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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Sep 08. 2023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오두막에 오두막이 없었습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70

1.

라멘 81

운전을 하며 무심히 본 내비게이션으로 단어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아. 이곳 어디서 낯익은. 아. 생각났습니다. 


그때도 차가운 봄이었나 봅니다. 출판기획 에이전시에 연구생 신청서를 냈고, 며칠 뒤 연구생 제도 선발을 위한 면담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교통사고로 입원 중이었고, 다시 잡은 날에는 대표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두 번의 미팅은 연속 불발이었고, 그렇게 나의 책 쓰기 코칭도 책 출판도 멀어져 가는 듯했습니다.


그해 8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무더위 여름 속에서 수요일이 휴무인 나는 또 혼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돌아옵니다. 시골길도 한옥마을도 동네 책방도 조금씩 지겨워질 즈음 기차 타고 서울에 다녀오고 싶어 졌습니다. 이열치열이라, 불볕더위를 건물과 네온사인이 북적대는 번화가에 머물고 싶었고, 복잡한 서울 지하철이 타고 싶었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인연이 없다 했던 출판기획 에이전시가 궁금했습니다. 가서 뭐 하는 곳인지 구경이나 할 속셈으로 미팅 날짜를 잡았습니다. 서울 구경이나 하자는 꿍꿍이가 먼저였습니다.


"8월 24일 수요일 오후 3시, 한남 오두막, 라멘81번옥과 호박 부동산 사이 골목길 위로 20m 올라오면 큰 나무가 있는 집입니다."


2.

어린 시절 그때 그 시절, 내 추억의 단 하나였던 비 오는 날 오두막을 상상했습니다. 분명 그곳은 내가 그려낸 만화 속 우주여야만 했습니다. 


터벅터벅 오르는 길가에는 포장되지 않고 먼지와 자갈이 깔려있을 것,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소나무 껍질이 건물 외벽을 두를 것, 큰 나무가 오두막을 덮고 그늘을 만들 것, 편백나무가 벽면 전체를 두르고 천장에는 라탄으로 만든 갓을 씌운 주황빛 전등을 불규칙하게 배치할 것, 곳곳에는 책과 포스터들이 제멋대로 자리하고 있을 것, 집에서 쓰던 것을 가지고 와서 천을 씌운 테이블 여러 개가 곳곳에 놓여있을 것, 그리고 그 테이블 위에는 막걸리와 멸치가 혹은 커피믹스와 종이컵이 쌓여있을 것.


주전부리를 담은 검정 비닐을 든 누군가가 조용히 들어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무심하게 책을 읽고 있을 것.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이 어깨를 가볍게 치거나 주전부리에 손을 더해서 인사를 대신에 할 것. 삐걱거리는 문을 열면 풍경소리가 나를 반길 것, 그리고 검은 뿔테를 쓴 젊은 남자가 먼발치에서 나를 보며 이리로 오라고 가볍게 손질을 할 것.


3.

신호등 건너 라멘81번옥과 호박 부동산 사이 골목길 위로 올라갔습니다. 20m라는 수치는 알 수 없었지만 가다 보면 큰 나무 한 그루가 보일 것이고 거기까지가 20m 일 것을 계산했습니다. 그렇게 걸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목마른 이가 오아시스를 찾듯, 더운 대낮 대로변에 놓인 나는 큰 나무만 찾으면 다 해결되는 듯했습니다. 오르다 보니 분명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나무 아래 내가 찾던 오두막은 없었습니다. 혹시 내가 지나쳐 온 것은 아닌가 싶어서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다보고 좌우로 시선을 돌려 보았습니다. 아….


‘한남동 오두막’


어릴 적 뛰어놀던 동네 어귀에 자리한 구멍가게 같은 이곳이 내가 오늘 찾던 오두막이었습니다. 현판인지 문패인지 모를 그것이 오두막 현관 옆에 수줍게 걸려있었습니다. 숨 한번 쉬고는 문을 열었습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 때까지 상상은 진행 중이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내 상상은 곧 깨졌습니다. 


꿈에서 깨어 두 발짝 띄었을 때 내 눈앞에 한 남자가 나를 반기며 입꼬리를 올려 웃는 듯한, 탐색하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구나. 오늘 내가 만날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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