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이 표절 논란 이후 언론과의 대면에서 한 말은 이랬다. '제게 문학은 생명입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저는 죽습니다.' 그녀가 그 이후로 죽지 않기 위해 꾸준히 써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후에도 창비에서 책을 내긴 했다. 내게 글은 그럼 뭘까? 요즘 내 가장 큰 문학적인 문제는 대충 읽고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읽는 데에 강박이 생겨 분주함 따위를 달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읽는데 읽으면서 끄적거린 것도 적고 무엇보다 코멘트 몇 줄도 쓰지 않고 넘긴다. 기계처럼 읽고, 어떤 생각도 메모를 잘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작년의 우선순위는 '균일한 글'을 써내는 것이었다. 독창성, 성실성, 완전성 이 3가지를 갖춘 글. 거기에 개방성, 다양성, 타당성까지 들어있는 글을 쓰려고 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되기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이는 타인에게 관심이 거의 없는 인본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태도였다. 무정함이라는 표현으로는 감히 비껴갈 수 없는 싸가지 없음. 나는 싸가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느낌이 와닿지 않는데, 누군가는 이걸 '싸가지 없다'고 하더라. 아무튼 그 미봉책으로 나랑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것 같은, 재밌어 보이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건축, 패션, 전시 미술 등 원래의 나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 감각형, 감정형의 사람들 위주로. 내가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베토벤이 한 말 중에 '더 아름다운 것을 위해 파괴시키지 못할 규칙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규칙을 만들고 지켰는지?
매일 쓰는 일은 작년에 끝났고 이제는 그냥 쓰는 일만 하기로 했다. 테마도 좀 다양하게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바라는 건 언제나 적게, 감사하는 건 많게가 올해 나름의 테마다. '초라하지 않은 글'을 쓰는 게 시작이었는데 이젠 글 쓰는 데에는 그냥 거리낌이 없다. 어디서 글 좀 쓸 사람을 찾으면 이제 알아서 나를 찾고 가끔은 어떤 원고가 밀리기도 한다. 써남긴 가장 오래된 글에는 내가 시간을 들여 하나의 글을 잘 쓰는 것과 필요할 때마다 그럴듯한 글을 쓰는 것 중 뭐가 더 우위인가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이제 보니 어리석은 고민이었다. 그냥 아무런 글을 써놓고 나면 아쉽고 못 써 보이는데 옛날의 나와 비교하면 정말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많이 발전했다. 옛날의 나와 비교해서만 더 잘 쓰면 그만이긴 하다. '글은 곧 글쓴이다. 글만큼 그 사람 자체인 것도 없다'라고 정희진이 그랬다. 정희진의 글을 이제는 찾아 읽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빛나던 그녀의 글들이 종종 기억이 난다. 글쓰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삶 그 자체의 행위고 글을 쓴다는 것은 평생에 걸쳐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니 내가 다른 테마로 글을 채운다고 해도 '글쓰기' 자체에 대한 탐구는 아마 쭉 이어지지 않을까? 적당한 때라는 건 없다. 글을 쓰기에도 일을 시작하기에도 적당한 때는 없다. 남들과 비교해 뭐가 부족하다거나 늦었다고 후회할 필요는 없다. 나는 항상 스스로와 비교할 뿐이다. 나는 어제보다 더 나아지기만 하면 되니까. 될 때까지 그냥 무엇이든 해보는 거다. 해줄 수 있는 말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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