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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의 꿈 Aug 26. 2024

사과나무

<단편소설>

어느 날이었다. 한 남자가 장터에서 물건을 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남자는 공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곳이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그런 길을 택한 이유도 또 하필이면 밖을 안 나간다 싶을 정도로 집을 좋아하는 남자에게는 거의 뜻밖에 일이었다. 절대 그 ‘길’만은 가면 안 된다는 것을..
꼭 피해야만 하고, 안 그러면 앞으로 일어날 비극에 대해서 그는 미리부터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남자는 그곳에 있는 큰 사과나무를 발견했는데. 그 나무는 거의 풀이 죽어 있었고 마치 귀신나무처럼 어색하게 푸른 잎을 가진 나무로 딱 하나의 달콤한 사과가 달려있는 모습이었다. 그 사과는 정말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남자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라 과일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그 사과만큼은 아주 빨갛게 살이 잘 익어서 지금 같은 시기에 딱 먹기 좋은 사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지식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누가 봐도 그게 독사과는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따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매달려 있었다. 남자는 갑자기 장터에서 사 온 물건을 살포시 내려놓고 주위에 어디 돌멩이나 뭐 던질 것 없나? 하면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딱 눈에 들어온 작은 사이즈의 적당한 돌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돌을 집고선 사과나무에 매달린 단 하나의 사과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 방향으로 돌을 던졌다. 이런 빗나갔다.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무슨 상관인가. 겨우 사과 하나로.'
남자는 공원을 떠나려고 물건을 들어 올리다가 그 밑에 꽤 적당한 돌멩이가 하나 더 있었다. 남자는 다시 한번 그 사과나무를 응시하더니 돌을 집어 들고선 다시 그 방향으로 돌을 던졌다. 또 빗나갔다.
어? 또 빗나갔다니.
남자는 무언가 자존심에 상처라도 입었는지. 다시 주위에 돌멩이를 찾으려고 고개를 좌우로 돌아봤다. 그때 시소옆에 작은 돌멩이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모습에
남자는 그곳으로 달려가 돌멩이 여러 개를 집고선은 다시 사과나무 앞에 섰다. 그러고는 여러 번 연달아 돌을 던졌다. 그런데 돌들이 전부다 사과를 피해 지나간 것이었다. 남자는 화가 나서 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사과나무의 사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사과는 한가롭게 자신의 빨간색 살을 보여주며 태양빛에 의해 반질거렸다. 남자는 장터에서 사 온 물건들이 걱정된 나머지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터벅터벅 걸으며 사과나무를 등지고 조용히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때 남자의 표정은 무언가 고심하듯 확고부동해진 상태였다.



2


조금 몇 시간이 지나고 남자는 다시 그 공원에 나타났다. 남자는 이번에는 집에서 꽤 오랜 전에 쓰고 안 쓴 총을 가지고 왔다. 그런 다음 사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망할 놈의 사과.’ 남자는 지금까지 이런 확고부동한 열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건 아마 남자에게는 애당초 지금까지 생을 살면서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그저 무직 백수로 항상 삶에 대한 미련 없이 늘 무위도식하며 사는 인생인지라 자신에게 이 사과 맞추기는 어떻게 보면 무료한 일상에 나타난 작은 폭주 같은 것이었다. 물론 앞으로 일어날 비극의 시작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여러 발의 총알(돌멩이)을 집어넣은 상태로 이미 주머니는 꽉 찬 상태였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사과나무를 보고선 쏘아대기 시작했다. 이런 빗나갔다..
또... 앗!... 이런... 호잇!... 아.... 다시 한번!... 그렇지...!..
또 빗나갔다.
남자는 자신의 사격술이 이 정도로 형편없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누굴 탓할 수도 환경에서 자신을 욕하는 것만큼이나 화가 나는 것도 없다. 남자는 제대로 한 번 더 조준하기 시작했다. 이제 주머니에 돌이 딱 하나 남아 있었다. 마지막 기회인것저럼 사과를 응시하며 다시 한번 발사했다. 또! 빗나갔다.
남자는 미쳐서 폴짝 뛰어올랐다. 도저히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 뭐라도 들어갔나? 도대체가 왜 안 맞는 거야.. 나참...!”남자는 소심한 성격인지 마지막 말에는 힘을 주지 못했다. 사과나무는 기괴하게 
몸을 비틀면서 구멍으로 히죽하고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남자를 비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남자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다.
<맞추고 싶으면 맞춰봐라!>
<어디 실력 좀 볼까!>
남자는 이 악마 같은 나무가 자신을 욕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남자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이런. '이게 무슨 일이지? 나무에게까지 고개를!
에게까지? 내가 겨우 나무 한그루에 ‘에게까지’라는 말을 쓴다고?' 남자는 순간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자신의 새총을 바라보며 갑자기 새총을 탓하기 시작했다.
“에잇! 망할 새총자체가 문제였구먼!” 남자는 새총을 집어던지고선 이번에는 왼쪽 주머니에서 작은 공깃돌을 한 손에 움켜쥐며 꺼냈다.(오른쪽은 그의 ‘형편없는’ 사격술로 인해 텅 빈 상태였다.) 작은 공깃돌이기는 했지만 한꺼번에 덩어리째 던지면 분명 멀리 퍼져나가면서 사과를 맞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가지고 온 것이었다. 이제 남자에게는 아무래도 좋으니 사과를 한 번이라도 맞춰보고 싶다는 목적만이 그저 간절하기만 했었다. 그리고 남자는 여러 개의 알록달록한 공깃돌을 있는 힘껏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과옆을 그저 지나갈 뿐 맞추지는 못했다. 절대 맞추지 못했다. 이건 정말인지 말이 되는 걸까?
사과나무의 기이한 웃음에 점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남자에게는 이 사과나무만큼은 무조건 정복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꼈다. 그는 일생에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업적 따위는 없었고 그것이 평생의 죄처럼 느껴져 그에게 이 사과나무는 인생의 동기이자 어느 순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실 누가 들으면 배꼽 잡고 웃을 이야기이지만 남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사과나무 주위로 기이한 기류 같은 게 느껴졌지만 사실 이 나무가 저주받은 나무라 할지라도 남자에게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자는 일단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의 두 주머니는 텅 비었으며 남자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3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사과나무 주위로 아이들이 뛰어놀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사과나무의 하나 남은 사과를 발견했지만 딱히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놀았다. 아이들은 세상모르게 놀고 있었다. 까르륵 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사과나무는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공원 입구 쪽에서 강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서부의 한 장면처럼 그 속에는 그 '남자'가 서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비니를 쓴 상태로 줄담배를 피면서 조용히 다가왔다. 얼굴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무언가를 결심하 듯한 걸음걸이로 사과나무에게 다가갔다. 사과나무는 다시 또 그 기이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나무에 난 구멍이 웃는 입모양처럼 변한 것이다. 물론 남자도 웃고 있었다. 다가오고 있던 남자의 등 뒤에는 기다란 무언가를 매고 있었다. 사과나무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바라보더니 이내 더 기이한 표정을 짓고서는 활짝 웃기 시작했다. 그 물건은 바로 총이었다. 그렇다. 진짜 총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는 남자가 개발한 가짜 총이지만 총알인 쇠구슬은 순간적인 강한 압력으로 밀려나가면서 단숨에 어떤 물체든 대부분은 박살을 낼 수 있었다. 남자는 사과나무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깨끗한 사과였다.
남자는 사과를 한 손으로 던지더니 공중에서 점점 떨어지는 사과를 단숨에 뒤에 차고 있던 총을 꺼내 조준해서 제대로 명중시켰다. 팡! 사과는 공중에서 즙을 짜냈다. 아이들은 입이 벌어졌다. 사과나무는 산타클로스 같은 미소를 띠며 호호호 하고 웃어댔다. 물론 남자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남자는 총구를 사과에 조준시켰다. 그 먹음직스러운 사과. 남자는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사과를 향해 발사했다. 피이이용! 남자는 멍해졌다. 비니 밑에 간신히 나와있던 두 눈은 충혈된 상태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또 빗나간 것이다. 그 '남자'는 군대를 나오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남자는 미친 맹수처럼 사정없이 총을 갈겨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맞추지는 못했다. 코 흘리게 꼬마들이 보는 데 앞에서 그냥 개망신을 당한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소곤 되더니 이내 자리를 떴다. 그 '남자'는 아주 제대로 망신을 했다. 남자는 아이들이 떠나든 관계없이 밤이 되도록 총을 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사과는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공원주위로 달빛이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달빛에 비친 남자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남자는 갑자기 총을 땅바닥에 내려놓더니 그 자리에서 푸시업 100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사족보행을 하며 공원전체를 20바퀴나 뛰기 시작했다. 남자는 다시 사과나무 앞에 섰다. 사과나무는 이제 남자가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그 '남자'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남자는 청바지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들었다. 남자는 사과나무를 주머니칼로 거칠게 긁어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소리를 지르며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남자는 계속 나무를 칼로 파내면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과나무의 그 기이한 구멍도 칼로 긁어대기 시작했다. 그때 안갯속에서 어떤 불빛이 천천히 다가왔다.
“어이 당신 거기서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는 이 지역의 경찰로 늘 성실해서 주변 공원이나 마을전체를 한 번씩 순찰하는 경찰관이었다. 그 '남자'는 경찰을 쳐다봤다. 경찰은 깜짝 놀랐다. 충혈된 두 눈에 입에는 개거품을 무는 모습이 마치 광견병에 걸린 '개'같은 모습이었다. 경찰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사람이 아니야.’ 경찰은 생각했다.
경찰관은 그 '남자'가 들고 있던 주머니칼을 발견하고서는 칼을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경찰관은 이미 테이저건에 손을 반쯤 가져다 댔다. 남자는 경찰관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한번 나무를 찌르기 시작했다. 좀 더 경렬 하게 눈에 힘을 주고 찌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만 칼날에 손을 다치게 되었다. 놀란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나무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던 경찰관은 이내 지금 아니면 잡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남자를 붙잡기 시작했다. 남자는 경찰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현장은 빠르게 호기심 많은 사람들과 다른 경찰들로 채워졌다. 동료 경찰관은 그 남자의 행동이 단순히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확실하게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그 남자는 누가 봐도 매우 평범하게 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이유가 더 궁금했던 것이다. 남자를 붙잡은 경찰 또한 당장의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남자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사과나무를 끝까지 저주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 거기에 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경찰차에 탑승한 남자는 멍하니 사과나무를 쳐다봤다. 이미 호기심 많은 시민들은 남자의 시선과는 관계없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차는 현장을 벗어났고 소란스러운 분위기도 차츰 사라지더니 사람들도 모두 제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사과나무는 그저 그 공원에 서있었다.
안갯속에 잠긴 사과나무는 이전보다 더 빽빽 마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때 사과나무에 매달린 단 하나의 사과가 떨어졌다. 옆을 우연히 지나가던 노숙자는 그 사과를 보더니 얼른 고개 숙여 그것을 주웠다. “고놈 참 잘 익었네.” 노숙자는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이내 퉥하는 소리와 함께 신경질을 내며 사과를 옆에 있던 덤굴속으로 던져버렸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충분했다. 그 이유는 한입 베어 먹은 사과 안쪽은 이미 여러 마리의 회색 구더기들도 채워져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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