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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자무 Mar 07. 2021

녹스빌 01_빅이어스 페스티벌

Knoxville, US_ Big Ears Festival


몬트리올을 떠나 벤쿠버, 엘에이, 샌디에고를 거쳐 녹스빌로 왔지만 사실 떠날 때부터 목적지는 녹스빌이었다. 여행지로는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녹스빌에 가게 된 이유는 순전히 단 하나, 빅이어스Big Ears라는 음악 페스티벌을 경험해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지금은 일흔이 넘은 메러디스 몽크Meredith Monk가 공연했던 장소들을 구글링하다 알게 된 이 페스티벌은 조금 특별해보였다. 음악의 장르 같은 건 잘 모르지만 구분하자면 실험음악, 컨템포러리 재즈, 월드뮤직 이라고 할 수 있을까. 뱅온어캔Bang On a Can, 마크 리봇Marc Ribot, 옥경 리Okkyung Lee, 아누슈카 샹카Anoushka Shankar 등 그 전에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뮤지션들의 이름이 한 데 모여있어서 설레었다.




녹스빌에 가는 중 처음으로 비행기를 놓쳐보는 경험을 했다. 경유지에서 어처구니 없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게이트 앞에 앉아서는 당시 남자친구와 문자를 하다가 눈 앞에서 비행기를 놓쳤다. 탑승을 그렇게 조용히도 할 수 있는 지 몰랐다. 다행히 다음 비행기로 표를 바꿔주었지만 공항에서 반나절을 있어야했다. 예상보다 하루 늦게 도착했지만 여유롭게 일정을 잡아 페스티벌을 즐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미국에서 온전히 혼자 있게 된 것은 처음이어서 조금 무서웠다. 미국은 총기소유가 가능한 나라이기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느낄 수 없던 공포가 느껴진다. 특히나 숙박 중 하루는 에어비앤비 집주인과 함께 있어야해서 더욱 무서웠으며, 집주인에게 정말 미국은 사람들이 총기를 갖고 있냐고 물으니 자기 방어용으로 필요하다며 이 집에도 하나 있다고 해서 더더욱 무서웠다. 그래도 집에서 농구유니폼을 챙겨입고 텔레비전으로 농구경기를 열정적으로 보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왠지 순수한 인간 같아서 조금 안심이 됐다.



테네시 대학
나의 마트 클리셰



빅이어스 페스티벌은 녹스빌의 도심에 위치한 도서관, 영화관, 공연장, 교회 등에서 공연이 열린다. 그 도시에 원래 존재하는 문화공간들에서 열리기 때문에 새로 스테이지를 짓거나 허물지 않아도 되어 좋고 관객은 그 도시의 로컬공간을 방문하게 되어 좋다. 장소들 사이에 거리가 조금 있는 것은 좀 불편하지만 같은 시간대에 보고싶은 공연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시가 크지 않아 공연장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 근처에 숙소를 잡았는데도 페스티벌 기간 내내 버스를 이용한 적이 없었다. 공연이 없는 오전 시간에 칙필레 버거가 먹고싶어 테네시대학도 가보았는데 모두 걸어서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대신 경사가 가파른 곳들이 좀 있어서 자전거를 타기에는 힘든 도시같았다. 그러고보니 버스가 있긴 했나 싶다.



이 페스티벌에는 음악 공연 외에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그 중 3D로 제작되었던 초기 영상들을 모아놓은 Stereo Vision이라는 큐레이팅을 감상했었다. 세개의 안경을 나눠주었는데 편광안경, 적청안경, 하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순서대로 바꿔 착용하면서 짧은 여섯개의 영상을 보았다. 마지막에 안경없이 보았던 Ken Jacobs의 ‘Cyclops Observes the Celestial Bodies’라는 작품이 정말 좋았다. 물이 뿜어나오는 장면이 촬영을 거치면서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일상적인 장면을 낯설게 보여주는 영상작품이 좋은데 그런 면에서 이 작업이 아주 좋았다. 다같이 그렇게 모여 비디오아트를 보고 있으니 대학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우부웹Ubuweb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비디오아트 작품을 비슷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페스티벌의 분위기 속에 모여 감상한 경험이어서 더 좋았다.




공연이자 워크숍 같았던 키드 코알라Kid Koala의 턴테이블 오케스트라도 인상적이었다. 디너쇼의 현장같이 50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각 테이블 위에는 턴테이블과 세개의 레코드가 있었다. 모두가 열심히 그의 신호에 맞춰 디스크를 얹고 스크래칭을 했다. 당연히 어쩔 수 없이 타이밍이 다양했고 그렇게 맞지 않아서 소리가 더욱 좋았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어설픈 무언가를 함께 시도할 때 느껴지는 이상한 마음의 울림이 있다. 잔잔한 반주에 여기저기서 각기 다른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디스크의 음들은 각자의 템포로 빛을 발하는 별들 같았다. 중간에 그는 캐나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소리가 나는 풍선을 만들었다며 한 커다란 풍선을 관객쪽으로 토스했다. 사람들이 패스를 할 때마다 정말 둥- 둥- 하고 다른 키의 단음들이 나왔다. 어느 세네살 즈음의 아이가 그 풍선을 치고 싶어 어른이 아이를 높게 안아 도와주자 모두가 getting there! 하며 아이를 응원했다. 아이가 풍선을 치자 우리 모두 엄마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사실 정부지원과 소리나는 풍선은 모두 농담이었고, 타이밍에 맞춰 누군가가 키보드 키를 누른 것이었어서 그 모습이 더 귀엽게 느껴졌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문리버를 믹싱하며 마무리했다. 놀이 치료를 하듯 평화롭고 감상적인 시간이었고 끝난 뒤엔 나가면서 모두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의 공연이 다 좋았어서 몇개를 꼽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신선했던 경험으로 꼽자면, 우선 첫째로 브라질리언 퍼커셔니스트인 시로 밥티스타Cyro Babtista의 공연이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이름이었고 볼 계획도 없었지만, 초반만 조금 봐야지 하고 들렀다가 너무 좋아서 다음날에 있던 두번째 공연도 보았던 공연이다. 그는 정말 다양한 것들로부터 소리를 만들어냈다. 우리에게 익숙한 탬버린이나 박수도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박자는 특별했다. 악기가 굉장히 다양했는데, 그가 직접 만든 악기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주렁주렁 매달린 페트병뚜껑 뭉치는 생각보다 훌륭한 소리가 나서 웃겼다. 빠밤밤바헤- 하고 추임새를 넣기도 하셨는데 두꺼운 목소리로 되는대로 마구 소리를 지르며 끓는 소리를 내시기도 하는 것이 자유로워 보였다. 연주를 스스로 즐기시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다.




두번째로는 뱅온어캔의 공연이었다. 오프닝곡으로 마이클 고든Michael Gordon의 빅스페이스라는 연주가 시작되었는데 음이 360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무대를 넘어서 2층 관객석의 곳곳에 원형으로 배치된 연주자들이 파도를 타면서 연주를 했다. 트럼펫과 탬버린, 피아노 등의 소리가 울리면서 신선한 경험을 주었다. 스피커가 아닌 아날로그 악기가 그렇게 관객들을 둘러싸고 연주를 하고, 그 형식에 맞게 작곡된 곡이 연주되고 있다니. 그 전에 이런 것을 들어보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 기발함에 놀랐다. 15분 가량이 되는 그 곡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쳤고 무언가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경기를 본 것 같이 벅찼다.



마크 리봇


마지막으로는 마크 리봇의 공연이었다. 기타리스트인줄로만 알았는데 그는 펑크스피릿이 가득한 랩퍼이기도 했다. 전에 피아니스트 칠리 곤잘레스의 공연을 갔다가 자꾸 피아노곡에 이상한 랩을 끼얹어 매우 웃겼던 적이 있는데, 마크 리봇의 랩은 매우 훌륭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셨는데 저항정신은 여느 젊은이보다 뜨거워보이셨다. 그 중 육분이 넘었던, 가장 좋았던 랩이 있는데 아무리 구글링을 해도 제목이나 가사가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영상을 조금 찍어두어 일부분만 적어보았다. 적다보니 가사가 너무 난폭해 앨범으로 나오지 못했나 싶기도 하다.


I don’t accept any aspect of capital society, I refuse, I resist

난 자본사회의 어떠한 면도 받아들이지 않아. 난 거절해, 난 저항해.

I don’t recognize the banks, the military or the generosity of the state

난 은행, 군대, 주 이런 것들은 인지하지 않아.

I don’t accept my gender your gender offenders defenders string banders or money lenders

내 성별, 너의 성별, 모욕하는 자들, 방어하는 자들, 현악연주단, 대부업자들을 인정하지 않아.

I reject all race constructions of colour, horse, human or rat

난 모든 색, 말, 인간 혹은 쥐들의 인종 구분을 거부해

I don’t accept the choices I’m offered at the supermarket both Trader Joe’s Wallmart

난 트레이더조스나 월마트같은 슈퍼마켓에서 제안하는 선택같은 것들은 받아들이지 않아.

I don’t accept my shoes I don’t accept my age my hair my weigh my breath my face

내 신발, 내 나이, 머리카락, 몸무게, 내 호흡, 얼굴을 난 인정하지 않아.

I don’t accept my language my religion or my death

난 나의 언어, 종교 혹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I don’t know, I refuse I resist

모르겠어, 난 거부해, 난 저항해


I don’t accept the lesser of two evils or the greater evil or the greater good or the lesser good or the greater less good … evil good good live good god..  Anaheim …

난 두 악 사이에 덜 악한 것, 혹은 더 악한 것, 혹은 더 선한 것, 혹은 덜 선한것 혹은 가장 덜 선한 것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아.

or any other possibilities or impossibilities here under here after whatever whereas where for where onto onto which therefore here for for here to dog face et cetura

and I put this in the form of a proposal to the company why i am where for how to where .. as

emotional object

그리고 난 내가 어디에, 왜 있는지, 어떻게 어디에 … 감정적인 반대.. 등을 회사 제안서에 써넣지.


I don’t accept Donald Trump

난 도널드 트럼프를 인정하지 않아.

no I don’t mean his politics, I mean his eyebrows one of his earlobe his birthday party, his alphabet, the God who created him, the world he farts in, in any other world but happened to be … in the remote decent

내 말은, 그의 정책들 말고, 그의 눈썹, 귓볼, 생일파티, 그의 알파벳, 그를 창조한 신, 그가 방구를 뀌어대는 이 세상말이야.

I’m going on a strike and from this time .. common language

unconditional..is excluded in your vocabulary absolutely impermanently without exception or absolution yes you can say yes yes yes or yes sir or ulala

I’ll shit my pant wherever and whenever I want

난 내가 원하는 어디건 어디서건 바지에 똥을 지릴거야

and when I’m tired or for any other reason unable to walk

그리고 내가 피곤하거나 어떠한 이유에서든 걷기가 힘들어지면

you’ll carry me wherever I need to go,

넌 내가 가야하는 곳으로 날 어디든지 짊어지고 갈거야

you’ll push me on swings and you’ll like it

넌 내 그네를 밀어주고 넌 그걸 좋아할거야

you’ll sing me to sleep until you puke and read me stories until your eyes inflate

너가 토할 때까지 내게 잠들동안 노래를 불러주고 눈이 터질 때까지 내게 이야기를 읽어줄거야



페스티벌이 끝나고 다음날 아침 뉴욕행 비행기를 타러 녹스빌 공항으로 향했다. 아침 일곱시쯤이 되자 전날밤 여유로웠던 우버들이 모두 예약이 차서 가격이 두배 이상으로 뛰었다. 공항까지 가는데 거의 십만원을 넘게 낼 판이었다. 이 작은 도시에서 특정 시간에 출국하는 사람들이 몰리니 이런 일도 벌어졌다. 다른 도시에서는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초 단위로 가격이 더욱 치솟아 시내 택시회사를 구글링해서 전화를 해 겨우 하나 잡을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어떤 아저씨와 택시를 나눠 타게되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기 동네의 해산물이 아주 맛있다고 꼭 와서 먹어보라고 하셨다. 공항에 도착하자 또 다른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다. 뉴욕으로 가는 뮤지션들이 도착해있어서 함께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같은 비행기를 탔다. 로렐 헤일로Laurel Halo, 엘리 케츨러Eli Keszler, 뱅온어캔 멤버 등이 있었다. 페스티벌 다음날 공항에 가면 뮤지션들과 함께 비행기를 탈 확률이 매우매우 높다는 것! 특정 뮤지션을 좋아한다면 뮤직페스티벌 다음날 그 밴드의 고국행 비행기를 예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에서 나올 법한, 비행기 옆좌석에 유명인이 앉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정말이다. 전에 스페인 프리마베라Primavera 페스티벌이 끝나고 포르투갈로 넘어가는데 옆자리에 디어헌터Deerhunter가 앉은 적도 있었다.



2018_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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