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도 코어가 있을까? 흔히 붙는 '코어 xx'에 "코어 컬처"도 있을까? 사서삼경이나 성경은 당연히 코어 컬처겠지만 샘 멘데스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나 링클레이터의 비포 3부작은 코어 컬처가 될까? 글쎄 아닐 것 같다. 하루키의 책 중에서 상실의 시대는 코어 컬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해변의 카프카나 1Q84는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대중문화 중에는 파급이 크고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그런 '코어'들이 있긴 할 거라고 생각한다. 스필버그의 굵직한 영화들은 할리우드 키즈들에게 영감을 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거장이 되었다. 구로사와 아키라나 오즈 야스지로를 보고 자란 어린 영화학도들은 한국 영화를 세계적 반열에 올렸다. 최인호와 이문열이 김승옥을 보고 자란 것처럼, 그 둘의 책을 읽고 작가를 꿈꾼 사람들만이 다음 세대에 책을 남기는 작가가 되었다. 이런 것들은 아무도 정리해 주지 않아서 누군가 믿을만한 사람이 나서서 책을 써주었으면 좋겠지만 어떤 작품을 가려내는 건 굉장히 오만한 태도여서 용기 있게 써낼 사람이 없다. 클래식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죽고도 이름이 남은 사람들은 세월의 무게를 이겨냈기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다. 나는 코어들도 다 모르면서 다른 서브 컬처들을 분명 많이 뒤져봤을 것인데 이는 공식도, 기본문제도 모르면서 유제를 풀려고 했던 것과 같다. 책을 고르면서 나는 권장도서 100권 200권 이런 것들을 많이 참고했는데, 그 리스트를 만든 사람들이 그 책들은 다 읽었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많았다. 심지어 시카고 플랜마저도 무슨 기준으로 고르고 순서를 매겼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중에서는 이지성도 있었는데 나는 이 사람의 책들을 굉장히 열심히 봤다. 그러면서 그 리스트를 뽑아서 체크하면서 읽었는데 한 2할 정도 읽었을 때 의문이 들었다. 이지성은 그 책들을 다 읽었을까? 그리고 3할, 4할이 넘어가니까 든 생각이, 이 사람은 이 책을 다 읽지도 않고 글을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들을 다 읽고 이런 글을 써?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 책들을 다 읽어도 이런 글밖에 못 써?라는 생각에 그가 만든 리스트의 절반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다. 누군가는 고전들을 어렵게 꾸역꾸역 읽으라고 하지만.. 글쎄. 난 그런 사람들이 진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난 교양과 전선 때문에 읽기 싫은 두꺼운 전공철학서를 몇권 읽고 레포트와 소논문을 써낸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 수많은 이름 중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이해했나? 싶은 철학자는 없었다. 마티아스 슈토이프의 현대 인식론 입문, 마이클 루의 형이상학 강의, 처치랜드의 물질과 의식 부터 로날드 드워킨, 마이클 샌델, 질 들뢰즈, 알랭 바디우 등등... 누군가 이걸 읽고 써낸 단문의 내용은 알겠지만 이해했나? 읽고 난 후의 내가 읽기 전의 내가 조금은 바뀌었는가? 라는 질문에 고개를 숙이며 아니여;; 라고 말해야 양심에 찔리지 않는다. 읽기 어려운 책을 읽어냈다면 그 열정과 의지력에 대한 보상이 분명 있어야하는데... 그런 철학적인 사탑은 결국 기본철학부터 쌓아올려가야 하는 것이라서. 그 단계를 스킵한 독서에는 아무런 감흥도 변화도 없던 것이다. 서점에 가면 '독서법'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이 수두룩이다. 심지어는 베스트셀러에도 있다. 근데 독서법(法)이라는 게 있나? 독서를 하기 위해 또 독서법을 읽어야 하는 것이 참 우습고 처량하다. 독서에 입문서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박웅현의 책들을 추천한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를 딱딱하지 않게 알려준다. '책은 도끼다'와 '여덟 단어'를 먼저 추천한다. 이지성은 거의 사짜처럼 이걸 다하면 당신은 위인이 될 거예요, 식으로 본인도 되지 못한 허황된 이야기들을 하는데 박웅현의 책들은 문화를 소비하는 법을 담백하게 알려줘서 좋았다. 걍 두 사람의 책을 읽고 나면 누가 더 책을 깊이 있게 읽었고 이해했는지 직관적으로 느낌이 온다. 사회과학서나 철학 책보다는 사실 문학책이 어떤 저변을 넓히는데 가장 기반이 된다. 개인적으로 취향저격인 작가들은 뭐 김사과나 박지리, 정세랑, 장류진 같은 느낌인데 취향을 뚫고 공통적으로 추천해줄 만한 작가로는 이문열, 김훈, 김애란, 김연수, 천명관 이정도? 언젠가는 10대 20대에 전작주의로 읽었던 작가의 책들을 소개해보겠다.
코어 컬처를 얘기한 것은, 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때문이었다. 영화과 애가 내게 '샘 멘데스' 얘기를 했을 때 나는 그 감독의 색깔을 잘 몰랐으니까. 근데 대화에 낀 아이들은 모두 샘 멘데스를 알고 있고 레볼루셔너리 로드 얘기를 했다. 나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볼 것'이라고 적어 놓고 '보고 싶어요'에 담아 놓은 지 꽤 됐다. 이 바구니는 너무나도 잔혹하다. 죽기 전까지 절대 비워지지 않을 바구니. 죽음은 항상 눈앞에 있다. 발라 모굴라스, 메멘토 모리라고 말하지 않아도 나는 종종 죽음이 가까움을 느낀다. 어쨌든 코어 컬처가 있다면 장정일과 정성일, 이 비슷한 이름에서 누구는 코어고 누구는 아닌지, 강문과 정지영(영화감독) 중에서 역시나 누가 코어인지가 궁금하다. 강문도 정지영도 최근에 자주 얘기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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