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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Sep 09. 2023

프롤로그를 쓰기 위해 여행을 생각했습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71


1. 

입재와 회향은 목표와 목적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상시기도나 법회 때 입재와 회향이라는 예절 의식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이렇게 하겠다고 시작을 알리는 것이 입재라면, 내가 이제까지 이렇게 했다는 끝, 혹은 마무리하는 것이 회향이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자기 계발서이나 성공적인 조언을 하는 책을 보면, 시작이 반! 일단 해! 보자는 말을 합니다. 성공이 어려운 이유는 시작을 하지 못해서고 그다음이 끝까지 가지 못해서입니다. 일단 시작을 하면 다음은 어찌어찌 굴러가 완주하게 됩니다. 그러니 일단 시작하고 볼 일이라는 자기 계발서의 시작 이론에 동의합니다. 


이와 반대로 불교에서는 입재보다 회향을 중요시한다. 이제 인생 목표를 성취한 것으로 나는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삶의 목적을 비추는 것입니다. 입재는 목표를, 회향은 목적을 염두에 둔 것이지요. 그러니 입재보다는 회향이 더 큰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2. 프롤로그는 여행계획과 같습니다. 가족과 여행을 한다면, 가족 중 누군가가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고 가족 모두 동의를 얻어야 여행 준비를 하고 여행을 갈 수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 정도는 피치 못할 이유로 함께 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만장일치로 모두가 갈 수 없더라도 찬성한 남은 가족은 여행을 가겠지요. 


여행은 탐험과 모험을 통한 즐거움일 수 있고, 견학과 탐구를 하는 배움일 수 있으며 자연과 함께 사색하고 즐기는 가운데 쉼과 여유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원하도록 여행지와 여행 활동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 이유를 망라하고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출발해서 도착하기까지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또 갑니다.


처음 여행의 목표와 과정 의미를 잘 끄집어 내주면 다음 진행은 비교적 순조롭습니다. 도중에 삐그덕 거리고 예상 밖의 일이 닥쳐도 처음 의도한 바가 뚜렷하니 가려던 길에서 잠시 벗어나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돌아올 때는 처음 갈 때보다 과정이 더 쉬울 수 있습니다. 가까이 보면 지금 당장 여행을 가기 위함이지만 멀리 보면 출발과 여정 그리고 돌아옴의 순조로움을 위한 것입니다.


여행 주최자가 엄마인 나라면, 여행지와 여행 목적, 현지에서 먹거리 즐길 거리 볼거리를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계획합니다. 그래서 재밌는 여행이 될 것이니 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면 여행 중 가장 중요한 경비를 담당하는 아빠가 여행에 반응을 보입니다. 마음에 들었다면 카드 사용 한도를 대폭 늘려줄 것입니다. 혹은 여행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가지 말자거나 여행 경비를 축소시킬 겁니다. 


아이들 선택은 대략 부모의 결정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여하튼 여행을 떠나 돌아온 후에는 같은 곳에서, 같은 경험을 했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 여행은 좋았어. 다음에도 갈 거야!" 혹은, "이번 여행은 불편했어. 다시는 여행 안 갈래!" 여행 후기는 호평 혹은 혹평으로 나뉩니다.


여행을 회사에 빗대 보면 엄마는 기획자이고 설계자이며, 아빠는 투자자이고, 아이들은 소비자입니다.

책으로 연결하면 엄마는 작가이고 아빠는 출판사고 아이들은 독자가 됩니다. 작가가 원고를 투고하면 출판사는 출판 가능성을 따져 계약하고 독자는 책을 즐깁니다.


그렇다면 엄마는 여행 가자고 가족에게 애원하거나 강요하는 대신, 가족이 먼저 여행 가자고 애타게 조르도록 보여주어야 합니다. 학교와 기관의 단체 여행이나 여행상품을 소개하려면 사전답사가 필수겠지요. 하지만 서너 명이 가는 가족 여행지를 모두 다니며 실시간 찍어서 일주일 여행을 일주일 내내 보여줄 수 없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만 스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보여주면 흥미도 떨어집니다. 볼 수 있게끔 갈 수 있게끔 유혹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프롤로그가 다해야 합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기획-목차-프롤로그-에필로그-참고도서 정도의 절차를 적어둔 책이 있습니다. 책 내지의 순서로 보면 맞지만 작가의 성향과 글 쓰는 특성에 따라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보통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마지막에 씁니다. 전체를 다 쓴 후에 글 안에서 가장 보여주고 깊은 부분이 프롤로그가 되는 셈입니다. 독자가 책 표지에 혹해서 손에 책을 들고 계산대에서 책값을 지불하여 집에 가져가서 독서를 하는 그 선택의 순간은 표지와 디자인이라는 외형적인 것과 출판사와 저자의 신뢰도입니다. 여기에 힘입어 독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가능케 하는 것은 프롤로그입니다.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게 하려면 여행의 목적이 뚜렷해야 하고 여행지가 임팩트 있어야 합니다. 가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게 감정이 남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 지루하고 뻔하면 안 됩니다. 책을 쓴다면 200에서 300페이지 되는 글을 프롤로그에 상징적으로 담아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게 해야 합니다. 축약과 생략이 아닙니다. 가장 인상적으로, 가장 임팩트 있게 드러냄으로써 읽고 싶다는 욕구를 끌어내야 하는 겁니다. 



3. 목적이 먼저고 목표가 다음입니다

취미로 글을 쓰다가 책을 내는 것으로 돈을 법니다. 글을 쓰는 공간은 노트북 하나 펼칠 곳이면 어느 곳이나 가능하니 일터가 자유로우면 시간이 자유로워집니다. 여기에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유연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책을 내야 합니다. 출판사가 내 책에 관심을 보이게 하려면 출판 기획서를 잘 써야 합니다. 독자가 책을 들게 하려면 호기심과 기대를 담은 에필로그를 잘 꾸려야 합니다. 가족여행을 유도하고 엄마와 가는 여행은 일단 믿고 간다는 아이들의 격려에 힘입어 일단 프롤로그를 써봅니다. 오늘의 프롤로그는 여행계획표 말고 책출간기획과 프롤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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