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비용으로 양 여섯 마리를 보냈습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27
1.
작년 가치 비교 발표에 따르면, 몽골의 한 양 떼 목장에서 기른 양 한 마리가 약 13만 원에 거래되었습니다. 품종이 좋은 수컷 양은 1,000만 원을 웃돌았습니다. 10년 전, 양 낙농업계에서 화제가 되었던 텍셀 품종 중 하나는 약 3억 6천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양 값어치가 이렇듯 천차만별이라 놀랐습니다.
살렘의 왕이 말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자네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하게. 보물이 피라미드 근처에 있다는 것은 이미 자네도 알고 있었네만, 그런데도 자네가 내게 양 여섯 마리를 주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자네의 결심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네.” -연금술사-
결심을 도와준 대가! 그 대가로 양 여섯 마리라니. 누군가에게는 그 대가가 감사의 마음으로 밥 한 끼 대접할 금액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집 한 채를 웃도는 어마어마한 거액일 수도 있습니다.
말로는 참 쉽습니다. 하지만 절대 쉽지 않은 것이 시작, 출발, 요이 땅!입니다. 그러니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그 일을 하라고 등 떠밀어 준 사람, 용기도 주고 독려했을 그 사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분명 대가를 주어야 합니다. 의지가 약한 사람일수록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나 경우가 없다면 시작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2.
경제용어를 보면 투자비용, 기회비용, 창업비용 등이 나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밑돈을 까는 것이 투자비용입니다. 더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해 그보다 덜 한 곳에 웃돈을 더하면 기회비용이 됩니다. 무경험자가 지름길로 가기 위해 유경험자의 전문적인 경험을 구매하려면 프랜차이즈 창업비용을 내야 합니다.
입문비용!!!
나는 오래전 연금술사를 읽고 나만의 단어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입문비용입니다. 내가 쉽게 설명하기 위해 경제용어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단어입니다. 그리고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이 단어를 설명해 줍니다.
우리는 시작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사람에게 감사를 해야 합니다. 말로 하지 말고 성의를 보여야 하는데 이것을 금전화시킵니다. 많이 망설인, 많이 고심한, 많이 뒤로 밀린 일일수록 그 시작의 물꼬를 터준 대가는 커집니다.
3.
나는 글을 쓰는 곳에서 일했습니다. 내 나이 서른다섯 그곳에서 나와 직업을 바꾸었습니다. 그때 나는 다짐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나이 사십에 은퇴하고 글 쓰고 책 내기. 그리고 오십에는 자유로운 유목민 되기."
오십을 한 해 앞둔 어느 날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지금의 나를 보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은퇴하지 않고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책을 낸다는 생각은 접고, 출간은 남의 일로만 생각하고, 나는 그저 취미 삼아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책 내기, 책 출간, 투고' 키워드를 앞세워 인터넷 카페를 두리번 기웃거릴 뿐이었습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내 인생을 바꿀 책 한 권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누군가의 삶에 들어갈 수 있는 책 한 권을 내는 것은 더 기적 같은 일입니다. 작년 이맘때 내 책을 서점에서 만나는 기적을 꿈꾸며 나는 글쓰기 코칭을 받았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번, 상담 두 번 후 글쓰기 연구생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글을 쓰고 운문 수정까지 하며 자유 기고하던 내가, 내 글 좀 봐달라고 돈을 들이다니. 처음엔 누가 알까 창피했습니다. 알아버린 누군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왜 그랬어? 물을 뿐입니다. 그러나 곧 나는 나의 이런 선택을 잘했다고 나에게 칭찬했습니다. 자존심이니 창피함이니 하는 핑계로 미룰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책을 내야 했습니다. 자유로운 디지털 노마드가 아니라도 제대로 된 책 하나는 내야 했습니다.
4.
나는 돈을 내고 뭔가를 배워 본 적인 거의 없습니다. 공부도 자격증도 취미도 전문강사나 조력자 없이 거의 보통은 혼자 합니다. 그래서 빨리 갈 수도 없었고 최고가 될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야 뭐 크게 뒤처짐 없이 그런대로 버티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책을 내야지 결심하고 글을 쓰며 출판을 공부했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 “나는 나의 일을 할 거야. 나머지는 몰라”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고, 출판은 출판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나에게는 시작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금전에 민감한 나는 본전 생각나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구실을 잡았습니다. 누구라도 붙잡고 내가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졸라댈 누군가가 필요했던 겁니다.
산티아고. 그가 가진 것은 겉옷 한벌, 책 한 권, 그리고 양 떼였습니다. 그 가난한 자가 양 여섯 마리로 대가를 치렀으니 이제부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시작하는 대가를 다시 치르지 않기 위해서 이제부터는 스스로 결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양 6마리가 아까워서라도 죽을 듯이 애써서 하려던 것을 완주해야 합니다.
결정도 시작도 끝도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조언도 듣고 도움도 받지만 결국 하는 자는 나입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하면 되지. 말은 쉬운데 말이지요.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 했나 봅니다. 시작은 미비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일단 시작만 하면 과정은 진흙탕 싸움이 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곧 맑은 물이 됩니다.
5.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는데, 항상 그 시작을 못 해서 끝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후회만 있을 뿐 과정도 결과도 없었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과 망설임에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때 그냥 해야 했는데."
후회는 실패나 실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조차 안 해본 것에 대해 후회합니다.
나는 양 여섯 마리를 보냈습니다. 다시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 양 여섯 마리를 보냈습니다. 글쓰기 코치는 양 여섯 마리를 받고 나를 출발선에 세웠습니다. 이제 나는 이웃 양들과 함께 달려야 합니다.
양 값을 치르려고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고 또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