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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Aug 28. 2023

묘사란 그림 그리듯 쓰는 것만이 아닙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59

1.

독고다이" 따로국밥" 혼독함공" 자발적 아웃사이더" 명랑한 운둔자" 칩거"


내가 좋아하는 나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2.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때때로 따로국밥입니다. 고집 피우거나 억지를 부리는 일은 없습니다. 남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해서 어울림에 안성맞춤인 외향적 적극성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현관문을 닫고 외부와 차단된 순간 나는 생각이 많은 내성적 소극적인 사람이 됩니다.


다중 인격체를 가지고 적절히 변신 가능한 사람이랄까요. 혼자와 함께, 적절히 배분해서 살아갑니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오롯이 혼자 임하는 탓에, 상하 구조나 명령 하달식 직장 생활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회사 생활을 한 이후는 계속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일인운영체계로 일하는가 봅니다.


내 삶이 그러했듯, 글을 쓸 때도 누구의 계획하에 주문을 받아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소재 혹은 주제가 주어지면 키워드 한두 개에 의지해 혼자 글을 씁니다. 다 썼다 싶으면 수정할 부분을 타협해서 마무리합니다. 그날그날 메모해 둔 것을 끄집어내고, 옛날에 묶여두었던 것을 되새김해서 오리고 붙여서, 하나의 원고를 완성합니다.


3.

에필로그 없는 책은 있어도 프롤로그 없는 책은 없다.

프롤로그가 책에 대한 모든 것을 대신한다.

프롤로그 하나면 다 된다.


책 투고 전 수정이 여덟 번째 즈음 이제 프롤로그를 써야 할 때입니다


엄마, 딸, 죽음, 허무, 갱년기, 40대 여성, 위로, 위안

간신히 몇 자를 적어봅니다. 상황은 길지 않도록, 장황하지 않도록, 안팎이 보이도록, 묘사해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묘사는 그림 그리듯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묘사는 읽는 독자가 마음껏 다양하게 해석하고 느낄 수 있는 한 페이지 영상입니다. 내 독자가 내 책을 다 읽고 난 후 결국엔, 위로받고 희망을 얻길 바라며 책을 준비했습니다.


프롤로그, 첫 단어는 "죽었다"


첫 장부터, 첫 단어부터, 그런데 죽음을 묘사하는 게 맞는 것일까? 그것도 현실적인 사실 묘사를. 죽음이란 단어를 첫 문장으로 시작하면 무거워지지 않을까? 구체적인 주문을 더한 프롤로그는 어둠과 밝음, 절망과 희망, 슬픔과 환희 사이에서 방향과 분위기를 잡아가려니 산 넘어 산입니다.


뭔가 표본이 있으면 참고할 텐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노트북 하얀 스크린은 여전히 검정 단어 몇 개에서 전혀 확장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끝내야 하는데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글에서 보았던지 들었던지 기억나지 않지만, 장례식장에서 부친상을 당한 아들이 설렁탕을 앞에 두고 묘사된 감정이 담긴 단락에 방향을 잡기는 했지만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노트북 하단 작업표시줄에서 네이버 마크를 클릭합니다. 그리고 굿바이를 유료 다운로드했습니다. 프롤로그를 마무리 지어 줄 희망으로.

내가 이 영화에서 보고 난 후, 프롤로그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요?


다음 회에서 일본 영화 <굿바이> 감상평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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