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과 행복하시길...

by 퀸스드림

아침 뉴스를 보다 비보에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어느 개그우먼이 엄마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였다. 나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데, 마음이 너무너무 아팠다. 그녀의 기사 밑에는 모두가 고인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담은 댓글이 담겨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평소 앓아왔던 병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엄마가 서울로 올라와 딸과 함께 지낸다는 말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그우먼에 대해서 안타까운 죽음이라 말할 때, 나는 딸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딸과 사이가 좋았다고 하는데,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저승까지 함께 한 그분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얼굴 한번 본 사람도 아닌데... 사연만 들어도 마음이 아파진다. 내가 이해력이 높은 사람도 아니었는데, 엄마와 딸의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펑펑 쏟는다. 내게 딸이 생긴 이후부터 그런 것 같다. 감정 기입이 저절로 되면서 눈물부터 나온다.



그전 같았으면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그 힘으로 살지...”라는 못난 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얼마나 힘들었으면...”하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을 이해한다기 보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이 먼저 내게 와닿는다.








실은 나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것 없고, 행복할 것만 같은 나의 모습인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픔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임신,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포상기태 임신’을 하면서 갑작스럽게 소파수술을 하게 되면서였다. 임신을 알게 되고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때는 너무 빨리 진행돼서 슬퍼할 겨를도 없었는데, 막상 수술대에 올라가고 나서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음의 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이때부터 인 것 같다. 내가 너무 힘드니까 나 좀 봐 달라는 말도 제대로 못했다. 바쁘니까... 일하니까.. 이해하는 척했지만, 정작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런 경험이 나도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도 못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는 성격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다. 언니가 동생들에게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여주기 싫었다. 아니 어쩌면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혼자서 마음의 병을 앓았을 때 어느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머니학교’에 갔다.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눴다. 각자의 아픔, 슬픔, 고민거리들을 서로가 나눴다. 아마 이런 자리였으면 참석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자녀 양육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서 왔는데, 결국에는 엄마들의 마음치료 교실 같은 것이었다. 하긴 엄마들이 건강해야 아이 양육도 건강하게 할 수 있으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저희 집이 10층인데 어느 날 아래를 내려다 보다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 그럼 아이는 어떡하나? 아이와 함께 떨어져야 하나? 그럼 아이는 무슨 죄지?”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무덤덤하게 말했었다. 오히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나의 속마음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그 모임을 주도하셨던 권사님이 나를 꼭 안아주시면서 나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자고 하셨고,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셨다. 기도를 하면서 사람들이 나 대신 눈물을 흘려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나는 혼자 울지 않고 그 기도 소리를 다 듣고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사람들 앞에서 감정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특히나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어려워한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운다는 의미는 나약이라는 단어와 연결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남자는 울면 안 되고, 여자들도 "울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다. 그냥 울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도 거의 울지 않는다. 아무리 슬퍼도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런데 요즘에는 예전보다 훨씬 많이 운다. 우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울고 난 다음의 시원함을 알아버렸다. 꺼이꺼이 목 놓아 울지는 못하지만, 눈물 뚝뚝 흘리고 나면 개운함이 있다.



눈물과 함께 아픔도 닦이는 느낌이다. 드라마 보고서도 울고,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운다. 이제는 덜 부끄럽다. 울면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딸이 와서 안아주고, 친구들이 와서 안아준다. 울어도 괜찮다고 할 때 더 크게 우는 것보다 오히려 멈추게 된다. 앞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게 될 때 그냥 울려야겠다.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나면 개운하게 웃을 수 있으니까...



그녀도 누군가에게 기대서 꺼이꺼이 울었더라면 조금 더 버틸 힘이 생기지 않았을까?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는 말. 정말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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