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꽂으면 맞는 사람도 꽂은 사람도 둘 다 아프기만 하다
3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 행사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여기를 스쳐 지나간 분들도 초대하게 되었다. 초대에 응하신 분들도 많이 계셨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겠지만, 나도 그랬지만 한번 그만둔 곳을 다시 찾는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전에 사장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다른 사람에게 칼을 꽂으려면 제대로 꽂아라. 어설프게 꽂으면 맞는 사람도 꽂은 사람도 둘 다 아프기만 하다.”
이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기는 한데,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을 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그만두려고 하면 제대로 준비해서 잘 되라는 것이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여기 있었던 사람이 다른 곳에 가서 뭔가 잘 안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속상하다고 한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나는 직원이라서 그런지 늘 떠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했던 것 같다. “저 사람은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가는구나.” 그 사람이 잘 되는 건지 잘못되는 건지도 모르면서 여기를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꿈을 찾는 거라 생각했다. 나도 회사를 나갔을 때는 얼떨결이었고 갑작스러운 것도 있긴 했지만, 늘 직장인들의 가슴 한편에 있는 퇴사라는 꿈이 있었다. 왠지 여길 나가서 뭔가 하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꿈. 아이 키우면서 자신의 일도 찾아서 성공한 케이스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1~2년간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들이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 1년간 안식년을 갖는 것처럼 나 또한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스스로에게 주는 안식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안식년이 길어지니 슬슬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 앞에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말이 붙으면서 그것도 참 듣기 싫어졌다.
그래도 꾸준히 무언가를 위해 움직였던 것 같다. 소규모로 무역도 해보고, 사람들도 가르쳐보고, 책도 꾸준히 읽으면서 글도 쓰고 강의도 했다. 딱히 망한 것도 없지만 성공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해 보지도 못했고, 나의 모든 것을 걸지도 못했다. 아이가 있으니까... 육아가 먼저이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서..라며 스스로 그럴싸한 이유들을 만들어갔다.
사장님 표현에 의하면 정말 제대로 칼을 꽂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사장님께 연락을 먼저 드리지 못했던 것도 있다.
“요즘 뭐하고 사니?”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육아하고 있죠.”라고 해도 뭐라 하지 않았을 텐데 스스로가 자신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꾸 숨게 되는 것 같다.
사장님이 자주 이용하시고, 나랑 연결되어 있는 SNS는 사용하지 않게 되고 사장님이 가끔 올리는 소식만 봤다. 여전히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과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 회사를 보면서 이유도 모를 한숨을 내쉬곤 했었다.
아마 많은 여성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할 것 같다. 아니면 앞으로 그런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혹시 육아로 인해 퇴사를 고민하는 여성분들이 있으면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한 번만 더 고민해 봐’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정말로 칼을 갈 듯이 진짜 준비를 제대로 하고 나서 그만둬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설프게 꽂고 나오면 맞는 사람도 꽂은 사람도 둘 다 아프기만 하다. 나는 그걸 경험했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었고, 마음만 앞섰다.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퇴사하는 거야”라는 하얀 거짓말로 나 자신을 속였었다. 그때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었고, 부품 꿈만 가지고 있었다.
듣기 좋게 ”망한 건 없지만 성공한 것도 없어!”라는 것도 나 자신을 위한 말이다. 나는 실패했고, 그 경험들만이 차갑게 식어버린 쓴 커피처럼 남아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던 것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실패도 경험이라며 나 자신을 토닥거렸다. 맞아.. 그래... 하면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는 것이다.
한동안 ‘퇴사 학교’도 있고 ‘제대로 퇴사하기’라는 말이 유행일 정도로 퇴사를 아름답게 표현한 말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에게 미생에 나온 말을 해 주고 싶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위험한 것에 과감히 뛰어드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도 용기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불나방 같았던 나의 30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회사에 눈치 없이 60살까지 버티겠다는 말은 아니다. (이거.. 사장님 보시면... ^^“) 다음번에는 제대로 칼을 갈고 나갈 것이다. 숨통을 끊어줄 만큼... 제대로 칼을 간 다음에 휘둘러야겠다. (헉! 너무 무서운 말이지만.. 그럴 각오로 나가겠습니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