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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자무 Dec 13. 2022

[영화] 낸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낸 골딘이 나래이션을 하고 낸 골딘의 삶을 다루는데 안좋을리가 없지


뉴욕에서의 9월은 뉴욕필름페스티벌을 비롯해서 코믹콘, 브루클린북페스티벌 등 온갖 축제가 많았다. 한 시간 짜리 토크 혹은 모든 참가비가 최소 10만원을 넘는다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 없어서 그 무엇도 하지 않았지만, 프로그램 중에는 정말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영화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평소 낸골딘을 좋아함에도 포스터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하고, 낸골딘 느낌 좀 나는데? 하고 클릭을 했다. 정말 낸 골딘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낸골딘이라면 무조건 봐야했다. 내가 제일 가장 최고로 좋아하는 사진작가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페스티벌 영화티켓은 80불이었고 당시 환율로라면 12만원정도였다. ㅎㅎ.. 황당한 가격임에도 볼까 말까 굉장히 망설였지만 그래도 당시 결정할 시간이 많지 않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삼개월 뒤 단돈 12불에 링컨센터에 올라온 이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영화에 대해 말하기 전에 개인적인 나의 낸 골딘 사랑의 역사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낸 골딘의 사진을 처음 보게 된 계기는 대학생 1학년 사진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훌륭한 사진가들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제비뽑기처럼 만들어 우리에게 뽑게 하고 수업시간에 그들에 대해 발표를 하게 했다. 스물대여섯명 정도였을 것이다. 내가 아는 사진작가가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낸 골딘이라는 모르는 사진작가가 뽑혔다. (심지어 당시에는 Nan Golden이라고 오타도 나있었다.) 나는 왜 만 레이나 어빙 펜 같은 사진작가가 안나왔지 아쉬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이 어찌나 고마운지, 그런 기회가 없었다면 나는 그 뒤에 낸 골딘의 전시나 이런 영화도 지나쳤을 것이고, 그녀의 사진, 그녀의 생각, 그녀가 담긴 이런 영화를 보면서 행복해했던 순간들도 없었을 것이다. 사진을 발표할 때는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LGBTQ+를 담은 작가라고 발표를 했던 것 같다. 아마 그게 다였을 것이다. 그런데 낸 골딘이 좋아진 건 몇년 뒤 어디선가 그녀가 말한 저 인용구를 읽었을 때부터였다.


“I used to think that I could never lose anyone if I photographed them enough. In fact, my pictures show me how much I’ve lost.” (나는 사진을 충분히 찍어놓는다면 그 누구도 절대 잃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 내 사진들은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잃었는지를 보여준다.)

Nan Goldin


이십대 중반에, 내 여행 사진들을 보며 이 문구를 뼈아프게 공감했던 것 같다. 그리고 2027년 쯤 LA를 방문했을 때 마침 LACMA에서 그녀의 전시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녀의 그 유명한 슬라이드 쇼를 제대로 보게되었다.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 친구들의 벗은 모습, 그녀 자신의 벗은 모습, 정돈되지 않은 공간과 그 안에서 성관계를 하는 자신의 지인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섹스, 심지어 남자친구한테 맞아서 눈에 피멍이 든 그녀 자신의 자화상까지. 낸 골딘은 자신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고, 그녀 자신의 어떤 모습도 스스럼없이 사진으로 담아냈다. 낸골딘의 인용구가 떠오르면서 그 슬라이드쇼를 보니까, 그녀가 잃어버린 것들, 이 세상이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들이 슬라이드의 찰칵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경쾌한 노래가 나왔음에도 너무 슬펐다. 어쩐지 2016년 이후로 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목격하고 그것을 잃은 슬픔과 더 이상 그보다 아름다울 것이 없을 것이라는 씁쓸함을 지니고 사는 느낌이 든다. 그런 나에게 저 인용구와 낸 골딘의 사진은 가슴을 후벼파는 기능을 한다. 재작년 회사 근처를 걷다가 이라선에서 그녀의 사진집을 발견했다.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 개정판이 나온 건지 희소한 그 책이 새 물건의 상태로 있어 바로 사왔다. 그리고 그 책의 서문을 통해 그녀의 언니에 대해서도 처음 읽게 되었다.


영화 이야기 (스포 많음)

이 영화도 그녀의 사진집처럼 언니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언니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그녀에게 자신의 언니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저항'이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보수적인 미국 교외에서 그녀의 언니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부정당하고, 후에 알게 되었지만 정신병원, 고아원 등으로 보내진 언니는 어린 나이에 기차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이제 낸 골딘은 사회를 향해 저항한다. 이 영화에선 중독의 위험을 알면서도 옥시콘틴이라는 진통제를 만들어 판매하여 수십만 명을 죽게 한 퍼듀 파마 제약회사, 그 회사의 소유자인 새클러 가문에 저항하는 낸 골딘의 운동이 나온다. 새클러 가문의 후원을 받는 미술관에 찾아가 그들의 돈을 받지 말 것을 청한다. 살인자들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좋게 인식되지 않기를, 그들에게 감사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는 그렇게 낸 골딘의 삶과 사회운동을 두 기둥으로 삼아 적절히 교차하며 보여준다.


영화 중간에 뉴욕 LACMA에서 보았던 것처럼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 슬라이드쇼가 나온다. 알고보니 이 슬라이드쇼는 매번 들어가는 사진과 순서가 달라지기도 한다고 한다. 그녀의 이 슬라이드는 바에 모인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노래도 함께 슬라이드쇼를 보던 사람들이 추천한 곡들로 구성된 것이라고 한다. 영화관에서 조용하고 멀찌감치 구경하는 이 슬라이드쇼는 그때 좁은 바에 모여 다같이 한 장 한 장 바뀔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폭소하면서 감상하던 것과 재미를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lgbtq 씬에 있었는지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여기저기서 부분부분 뜯어보던 그녀의 연대기가 드디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수줍음을 타며 말을 하기보단 카메라를 통해 친구들과 어울리던 그런 낸 골딘의 모습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장면에서 “Photography gave me the reason to be there.” (사진은 내가 그 곳에 있을 이유를 줬다.) 라고 하는 말이 너무도 와닿았다.


낸 골딘은 타고난 화술가 같기도 하다. 처음에 그녀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낮은 목소리와 예리한 말들을 들었을 때 너무 멋있어서 조금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멋진 말을 참 많이도 한다. 노트를 들고 가서 꼭 다시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기억에 남는 표현 중 하나는 자신의 단짝 친구를 표현하며 “그는 내 혼란의 삶 속 태풍의 눈 같았다.” 라고 했던 것이다. 모든 게 정신 없이 날아다니는 혼란 속의 고요한 정적.


그녀의 삶을 더 보고 싶어서 새클러가문에 대한 운동이 나올땐 사실 빨리 다음 챕터가 나오길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점차 그녀의 운동을 인지하고 메트, 테이트 등 새클러 가문의 후원을 끊고, 미술관에 기증 사인을 때던 것을 보는 것도 큰 감동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결국 소송이 걸리고 줌 미팅을 통해 재판을 하는데 진짜 새클러 가문 중 두 명의 얼굴이 나오고 그들을 영상으로나마 마주하고 통곡하는 피해자들이 나오던 장면이었다. 그 괴물같은 사람의 얼굴들을, 자신들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그 얼굴을 보여줘서 좋았다. 그 두 명의 새클러 가문의 얼굴에선 어떤 슬픔이나 반성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그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새클러 가문의 얼굴이 공개되었듯, 낸 골딘의 부모가 적나라하게 나오는 장면도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보통 부모님의 클립이 나올 때는 그들을 향한 자식의 애정, 공경, 그리움 등이 담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낸 골딘의 부모는 언니를 죽게한 자들이다. 그들은 기독교 혹은 시골의 보수적이고 좁은 공동체 안에서 강요하는 이상향을 지니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눈과 귀를 막고 부정하는 자들이다. 그것이 자식일지라도. 보수적이라는 표현은 부족한 느낌이다.


언니가 죽었을 때 갖고 있던 노트에 있던 인용구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Droll thing life is—that mysterious arrangement of merciless logic for a futile purpose. The most you can hope from it is some knowledge of yourself—that comes too late—a crop of inextinguishable regrets.

“인생이란 우습게도 무의미한 목적을 위한 무자비한 논리의 신비로운 배열”

“무의미한 목적을 위한 무자비한 논리..“


어떠한 필터도 후보정도 연출도 없이 정직함을 내세우는 낸 골딘의 사진들처럼 영화 속의 낸 골딘의 삶도, 그녀의 부모, 새클러가문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점이 좋았다. 낸 골딘은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은 비단 그녀의 부모와 언니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순응과 부정으로부터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에 관한 것이라고. 순응하는 것의 악효과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되었던 시기여서 더욱 강하게 와닿았다.


스노우든을 보여준 시티즌포를 만든 로라 포이트러스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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