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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자무 Feb 13. 2023

[책] 공쿠르상 수상작 <아노말리>

울리포 문학은 놓칠 수 없지

조승연 유튜브 채널을 보다 에르베 르 텔리에 작가의 ‘아노말리’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요즘 불어를 배우고 있기에 불어 원서를 사보려고 검색을 해보았다가 결국 오만원이 넘는 원서 가격에 사진 않았지만 책이 꽤나 흥미로워보여 한국어판을 샀다.


’똑같은 승객을 실은 비행기가 삼개월 간격으로 두 번 착륙을 한다면?‘ 이라는 주제와 ‘공쿠르상 수상작’ 이라는 타이틀도 이미 끌리게했지만 작가가 프랑스 실험문학 집단인 울리포의 회원이라는 점이 나를 고민 없이 구매버튼을 누르게했다. 조르주 페렉, 레몽 크노로 유명한 독창적인 문학그룹이다. 나는 그들의 작품들을, 새로운 시도를 향한 그들의 정신을 사랑하기에 플럭시스 그룹의 예술을 사랑하고 누벨바그 영화를 사랑하듯 보이는 족족 소비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공쿠르상 수상작이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수상작들 중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이후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한 작품이라고 하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첫장을 펼쳤을 때는 너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참으로 유러피언 베스트셀러 답게 범죄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열명정도의 인물의 다양한 시각을 담은 옴니버스 형식인 이 소설의 이야기를 연 첫번째 인물은 신분을 감추는 데에, 또 살인을 하는 데 너무나도 능숙한 연쇄살인범이었다. 일본과 유럽은 범죄 스릴러물이 압도적인 판매고를 자랑한다던데 그런 것을 의식한 것일까. 취향이 아님에도 흡인력은 확실했다. 그리고 곧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번역자이자 작가인 이야기가 나왔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고 언어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 인물에 가장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아노말리>라는 책을 출간하고 자살을 하는데, 이 책의 내용과는 다르다. 나는 특히 그 인물이 상을 받으러 뉴욕에 있는 ‘앨버틴Albertine’ 서점에 가는 묘사가 나왔을 때 너무 반가웠다. 작년 겨울 <자기 앞의 생> 불어원서를 사왔던 곳이었다.  건물 안에 있었는데 들어가는 로비가 너무 예뻐 놀랐고 입구에 붙은 아니 에르노의 인터뷰 행사 전단을 보고 기간이 지난 것도 모르고 설레서 예약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사서 그 옆의 센트럴 파크의 초록색 벤치에서 잠시 앞부분을 읽었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해서 더 몰입하고 읽게 되었다.


이 부분은 스포 주의!

이야기는 그 비행기에 탑승한 열명 남짓의 승객들의 삶을 옴니버스 식으로 보여주고 각 그 날의 비행이 각자에게 어떤 맥락이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번역을 할 뿐 성공적인 작품을 못 낸 오십대 작가, 신분 위장에 특출난 살인마,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건축회사 대표, 직업 군인 남성과 그의 폭력에 시달리는 가족, 나이지리아 출신 유명 가수, 변호사 등등. 그리고 똑같은 비행기가 삼개월 뒤 뉴욕 JFK에 착륙을 시도할 때 정부는 이를 포착해서 뉴저지의 다른 곳에 착륙을 시키고 이 현상의 원인과, 똑같은 이가 두명이 된 현실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고민한다. 원인은 시뮬레이션 우주론과 관련이 있었는데 다중우주론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읽던 나에게는 시뮬레이션 우주론과 연결을 짓는 부분이 설득이 잘 되지 않았다. 아무튼 정부는 탑승객 리스트를 대중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원하는 이들에게 가짜 신분을 만들어주고 세상에 그들을 풀어놓으며 승객들은 각 자기자신을 만나게 된다. 어떤 이는 자기가 그 승객이었다고 세상에 공개를 하고, 어떤 이는 잃어버린 쌍둥이를 찾았다고 위장한다. 어떤 종교단체는 그들이 악마라고 시위를 하고 한 극단주의 또라이는 방송에 자신들이 그 승객이라고 공개한 소녀들을 총으로 죽이는 참사도 벌어진다.


우리의 우주가 정말 시뮬레이션 우주에 있고 어떤 실력없는 외계인의 망한 과학 숙제같은 거라면,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알아챈다한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가뜩이나 근 오년 동안은 세계적으로 기상천외하게 안좋은 일들만 벌어지는 느낌이어서 이미 누군가 지구를 갖고 장난치는 느낌이 들던 터라 이입이 너무 잘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 연인과의 이별을 겪었기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날 실망시키기 이전 버전의 그 사람이 그 두번째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다면, 우리의 이별을 기억하지 못하고 날 실망시킨 그 일을 아직 저지르기 전 그 상태로 나를 보러온다면, 나는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금방 결론이 났다.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사실 인간이란 생각보다 단순하고 수동적이어서 ‘그럴 줄 알았다’ 싶은 일은 언젠가 저지르고 만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느껴버렸다.


그래서 책속의 이 인용이 특히나 공감되었다.


헛되고 헛되다, 코렛이 말한다.
하벨 하발림
하벨, 코렛이 가로되,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은 어디로 흐르든 다시 그곳으로 흐른다.
이미 있던 것이 장차 있을 것이요.
이미 이루어졌던 일이 장차 이루어지리니
해 아래 새것은 없다.


뉴욕의 프랑스서적 전문서점 Alber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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