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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Aug 18. 2023

내 이름이 아이디입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49


1. META, AI, SNS, LOT, INTERNET

메타, 에이아이, 에스앤에스, 엘오티, 인터넷

이제 내 입을 통해 갸우뚱하지 않고 발음되는 단어이지만 아직까지 친하지는 않니다. instagram, blog, cafe를 기웃거리고는 있지만 언제쯤이면 익숙해지려나 싶은 공간, 온라인 커뮤니티지요. 이 단어가, 이 공간이 우세한 시대에 사는데 나이지만, 여전히 헤매고 두려운 대상이니 나는 지금 시대에 부합한 사람은 아닌 듯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이과 문과를 나눕니다. 그때 나의 선택은 수학을 못 해서가 아니라, 언어와 문학을 좋아해서 문과를 선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수학을 못해서는 아닌 게 맞습니다. 다만 언어와 문학을 아주 좋아서도 특별히 재능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과학과 기술, 과학 기술, 하이테크, 테크놀로지, 천단 과학 기술 이런 것이 낯설고 능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배우려는 의지도 없고 알고 싶은 호기심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문과를 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

성향이나 성격을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나눈다면, 나는 아날로그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고집하며 과학기술과 인터넷 사회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심한 나 자신과 대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황스럽지요. 그런 나를 보는 이도 갑갑하기는 매한가지겠지요.


디지털은 숫자가 강세입니다. 앞뒤가 분명하고 통계와 수치가 명확하며 딱 부러지지요. 반면, 아날로그는 두리뭉실합니다. 수의 경계가 없고 여기부터 저기까지 하는 분명한 선이 없습니다. 아우른다는 표현이 좋겠네요. 그래서 억지를 부리자면 디지털의 세세한 수를 아날로그가 아우르니 내가 낫다고 우겨봐야겠네요.


3.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이나 핸드폰 앱 서비스를 잘 활용하지 않습니다. 핸드폰으로 몇 미터 전방 우회하세요, 아홉 시 방향입니다, 이런 표현을 듣는 것이 운전에 방해될 뿐입니다. 10분쯤 달리다가 커다란 육교가 보이면 다음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두 번째 집. 엘리베이터 10층에서 내리면 오른쪽으로 파란색 보랭 주머니 걸린 현관문. 아파트 정문에서 슈퍼와 약국 사이에 있는 분식점. 뭐 이런 식입니다. 몇 킬로미터니 몇 호선 지하철이니 하는 말은 몇 번 반복해도 귀에 박히지 않고 기억도 못 합니다.


일상이 이렇다 보니 핸드폰이 주는 편리와 기능은 그림의 떡입니다. 핸드폰의 초기 발명단계에 머물러서 유선보다는 무선이 편하고, 무겁고 커다란 벽돌 전화기보다는 핸드폰이 낫다 정도입니다. 핸드폰 판매원이 아무리 최신 버전의 강점을 강조해도 나는 단순한 것, 기능이 가장 적은 것으로 선택합니다.


전자제품과 기기장치를 살 때, 최신 모델을 사고 다양한 기능을 선호하지만 나는 예외입니다. 전원 버튼 하나면 만족하고 사물인터넷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최고사양의 것은 오히려 피합니다.


4.

10년 넘게 쓰던 노트북을 최근 바꾸었습니다. 노트북으로 워드 작업만 해서 고장이나 불편 없이 잘 썼습니다. 오래 쓰다 보니 전원 어댑터 연결 부위가 마모되었는데 모델 단종으로 부품교체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바꾸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그래픽이니 성능이니 어떻고 화면크기와 화상도가 얼마고 합니다. 역시 나의 선택사양은 아닙니다. 굳이 선택 기준을 곱자면 가벼움, 가방에 넣어 다녀야 하니 가벼우면 됩니다.


노트북과 스케치북에 자료를 모으고 글 쓰던 내가  지금은 카톡, 인스타그램, 브런치에 올립니다. 카톡은 순간 생각나는 에피소드나 글 쓸 소재를 저장해 두고, 인스타그램은 그냥 보여주기로 예쁘게 사진 찍은 날, 브런치는 주제명을 만들고 글쓰기 저장 공간으로 쓰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독서록이나 다이어리 등등 여전히 스케치북에 손수 쓰고 그리듯 합니다.


5.

문제는 계정과 아이디를 여러 개 쓰면서도, 자주 들어가지 않다 보니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로 통일시켰어야 했는데 얼마나 하겠나 싶어 아이디도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듯 대충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으로 만들고는 잊어버립니다. 기억력도 좋지 않으면서 여기저기 죄다 늘어뜨린 겁니다.


오늘은 친구 가게에서 메일을 쓸 일이 있는데 내 노트북이 아니다 보니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다시 기입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카페까지는 들어갔는데 아이디가 무엇인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최근 쓰고 있는 아이디 몇 개를 넣어본 뒤에야 로그인을 했습니다.


요즘은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인스타그램과 브런치가 있습니다. 이제 아이디를 통일시켜야겠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정했습니다.


6.

신선 선仙 그리고 물 하河 선하

물은 도에 가깝다. 도를 이루는 신선이 되면 중생이 사는 아래로도 물이 되어 흐르는가. 이름대로 살겠습니다. 지치지 않게 요란스럽지 않게, 신선이 노닐 듯 그렇게 말입니다. 나를 표현할 이름이니 나를 대신할 아이디라면 또 이만한 게 없습니다. 내 아이디는 선하, 내 이름으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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