 일을 할 시간입니다. 조명이 바뀐다는 것은 일에서 취미로, 본업에서 부업으로, 강사에서 작가로 그 사이를 묘하게 건너 나의 역할이 바뀐다는 신호입니다.


내가 근무시간을 단축한 것은 은퇴 대신 차선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대부분 책 읽고 글을 씁니다. 혼자만의 시간이며 수행의 시간이며 제2막 인생 준비 기간입니다. 누구도 내가 퇴근 후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물론 물어보는 사람도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정말 어쩌다 '강의실에 불이 켜져 있네요, 뭐 하세요?' 문자를 보내는 학부모나 지인이 있습니다. 그러면 '수업 중입니다' 혹은 '공부할 것이 있어요' 의심하지 않을 답장을 보냅니다. 그러면 강의실로 올라오지 않습니다. 방해받을 일이 없습니다. 오로지 내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강의실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인지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혼자 편하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3.

퇴근 후 하루 한 원고가 원칙이지만 꼭 글만 쓰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노트북으로 영화도 보고 책을 읽고 서류를 정리하고 다이어리를 꾸미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가끔 서랍장에서 돌돌 만 매트리스를 꺼내 바닥에 펼치고 그 위에서 잠도 잡니다. 퇴근 후 강의실은 아지트로 바뀌고 강사는 작가로 변신하여 두 번째 인생을 삽니다. 하루 두 번 사는 재미가 비밀스럽기에 더 재미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과 어울리는 흥을 알지만 반대로 혼자서 즐기는 맛을 압니다. 혼자 동네 산책을 하듯 가벼운 손끝으로 자판기를 두드리는 내가 참 보기 좋습니다. 이 아지트 안에서 나는 이방인이고 관광객이고 그러면서 주인이고 주인공입니다. 뭐든지 가능합니다. 주인과 손님, 현지인과 관광객,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처지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입니다.


4.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글이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함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정할 때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쪽을 택하지는 않습니다. 투박한대로 그대로 자연스럽게 내버려 둡니다. 아마도 내가 여행할 때 이방인으로서의 취향이 글에서 새어 나오는가 봅니다.


살아가는 모습도 글을 쓰는 모습도 보이는 삶과 글이 다 매한가지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것은 그런대로 멋이 있습니다. 투박한 것은 투박한 대로 멋이 있습니다. 모난 정만 아니라면, 그것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면, 뭐 봐줄 만합니다. 지금 내 삶도 내 글도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혼자 비밀스러운 시간 속에서 야생적인데 온순해지고, 차가운데 다정합니다. 그런 나만의 이중적인 사유와 행동이 글에서 느껴지도록 장치를 꾸미는 내 시간이 참 좋습니다.


오늘도 퇴근 후 주황불빛 아래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실리콘 커버를 씌운 하얀 자판기를 두드리며 두 시간 잘 놀다 집에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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