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매사에 열심히 살았으니까

by 퀸스드림


애앵 애앵 애애앵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방송에서 뭐라고 하는데 통화 중이라 잘 들리지 않았다. 전에도 가끔씩 화재경보기가 울렸고, 예행연습이라는 멘트가 나왔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때 딸아이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엄마 회사에 불났어?” “아니, 경보기가 잘 울리는지 테스트 중일 거야” “엄마, 불나면 ‘불이야! 하고 외친 다음에 몸을 숙여서 빠져나가는 거야. 알지?” 아이는 유치원에서 소방훈련을 잘 받았나 보다. 엄마인 내게 불이 났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그런데 그날은 좀 느낌이 이상했다. 아이와 서둘러 전화를 끊고 사무실로 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났다. 재빨리 사장님 실로 갔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고 그제야 방송 멘트가 제대로 들렸다. 화재가 났으니 빨리 대피하라는 방송이다. 사람들이 계단으로 서둘러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장님, 예행연습이 아니라 진짜 불났나 봐요. 빨리 나가셔야 해요!!!”







요란하게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다들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서 나가는 분위기다. 여의도에 15층 되는 건물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한 군대가 계단을 타고 무섭게 내려가는 소리가 사람들을 더욱 긴장 시켰다.




건장한 남자 직원들이 사장님 실로 몰려왔다. 휠체어를 타시니 여차하면 힘으로라도 들고 내려갈 작정으로 다들 몰려온 것이다. “뭘 그리 서두르냐.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처해야 해. 어차피 나는 계단으로 못 가. 죽을 사람은 접시에 코 박고도 죽고 살 사람은 어떻게든 다 살더라.”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는데 다행인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럴 때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아무도 타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유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여의도 중심가라 소방차들이 몇 십대가 오고 발 빠른 소방관들의 대응 덕분에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다만 연기가 온 건물을 꽉 채웠기에 한동안 들어가지 못해 밖에서 대기하다가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사장님. 불이 나는데 어디서 그런 여유가 나오나요?”


“내가 죽을 고비를 한두 번 겪어봤냐? 일본에 있을 때는 40층 건물에 불이 났던 적도 있었어.” 하시면서 그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다. 매사에 열심히 살았으니까”




뭐라고 많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마지막 멘트가 워낙 강해서 그런지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사장님 나이쯤 됐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살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 말 그대로 매사에 열심히 살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에 지금 내가 죽는다면 나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삶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부모님한테는 죄송한 말이지만 30대 때까지 나도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조금 달라졌다. 이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이 필요 없을 때까지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직 못다 한 일들이 너무 많다. 하고 싶은 일들도 많고, 아직 내 인생에 있어서 이렇다 할 결과물들도 만들어 놓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죽는다면 많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장님은 예전에 비행기 안에서 맹장이 터져서 죽을 뻔한 경험을 하셨다. 그때 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 입원해 있는데, 한 겨울 새벽에 청소하시는 분이 입에서 허연 입김을 훅훅 불어가며 청소하시는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우셨다고 한다. ‘만약 내게 삶이 더 허락된다면 저 사람처럼 열심히 한번 살아보고 싶다. 더 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많이 도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고, 지금은 언제 죽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장님이 부러웠다.




여러 번의 죽을 고비가 사장님을 참 많이 살렸다. 하나님이 사장님의 수명을 늘려주신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 겪었던 그 죽을 고비들도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고비고비를 넘을 때마다 삶의 의욕을 얻으셨고, 그 의욕을 담보로 자신과의 약속, 신과의 약속을 했었을 것 같다.




분명 하나님이 나를 만드실 때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그 소명을 이루게 하기 위해 고통을 허락하시고, 그 고비고비를 넘길 때마다 삶의 의욕을 재점검하라는 사인을 보내셨다. 훗날 때가 되었을 때 사장님처럼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다. 매사에 열심히 살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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