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세리코르디아>_금기를 금기한다.

by 도롱

by 퀴어씨네클럽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시점 숏으로 한참 따라가 도착한 마을. 그곳은 주인공 제레미가 오래 전 떠나온 곳이었다. 마을 제빵사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었는데, 죽은 이가 바로 제레미가 오래 전 사랑했던 장피에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은 연인을 추억하는 퀴어 영화로 예상되는 아주 흥미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제레미는 장피에르의 부인의 제안으로 혼자 사는 그녀의 집에서 지내는데, 여기서부터 인물들에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한다. 제레미가 게이가 아니라 양성애자야? 장피에르의 부인은 남편을 사랑했던 남자를 흠모한 걸까? 이건 치정극이야?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영화에 집중한다.

미세리1.jpeg 영화 <미세리코르디아>에서

곧 등장하는 인물은 제레미의 친구이자 장피에르의 아들이다. 다소 거칠지만 묘한 육체의 대화가 오가는 두 사람을 보며, ‘어라? 이 둘이 과거에 사랑하는 사이였던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어 또 다른 친구 왈테르를 유혹하는 제레미의 모습을 보면서는, ‘얘도 게이야? 쟤도 게이야? 이 영화 동성애 활극이야, 뭐야?’라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그러다 엄마에게 불온한 마음을 품고 접근한 걸로 오해한 아들과 다투던 제레미는 싸움 끝에 그를 죽이고 마는데. ‘이 영화 정체가 뭐야? 범죄 스릴러야?’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으며 다시 영화에 집중한다. 제레미가 시체를 수습하거나 범인으로 몰릴 때마다 그를 구해주는 고령의 사제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종교 영화와 블랙코미디가 뒤섞인 듯한 냄새가 풍긴다. 그리고 도착한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 극장을 나오며


‘내가 뭘 봤나?’


영화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미세리코르디아>는 나의 영화 보기 방식을 모조리 쳐부순 영화였다. ‘이렇게 진행되겠지, 저렇게 흘러가겠지’ 예상했던 모든 것이 빗나갔다. 그리고 여태껏 “어떤 소재든, 어떤 이야기든 수용할 자신 있어!”라고 외쳤던 나 자신도 산산이 부서졌다. ‘게이가 왜 여자와 한 침대에 눕지? 어떻게 저런 못난 사람을 흠모할 수 있지?’라며 사랑에 한계를 뒀고, ‘사제는 인간의 기본 욕구조차 없는 성스러운 존재일 것’이라는 편협한 인식에 갇혀 있던 인간이었다. 더 나아가, 이 영화 통해 나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혹시 선입견에 갇혀 그렇고 그런 이야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 쓰고 있는 단편 영화도 그 이유 때문인지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명절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게 위로받는 게이 삼촌과 게이 조카의 이야기다. 수정 중인데, 삼촌과 조카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조금이라도 감지될라치면 괜히 죄책감이 들어 다시 고치기 시작한다. 주변에서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뜯어말린다. “어떻게 조카랑 삼촌이 사랑해요!”라는 반응 앞에, 또 설득당해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 물러서고 만다.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고 싶다.


비틀고, 구겨도 보려고 한다. 금기를 금기하며. 그러고 나면 적어도 ‘그렇고 그런 영화’로만 기억되지는 않겠지. 삼촌과 조카의 사랑? 그게 왜 안 되는데!

작가의 이전글영화<어쩔수가없다>_그래서 진짜 어떻게 대처할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