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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자무 Dec 12. 2022

공항에서 귀국행이 이렇게 간절한 적이 있었나 pt.2

이륙하는 비행기에 박수를 치다

두 번째 지연 


오전 10시로 재예약된 비행기를 타러 가는 아침은 꽤 여유있었다.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맛없지만 편리한 그저그런 호텔의 아침식사를 식권을 사용해 먹고 호텔 셔틀을 기다렸다가 공항으로 도착했다. 평소라면 물 외엔 최대한 사지 않는 경악스러운 가격의 공항음식도 남은 식권을 사용하느라 물도 과일도 넉넉히 사서 즐겼다. 

그런데 또 불안하게 탑승시간이 되어도 게이트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제의 경험이 있었기에 더 불안했고 동시에 어제의 경험이 있었기에 설마 싶었다. '하, 또 못가는거 아니야?'와 '에이, 설마 또 안갈리가.ㅎㅎㅎ'의 마음이 오갔다.  

이번엔 엔진도 아닌 승무원에 대한 이유였다. 근무가 가능한 크루가 준비가 되면 탑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두 시간 정도가 지연이 되었던 것 같다. 과자와 물이 담긴 카트가 들어왔고, 그렇게 두 시간을 더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니 정말 탑승을 하긴 했다. 비행기가 움직이기도 했고, 그렇게 활주로로 비행기가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또 불안하게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본부에서 현재 승무원들의 비행을 승인을 안해준다, 승인을 안해주면 불법 주행을 하는 것이어서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식이었다. 이게 뭔 개똥같은 소리인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날부터 방송에서 rectify라는 단어를 어찌나 쓰던지,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다. 뭔갈 자꾸 바로 잡겠다고 하는데, 그래서 해결이 되었다는 말은 없었다. 

결국은 우린 또 비행기에서 내려야했다. 이미 지연을 두시간을 넘게 한지라 비행기에서 내리는 승객들은 굉장히 짜증이 난 상태였다. 어제 샌프란시스코로 온 비행기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지만, 이번 인천행 비행기는 당연히 한국인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가. 고객이 왕인 이들 아닌가. 그리고 이런 미국의 뻔뻔하고 비논리적인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다. 하지만 한국어를 쓰는 승무원이 없었던 터라 항의를 하는 사람은 적었다. 단 한명의 중년 여성만이 한국행 비행기에 한국어를 쓰는 승무원이 한 명도 없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한국어로 소리칠 뿐이었다. 옆의 한국계로 보이는 남자아기는 "I don't like it here"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엉엉 울 수 있는 아이가 너무 부러웠다. 이 누나는, 아니 이 이모는 어제도 내렸단다... 나는 도무지 이유가 이해되지 않아 게이트 앞의 직원에게 다시 한 번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승무원이 하루에 16시간 일할 수 없는 법이 있는데, 직원들이 16시간 이상 근무를 하게 돼서 비행기가 뜰 수 없다고 했다. 비행기가 뜨지도 않았는데 무슨 16시간을 근무해? 하고 물으니 다른 도시에서 이미 날아왔기 때문에 추가 비행을 할 수가 없단다. 아니 그런 스케쥴을 미리 안짠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그럼 다른 크루를 불러오면 되잖아. 라고 하니 그래서 요청중인데 가능한 인력이 없어서 우선은 기다려야한다고, 그게 4시 30분이나 돼야 응답이 올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화가 났다. 왜냐, 네시 반에 공항을 나가면 진짜 샌프란시스코를 즐길 수도 없이 진짜 하루를 날려야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리고 본부의 응답을 기다렸지만 결과는 역시 비행 취소였다. 우루루 다시 밖으로 나와 체크인구역의 유나이티드 영역으로 줄을 섰다. 어떤 여자분은 You guys are the worst!라고 소리쳤지만 그밖에 딱히 크게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같이 줄을 기다리던 한국 중년 남성은 이럴땐 누가 총대를 매고 진상을 부려줘야하는데 영어를 못해서 할 수가 없다고 껄껄 웃었다. 줄을 서있는데 어제 같이 뉴욕에서 지연된 미군을 마주쳐서 인사했다. 하하, 우리는 뉴욕에서부터 이미 하루 지연됐는데 또 취소된거에요..ㅎㅎ 하고 말하니 사람들은 경악했다. 나는 이미 익숙해서 휴대폰 링크로 호텔도 예약하고 식권도 다 받았지만, 나를 따라다니던 칠십대 노부부는 링크가 오지 않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그 줄을 사십분은 기다려야했다. 그리고 여섯시가 돼서야 우리 차례가 왔다. 

그 노부부는 나와 무조건 같은 호텔, 같은 비행기자리를 앉겠다고 했다. 물론 다 내가 통역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예약한 호텔은 이미 꽉 찼다고 하니 같은 나를 자신들과 같은 숙소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좋은 호텔을 포기하고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나올 법한 숙소로 바꿨다. 그렇지 않으면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할 줄 모르는 이 분들이 셔틀이 없는 그 숙소를 오갈 수 있을리가 없었다. 지연된 내내 다단계를 하시는 할머님의 영업멘트를 듣는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내 도움 없이는 분명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해서 나는 그 분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내 편리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고 숙소로 왔는데, 그 숙소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곳이라는 안내를 받으니 분노가 한계가 다다랐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봐야겠다고, 피곤해서 식사를 안할수도 있다고 하고 먼저 내 방으로 거의 뛰어오다시피 도망쳐왔다. 점심과 저녁도 먹지 못해서 기분도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우선 진정하고자 이미 이틀을 입은 팬티와 양말을 손빨래했다. 남자친구에게 상황을 알리자 먼저 밥을 먹으라고 했다. 이것은 내가 배고파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정말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라고 했지만 우선 밥을 먹으라고 했다. 로비에서 받아온 식권을 허용하는 피자집의 명함을 받아 주문을 했다. 메뉴를 보지 못하고 전화를 한 것이어서 횡설수설했다. 그런데 피자집 직원이 너무나도 친절했다. 메뉴를 못봐서 그러는데, 버섯이 들어간 피자면 된다, 그리고 식권을 쓸 것인데 15불 짜리 여러장이 있다고 하니 친절하게 가격이 넘치는 메뉴를 골라주고 30불에 맞춰주겠다고 했다. 따스한 말투에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배달한 음식도 곧 왔다. 전화를 받았던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흥이 넘치는 분이 오셔서 주먹하이파이브를 권하고 음식을 주며 잘 먹으라고 인사해주고 갔다. 그리고 음식이 배에 들어가자 다시 세상이 조금 아름답게 보였다. 남자친구는 또 옳았다. 화가 날 땐 내가 배고픈지 먼저 확인을 해봐야하는 것이다. 마음이 풀려 있는데, 옆방에서 할머니가 또 로비에서 칫솔을 구해다 주셨다. "우리 때문에 늦게 여기로 와서 짜증났지.. 우리도 저녁 안된다 그러니까 짜증나더라. 딸한테 연락했더니 딸이 호텔에 전화해서 이런것도 구해줬어~"하시면서 칫솔을 주셨다. 나름 티 안내고 피곤한척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화난게 많이 티났었나 싶었다. 남자친구와 통화하느라 전화를 놓쳤는데 일부러 안받았다고 오해하셨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의외로 맛있었던 치킨과 피자를 먹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남을 도우면서 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세 번째 날


다음날 비행기는 새벽 여섯시였다. 항공사에서 준 리프트 패스를 사용해 택시를 잡아타고 여유있게 왔다. 그 시간에 뜨는 비행기는 우리 것 밖에 없었는지 검색대의 사람들은 다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다들 잠은 잘 주무셨냐고 나도 모르게 인사할 뻔했다. 미군을 비롯한 어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과 헤이! 하고 짧게 인사 하기도 했다. 다들 곁눈질로 서로를 알아보며 다같이 게이트로 향했고, 똑같이 남은 식권을 사용하기 위해 매점 앞에 우루루 몰려 있었다. 6시 비행인데 매점이 열지 않아 다들 조급해하며 서둘렀지만 또 2시간 지연됐다는 문자를 받고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여유롭게 쇼핑을 했다. 그 비싼 공항음식을 언제 이렇게 마구 사겠는가. 

이것저것 먹으면서 기다리는데 또 지연 문자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아침 6시였던 비행은 8시로, 또 9시 30분으로 지연됐다. 유나이티드는 이번엔 간식카트도 아닌 패스츄리 몇 박스를 들고 와서 파티라도 하듯 신나게 나눠줬다. 내가 이딴 걸로 호락호락하게 넘어갈줄 아느냐! 하는 인상을 쓰면서 냉큼 한 두개 빵을 집어왔다. 


그때쯤 나는 모든걸 포기하고, 그냥 오늘도 취소될거면 빨리 오늘 못간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두번 안떴는데 세번 못뜨라는 법이 있겠느냐 싶었다. 내 할 일이나 하자, 하며 업무와 관련된 책을 검토하고 있었다. SF(san francisco)에 갇혀서 SF(sceience fiction) 읽고 있는 나 자신이 웃겼다. 그러다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의 말을 엿듣게 되었는데, 한국인 아주머니에게 주님을 만나고 이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며, 어젯밤도 덕분에 좋은 호텔에서 공짜로 묵으며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어 너무 감사했다는 말이 들렸다. 좋은 호텔? 어디서 묵은거야 했는데 내가 놓친 호텔이라는 것을 듣고 또 분노가 올라왔다. 나에겐 음식도 필요하지만 종교도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한쪽에선 축구가 한창이었다. 게이트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고보니 생각보다 축구를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커피를 사러 위층으로 올라오니 그들은 다 텔레비전이 달린 바에 모여있었다. 커피를 사러 지나가는 사이에 함성이 들렸다. 대한민국:포르투갈 전이었고 누군가가 마지막 골을 넣은 것이었다. 

축구가 끝나자 곧 탑승이 시작됐다. 우리 대한민국이 16강도 올라갔으니 우리 비행기도 뜰 것이라고 옆자리의 아주머니는 말했다. 모두가 이번엔 제발.. 하는 마음 같았다. 그리고 비행기가 드디어 움직였다. 전에도 이렇게 움직여놓고 돌아갔기에 뜨기 전까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비행기가 떴다.


그 순간 누군가는 대~한민국! 을 외치며 박수를 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함성을 외쳤다.


꼭.. 꼭 손해배상을 받아낼 것이다, 유나이티드..


내 정신을 구원한 아티초크 피자
패스츄리 파티
샌프란시스코의 물은 모두 보온병같은 병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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