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피터
개인적으로 지독한 사랑 이야기, 멜로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 때문에 죽인다 살린다 울고 부는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저러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흔한 이성애 영화는 아니어서인지 보기가 힘든 영화는 아니었다. 물론 레즈비언 퀴어영화라는 점이 빚어내는 몇몇 독특한 부분을 빼면 알고 있던 멜로영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사랑을 다룬 영화, 아니 그걸 넘어 사랑 이야기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아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특히 사랑과 관련된 극적인(지독한) 이야기를 담은 멜로드라마는 인류의 영원한 베스트셀러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멜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걸까?
어쩌면 그런 진한 사랑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만나보며 많은 경험을 해보라고 말한다. 가끔 내가 옛날에 연애를 많이 해봤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20대의 나는 외로웠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이 많았고 극도의 회피형 인간이었다. 사랑과 정체성뿐만 아니라 삶의 대부분에서 나는 한 발짝 늦었고 복잡한 문제는 미루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옷장에서 나오는 것이나 나아가 누군가를 만나고 연애를 한다는 것은 내 현실에 존재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고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무뎌졌고, 신경 쓸 것들이 많아져 사랑이라는 것은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트는 것 같지만, 최근에 HSP(Highly Sensitive Person, 고도 민감성 개인)라는 개념을 접했다. 선천적으로 매우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인터넷으로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니 대부분 항목이 나에게 해당하였다. (자기 연민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내 삶의 난이도를 올렸던 나의 성격이 선천적인 기질 때문이었다니, 삶에 대한 실마리가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모든 HSP인 사람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겁이 많고 회피적인 성격이었던 것이 이것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나의 예민함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쉽지는 않지만 ‘T’를 추구미로 남들에게 신경 끄고 무뎌지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모임을 통해 평소의 나라면 절대 보지 않았을 <러브 라이즈 블리딩>이라는 영화를 보고, 혹시 봤더라도 지긋지긋하다며 넘겨버렸을 내가 글을 써보며 생각을 정리해보게 되었다. 인간들이 그렇게 매달리고 갈구하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대체 뭔지, 내가 왜 사랑 이야기를 썩 내키지 않아 하는지, 나아가 내가 그토록 사랑을 꿈꾸면서도 왜 그럴 용기가 없었는지 까지.
나도 이 영화처럼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