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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Aug 27. 2023

지인 찬스는 한 번이면 족합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58


1.

책 많이 나갔어?

베스트셀러 든데?

처음부터 너무 잘 나가면 안 돼. 교만해지거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거야. 홍보 좀 해!

책 낸 사람이 이렇게 한가해도 돼?

바쁘지? 부르는 사람 많아서...


책을 내고 일주일은 축하 인사를 받느라 바빴습니다. 예약 판매 기간 동안 미리 온라인으로 책주문을 했다는 인증문자와 축하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초대를 받기도 했고 초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자와의 만남, 북 토크, 북브런치를 빌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그리 바쁘지는 않았습니다. 보통의 날에도 모임과 동아리 연습으로 오전 시간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여기에 책이라는 이야기가 더해졌을 뿐입니다. 책에 담긴 내용 말고도 판매량에 궁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나도 궁금합니다. 과연 몇 권이 나갔을까요?


초판부를 상상 이상으로 많이 찍었습니다. 슬슬 책을 팔아야 하는데, 작가랍시고 저자와의 만나 핑계로 먹고 놀면 안 되는데,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합니다.


‘어떻게 책을 팔지? 그냥 내가 사서 서가에 있는 책장을 채울까? 아,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 있지? 아무리 내 책이라도 그렇게 집에 들일 수는 없지. 책을 팔아야 해.’



2.

책을 쓸 때도, 일할 때도 그렇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혼자 상상하고 계획하고 검토하고 수정합니다. 결국,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하고 봅니다. D-DAY! 막상 일이 시작되면 그다음부터는 흥미가 떨어집니다. 이제부터는 내 일이 아닙니다. 평가나 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찜합니다. 기획하고 쓰고 수정하고 편집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하고 파일에 저장해 둡니다. 쓰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씁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쓰고 넘긴 원고는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보통 모니터링을 하지만 남의 것과 비교가 아니라 자체 검열 정도입니다.


원하는 물건이 생기면 바로 들이지 않습니다. 몇 번 생각하고 사야겠다, 마음을 굳히면 그때부터 이유, 용도, 특징, 장점과 약점, 동일 물건의 가격과 서비스, 유사 물건과 비교 등 어느 것 하나 대충 넘기지 않습니다. 내 손에 넣는 그 순간까지 관찰하고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사인하고 물건을 집에 드리면 끝. 물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일의 결과나 물건을 들인 것이 성공했거나 아주 마음에 들어서만은 아닙니다. 단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도 후회도 없을 뿐입니다. 책을 쓰는 동안 고민과 수고는 양 어깨에 완장처럼 매달려 나를 짓눌렀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행복한 고민이었고 보람된 수고였습니다. 그러니 내가 책을 손에 든 순간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했습니다. 이제 내 할 일은 끝났다! 싶었습니다.


‘이 책은 내 것이 아니야. 평가가 좋으면 좋겠지만 좋지 않아도 나쁠 것은 없어. 이 책은 잘 쓰고 못 쓰고가 아니라 공감과 이해야. 그러니까 책은 읽는 사람의 것이고 평가는 독자의 몫이지. 나는 이제 상관없어.’



3.

'내가 아이를 낳았어. 나는 뱃속에서 열 달 품고 세상 밖으로 낳느라 수고했어. 이제부터는 알아서 커라’

하는 마음은 곧 바뀌었습니다.


'내가 아이를 낳았어. 이제부터 잘 키워야지'

생각이 여기에 머물자, 나의 머릿속 마음속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책 읽을 만한, 책 한 권 사줄 만한, 그런 사람을 떠올려봅니다. 핸드폰 주소록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내 책을 홍보해 줄 사람을 찾습니다. 간간이 들르던 온 오프 커뮤니티를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품앗이 본질이 현실에 부딪힙니다.



4.

첫 번째 책을 내고 책을 팔아야겠다는 의지는 그동안 뿌린 것이 없으니 거둘 것이 없어 멋쩍게 돌아섰습니다. 품앗이의 기능을 알기에 남은 양심으로 책이야기를, 책 한 권 사달라는 말을, 꾹꾹 참았습니다. 품앗이 대신 내 책을 살린 것은 지인 찬스였습니다. 이제 두 번째 책을 준비하며 이제 책을 좀 팔아야겠습니다. 지인 찬스는 한 번이면 족합니다. 두 번째 책은 글력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괜찮네. 이 작가의 다음 책이 궁금해'


'별 거 없군. 좋은 책을 읽어야지'


첫 번째 독자는 두 번째 독자로 이어질 테니 진짜 잘 써야 합니다. 첫 책을 잘 써야 하는 이유이고, 두 번째 책을 더 잘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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