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하 Sep 10. 2023

이런 출판사는 믿고 갈 만합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72

1.

나인, 아홉, 구, 9


내가 가장 많다고, 가득 찼다고 생각하는 숫자입니다. 같은 것을 반복해 아홉 번까지 실행했다면, 이제 그만하면 됐어,라고 만족하는 정도의 것 숫자가 9, 구, 아홉, 나인 nine입니다.


아홉 번 수정한 원고는 투고 후 하루 뒤 전화가 왔습니다. 출근하지 않는 수요일 아침 11시경,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아 전화받으라 했지, 생각이 떠올라 핸드폰을 찾았습니다. 부재중 통화가 세 건. 031. 이제 느낌이 옵니다. 경기도, 파주, 출판사겠구나.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지만, 다시 전화하지는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콜 센터일 것을 염두했기 때문입니다. 곧이어 문자를 확인했습니다.


문자에서 느껴지는 이곳, 여기다 싶었습니다. 전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예의를 갖춘, 배려를 아끼지 않는, 애써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본인은 출판사 팀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편집장이나 대표가 전화하지 않았으니 일단 규모가 작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팀장은 돌려 말하지 않았습니다. ‘연락 많이 받으셨지요? 작가님 글 너무 좋습니다. 저희가 하는 마케팅 보내 드릴 테니 보시고 연락 주세요’



2.

이전 내가 투고한 출판사는 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글이 괜찮습니다. 바로 출간하셔도 되겠어요.’ 여기까지는 나도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블로그 하세요? 팔로어가 얼마나 되죠? 무슨 일을 하시는지요?’ 이어지는 질문은 책을 내면 얼마나 팔 수 있느냐를 둘러서 말한 겁니다. 결국, 책을 내줄 테니 다음은 작가가 좀 팔아주셔야죠? 답이 보이는 질문입니다. 물론 나의 오해고 편견일 수 있지요. 하지만 그럴 거라 믿고 오해받을 만한 질문이 훅 들어오면 나는 "인연이 아닌가 보네요!" 하고 끝을 냅니다.


"예전에 쓴 글은 무엇인가요? 이전에 책을 출간한 적이 있나요? 문예지에 글이 올라왔나요? 이전에 어떤 글을 썼나요? 글 쓰는 일을 하시나요?" 


출판사는 작가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 어울립니다. 어떻게 책을 팔 것인지, 얼마나 팔 수 있는지, 속이 보이는 질문은 작가 이전에 나 개인에게는 불편한 질문입니다. 왜냐면 나는 책을 팔 능력도, 판로도, 방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3.

나는 지금까지 책과 관련한 커뮤니티나 소모임이 없습니다. 딱 하나가 있으나 그곳은 친목 도모에 책을 끼어 넣은 것일 뿐, 독서나 출간이 주요 목적이 아닙니다. (아니었습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으니, 이 또한 품앗이인 것을, 책 한 권 사달라고 부탁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책을 어떻게 팔 것인가 하고 직간접적으로 물어오는 출판사와는 계약은 없던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책 팔 능력이 있더라면 진작에 책을 냈을 겁니다.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써놓고 출판 계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써놓은 글은 좀 되지만 책으로 낼 수준이 안된다는 것이 일차적 이유였고, 내가 내 책을 팔 능력이 없으니 스스로 위축되어 출판사와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곳 출판사는 내가 투고한 글에 대한 평을 먼저 하고 판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곧장 서점으로 갔습니다. 한나절 서점에 틀어 박혀 책을 읽었습니다. 7시간을 쪼그리고 앉아 쥐가 온 다리를 꼬았다 폈다 반복하면서 오전에 전화 온 출판사에서 낸 책을 찾아내 릴레이 독서를 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문자를 보냈습니다. 



3.

책을 냅시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를 소개가 아닌 자랑 좀 하겠습니다. 끌린다는 것이 그런 건가 봅니다. 출판사로부터 값진 선물을 받았습니다. 제품에는 가격이 적혀있지만 더는 그 가격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아니라 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출판사에서 어렵게 구해 나에게 주었습니다.


엄마책에서도 두 번째 책 초고에서도 이미 몇 번 언급 했습니다. 나는 대학 때 처음 법정 스님의 책을 접했습니다. 문고판으로 손바닥만 한 책이었는데 내가 태어나던 해에 출간된 책입니다. 처음에는 스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꼬장꼬장한 노인의 노파심이나 훈수 정도로 받아들였고 두 번째는 내 처지에 감안하여 읽었기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스님의 책을 하나씩 추가해서 읽었고 엄마가 떠난 후 방황하던 시간에 나를 잡아준 것은 누구도 아닌 스님의 책이었습니다.


스님이 떠나시며 더 이상 개정판도 증가판도 없다는 유지를 받들어 스님 이름으로 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책을 사려고 했을 때는 절판이어서 손에 쥐지 못한 것에 갈망이 커졌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초파일을 앞두고 사부작사부작 혼자 뭐를 준비하고, 라디오 한 프로그램에서 법정 스님 주간 코너 놓치지 않으려 부처의 말씀 생각주간으로 많은 것을 쉬어갑니다. 법정 스님은 나에게 등불이고 스님 말씀은 내가 살아가는 길 위의 철학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산이 보이는 뒷방에서 법정 스님 책과 함께 북 큐레이터 놀이 중입니다. 제 책 눈물나는 날에는 엄마를 세상에 보여준 모두가 다~ 인연이라는 다연 출판사로부터 아주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책 속에 절 이야기, 스님 이야기, 법정 스님 이야기를 넣었는데 그걸 잊지 않으시고 보내신 겁니다. 내가 갖고 싶었던 바로 그 마지막 인쇄본 그것도 전집입니다. 오늘 이 은혜와 감사를 어찌할까요?


스님이 말씀하시는 무소유란, 필요치 않은 것을 갖지 않는 마음이라 하셨습니다. 한 개의 소중함이 두 개일 때에는 그 힘이 퇴색한다, 하셨습니다. 잠시 두 개 욕심을 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소중함을 간직하기 위해 다른 하나는 내어놓겠습니다. 조만간.


책장에 두 세트 나란히 놓으니 웃음이 절로, 콧노래가 흐릅니다. 평소 스님께서 좋아하시던 김광석 노래도 풍경에 넣겠습니다.


아,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를 쓰기 위해 여행을 생각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