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어쩔수가없다>_그래서 진짜 어떻게 대처할건데

by 에바

by 퀴어씨네클럽

나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재미없었다. 극장을 나오며 이 영화가 결국 재미없었던 이유에 대해 천천히 곱씹다가, 그럼에도 강렬하게 남은 장면을 떠올렸다. 바로 ‘범모’의 아내 ‘아라’가 남편 ‘범모’를 향해 총을 겨누며 다음 대사를 외치는 장면이다. ‘실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게 문제라고!’

어쩔어쩔.jpeg 영화<어짤수가없다>에서

‘어떻게 대처.’ 이 말이 왜 이렇게 낯설면서도 꽤 익숙할까 생각해보니, 내가 일을 막 시작했을 시절이 기억나서였다. 첫 회사생활, 워낙 덤벙대는 성격 탓에 늘 긴장상태였다. 혹시 내가 실수해서 일을 더 키우거나, 회사에 피해를 줄까봐.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었다. 하지만 피해끼치지 말아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오히려 잔실수를 하거나, 혹은 사소하게 저지른 과오를 들키면 안된다는 생각에 꽁꽁 감싸고 해결이 안된채로 끙끙 앓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나의 긴장 아우라가 느껴졌는지 사수는 내게 다정한 한 마디를 해주었다. ‘실수는 할 수 있어요. 수습만 잘 하면 돼요.’ 이 말 한마디는 ‘일’을 바라보는 태도를 고쳐주었고, 이것이 곧 일 뿐만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도 자연스레 연결되는 말 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서서히 내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어떻게 대처’ 해야하는 지 스스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일단 수습을 잘 하자.’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 가장이 맞닥뜨린 해고 통보. 주인공 ‘만수’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살인이다.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만수의 행동을 보며 그래, 저렇게라도 수습하려고 애쓰는군.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만수가 내게는 오히려 능동적인 인물로 다가왔다. 이상했다. 결국 만수의 수습을 위한 역경이 아라의 ‘어떻게 대처’와 맞물려 살인을 수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떻게 대처’는 삶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임에도,


이 영화에서는 왜인지 그 말이 낯설었다.


<어쩔 수가 없다>가 극장에 걸렸을 때, 동시에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저 사고였을 뿐>도 뒤이어 개봉했다. 두 제목은 가만 들여다보면 ‘합리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연상케 한다. 두 영화가 같은 시기에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우리가 분명 놓치지 않고 주시해야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 아닐까. ‘수습’만 잘해와서 우리가 이제껏 ‘방관’, 혹은 ‘방치’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어쩔 수 없어’. 이미 벌어진 일을 대처하기 위해 이행해온 가벼운 말들과 합리화는 한 개인의 살인을 수긍하게 되는 무거운 결과로 다가온다.


어쫄어쩔.jpeg 영화<어짤수가없다>에서

실직 뒤 만수가 관자놀이 어디쯤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자기세뇌하는 장면은 나도 모르는 사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삶에 잘 대처한답시고 ‘어쩔 수 없이’ 수습해온 것들. 그런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합리화해온 건 아닐까. 기계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모가지가 잘리는 나무를 보며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빠르게 대처되는 이 시간들이 잠깐이나마 멈춰졌으면 좋겠다고.

작가의 이전글영화<어쩔수가없다>_플랜B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