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피터
쏟아지는 햇빛, 새파란 하늘, 싱그러운 초록과 탐스러운 과일들.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탈리아의 여름 에 벌어지는 소년과 남자의 사랑 이야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름다움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미(美)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영화이다. 그리스 조각상같이 아름 다운 소년 엘리오와 제멋대로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미국인 올리버의 사랑 이야기를 보고 나는 이 이야기가 내 이야기였으면 하는 질투심까지 느꼈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영화이 다. 단순히 배경과 인물의 비주얼에서 오는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귀를 황홀하게 만드는 음 악, 지적이고 문학 같은 대사들이 우리를 홀린다.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타지를 완전히 충족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첫눈에 이 영화와 사랑에 빠졌었다. (왓챠피디아를 찾아보니 무려 별점 5점 을 줬었더라) 흔히 하지 않는 재관람을 했고, OST가 좋아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CD를 샀으며, 포스터 같은 굿즈를 모았다. 구아다니노의 완벽한 미감이 빚어낸 판타지에 완전히 매료되었었다.
하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모든 것은 영화이고 판타지이다. 나에겐,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엘리오의 여름은 없다. 올리버와의 강렬한 첫 사랑,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부모님과 친구 마르치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자연, 그 지적이고 이상적인 주변 환경은 없다.
영화를 처음 봤던 때보다 지금의 내가 현실적으로 변한 것일까?
다시 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예전만큼 크게 와닿지 않았다. 물론 영화 장면들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는 순간들 이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물론 처음 봤을 때도 나와 멀리 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무언가 일말의 희망 같은 것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에게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같이 느껴졌 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내 인생에 있을까? 그것이 진짜 실존하는 것이긴 할까? 엘리오와 올리버 같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 걸까? 사랑이 인간 존재의 본질인 걸까? 영화에 대해 변화한 나의 마음이 사랑알못인 나에게 꼬리의 꼬리를 무는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현실을 잠시 떠나 그 속으로 몰입하여 들어가 보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나도 영화에 푹 빠져서 엘리오와 함께 울고 웃었었다. 나에게도 올리버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었다. 그랬던 내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저 ‘영화 참 예쁘게도 만들었다.’ 정도의 감 상만을 남기게 되었다니… 복잡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비단 이 영화뿐만 아니라 요즘 영화를 볼 때 몰입하는 것이 잘 안되는 느낌이다. 영화와 사랑에 빠졌던 그 처음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아직도 사랑하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