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이 붙어 있으면 희망이 있다.
또 생활고로 한 엄마가 아이와 함께 목숨을 끊으려다 아이만 죽고 엄마는 살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자막으로 지나가는 뉴스였지만 유독 이런 뉴스는 눈에 들어온다. 아이 나이가 너랑 똑같아서 그런지 한 줄짜리 뉴스에 마음이 간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 그냥 마음이 아프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너와 같은 딸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내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대자로 뻗어서 자는 너를 보면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꼭 끌어안아 본다.
코로나가 뭔지…. 많은 사람들이 병이나 고난으로 죽어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6분마다 한 명씩 사망한다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지만, 현재 너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전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죽을 용기로 살지….’라는 철없는 말을 했었는데 이제는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신은 분명 감당할만한 고통만 준다고 했고, 피할 길을 내어 주신다고 했다. 너는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한정 지을 수도 있지만, 이건 신이 너를 믿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둘째 아이를 잃게 되었을 때 산후우울증처럼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내 마음에 힘이 없었다. 삶에 의욕도 없었고 아무런 재미도 없었다. 네가 내 옆에서 방긋 웃고 있었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그때는 독박육아 때문이라 생각했다. 수술 후 몸도 힘든데 마음도 힘들었다. 10층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잠에서 깨 울고 있는 너를 보면서 정신을 차리기도 했었다. 너를 어르고 달래면서 내가 없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에 그럼 너를 먼저 던지고 내가 따라 죽어야 하나? 하는 끔찍한 생각도 했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그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소름 끼칠 정도로 너무나도 무서운 생각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할 수가 없어서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엄마도 동생들만 둘이 있다 보니 동생들에게 언니의 아픔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힘들었고, 장녀이다 보니 부모에게도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사회에서도, 모임에서도 항상 바른 모습만 보이려고 했던 사람이라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만큼 가면을 쓰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가면이 나인지 내가 가면인지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어서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어떻게 해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물론 엄마에게는 종교의 힘이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믿음이 강하지 않았을 때인데도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말이 무서웠었다.
죽어서도 편안한 길을 가는 게 아니라 불구덩이 속으로 간다면 차라리 이 세상에서 힘든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옛날 어머니들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 때문에 죽지 못한다는 말도 실감했다. 네가 나 없이도 잘 있을 수 있을 때까지 만이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라도 하면서 삶을 놓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네 덕분에 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덕분에 살게 되었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니 살게 되더라. 어쩔 수 없이 산다면 아마도 이렇게 살지는 못했을 것 같다. 엄마는 네 덕분에 산다고 해 놓고 보니, 네 덕분에 삶에 욕심이 난다. 네가 나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렇게 욕심내며 살 것 같다. 그리고 엄마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약속... 참 무서운 약속이다.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벌써 몇 번은 포기하고 살았을 삶이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죽었다간 나중에 천국이던 지옥이던 하나님 만날 자신이 없다. 그분 만나서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분명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간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니.
딸아, 세상이 너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단다. 누구나 다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상황이 너를 벼랑 끝으로 몰아갈 때도 있고,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이 막힐 때도 있다. 하지만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목숨이 붙어 있으면 희망이 있다.’ 네 몸에 숨이 붙어 있는 한, 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네가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다시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삶을 네 뜻대로 포기하는 일을 절대로 없었으면 좋겠다.
자존심이 너보다 소중하지는 않다. 자존심 밟히는 일이 있더라도 괜찮다. 지금은 죽을 것같이 힘든 일도 나중에 시간이 해결해 줄 때도 있단다. 나락으로 떨어지면 사람들이 너를 불쌍하게 볼 것 같지? 그리고 그 시선이 두려울 것 같지? 잠시 그렇더라도 그 사람들은 그 기억을 금방 잊을 것이고 너에게 큰 관심도 없다. 돈 문제라면 다행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니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도 네가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네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도 제발 살아다오. 어떻게든 버텨내고! 잔인한 말이겠지만, 인내해 내렴. 그리고 그렇게 힘들 때 당연히 엄마를 찾아준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럴 상황이 안 되면 네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라도 손을 내밀었으면 좋겠다.
반대로 네 옆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힘들어할 때 네가 힘이 돼 주었으면 좋겠다. 자살하는 사람이 죽기 전에 전화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을 잡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라고 하더구나. 그때 제일 듣고 싶은 말이 “너 어디야? 내가 갈게.” 이 한마디면 된다고 한다. 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네 덕분에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엄마가
PS.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단다. 그것을 사명이라고 하지. 존재의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네 존재의 의미를 잊지 말렴. 너의 존재만으로도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행복하단다. 너의 사명을 잊지 말렴. 분명 그 사명이 너를 일으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 말을 네게 직접 하면 잔소리한다고 할까 봐 글로 적는다! 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