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2

by 천성식





노력한 것도 없이 나이는 쉽게 먹어져서. 나도 이제 어디 가서 나이 많은 축에 속할 때가 꽤 있다. 입학도 입대도 취업도 남들보다 늦게 해서 대개 막내 포지션이 익숙했는데. 이제는 동생, 후배들이 많다. 모범이 되진 못해도 누가 되면 안 되는, 자랑이 되진 못해도 구멍은 되면 안 되는ㅡ 그런 위치가 되었다. 예전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가 많았다. 대개 그것들은 학업이라든가 연애같이,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사건들에 대한 집착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과거에 대한 미련을 싹 털어버렸다. 해주지 못한 것, 받지 못한 것, 느끼지 못한 것, 겪지 못한 것, 필요 이상으로 많이 겪은 것, 필요 없는 데도 겪은 것 등... 모든 완료형에 대해서 이제는 초연하다. 미련에 대해서 쓰자면 일주일 정도 쓸 수는 있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미련들에 사시나무 떨듯 고뇌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나도 이제는 정말로... 어른이다. 예전에는 비스름한 글을 써도 '솔직하지 못한데?'라는 주저함이 있었다면. 이제는 확실하게 초연했다. 초연:이라는 말을 사전적으로 찾아보면, 1.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 2. 보통 수준보다 훨씬 뛰어나다. 라고 하는데.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 <라는 의미에 훨씬 가깝겠지. 그러니 나는 의젓해졌다. 스스로 말하기 민망할 만큼. 어쩌면 이러는 나를 미래의 내가 읽고 '어린 시절'이라고 기억할는지도.









의젓한 나의 고백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대할 때 진심을 다해, 다정함을 담아야만 했던 것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대개는 그러지 못한 순간이 많았고 나는 그런 나를 오히려 좋아했다. 모두에게 친절하지는 않은, 누구에게나 세련되지는 못한, 언제나 나이스하고 나이브한 캐릭터는 아닌. 그게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호불호가 확실하고 새로운 게 반짝인다고 생각했는데. 흔히 어른들의 '좋은 게 좋은 거야'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내게 남긴 수많은 말들 중 가장 기억하고 있는 한마디는 역시, '조금씩 손해 보고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말이다. 우리 엄마는 남에게 베풀면서 한 번도 기대한 적 없이... 서운함이나 아쉬움도 없이 베풀면 그걸로 만족하고 거기서 끝낼 줄 알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가르침을, 십수 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내가 엄마한테 보여주지 못한 영화는 다니엘 콴의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통칭 에에올. 나는 이 작품의 메시지를 간결하게 기억한다. '결국은 다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주의 모든 섭리가 다정함. 多情에 있다고 믿는다면 너무나도 순박하고 귀여운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말로 다정에 있을 줄은 몰랐고. 이제는 여기서 더 반전도 없으리라는 믿음도 생겼다. 인생은 결국 다정함이 전부였다. 영화만 꼽으면 섭하니 드라마도 꼽으면, 올 초에 본 '폭싹 속았수다'를 꼽겠다. 흔한 신파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 속 메시지 역시... 다정해야 한다,..는 간결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다정한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 다정한 딸, 다정한 이웃, 다정한 친척... 그렇게 우리는 情이 주는 것들을 잊고 살지 않았나.. 물론 언제나 반성하고 깨달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나의 다정함. 조금만 핀트가 나가거나 모자란 사람들.. (어쩌면 내 태도나 생각이 모자랄지도 모르겠으나)을 보면 정이 뚝 떨어져서. 다정함을 쉽게 잃고 마는데. 그래서 더 '다정함'이 가치 있지 않나.






나를 잃지 않으려면



모든 시절의 글에서 내가 쓰려고 했던 목적은 단순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내가 글을 읽고 쓰는 모든 이유는 결국은 스스로를 사랑해서ㅡ라는 결론이었는데. 그런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고... 나아가 가정, 지역사회, 환경... 인류까지 사랑할 수 있지 않나.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러기에 앞서 나는 나를 지독히도 사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고, 내 부분부분이 찢어져 사라져 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음식을 가려먹고 잠을 제때 자려고 노력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약속을 잡고 전화를 하고 메모를 하고 고민을 하고 카톡을 하고 계획을 짜는 등. 모든 행동은 결국 나를 사랑해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했던 거였다. 사람들은 솔직하지 못해서 타인을 믿지 못하는데, 그건 본인이 본인을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두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면 거기서 다정함이 나타나고 블라블라 블라. 아 그러니까 대충... 그렇게 지구의 대기가 순환하는 것처럼 자연 시스템이 자기 스스로 치유능력을 갖고 자생하는 것처럼. 인간도 결국 그렇게 흘러가는 거예요~라고 90세 노인처럼 말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 그런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 것, 그런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어제 쓴 것 같은 이야기



미련이 없다고, 과거를 더 이상 후회하지 않겠다고, 집착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ㅡ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쌓아 올려진 '나'를 잃기 싫어하는 데에서 가장 큰 모순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이기에 귀여운 것...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초연했다고 자부해도 결국 지나간 날들은 익숙한 냄새, 자주 듣던 노래, 그리고 뜬금없는 꿈으로부터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어제 쓴 것 같은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어떤 회상이든 추억이든 어제 쓴 것이 되면 나는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다시 오늘로 접어서 매듭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스물몇의 내게는 글이 일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존재가 너무 가벼워질 것 같아서 무한히도 쓰려고 했었는데. 동시에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글을 쓴다는 사람들을 보며, 글쓰기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평생에 걸쳐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새로운 기록을 그럴듯하게 쓰지 못한다는 것만으로 삶과 존재가 가볍다고 느껴졌던 시절. 하지만 그 시절을 무탈히 지나고도 나는 가벼워지지 않았고 여전히 무거운 육신으로, 피곤과 개운함을 동시에 가지고 눌러산다. 영혼이 가볍다고 육신이 무겁다고 삶이 느슨해지는 것도 아니고 몸이 가볍고 생각이 깊다고 삶에 방점이 생기는 것도, 쉼표가 붙는 것도 아니다.





태도를 바꾼 것만으로, 생각만으로도 삶이 압축적이고 간결해졌다. 모든 순간이 한번뿐이고, 모든 인연이 의미 있으며 모든 관계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면. 삶이 굉장히 다채로워진다. 월량대표아적심을 듣던 중학생의 나와, wonder wall을 듣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여전히 같은 시간에 존재한다. 그 모든 순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쌓아 올렸으며,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순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선형적인 인생. 인과와 연유가 상호작용하는, 필요충분조건인 인생. 대학 1년의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처럼 don't look back in anger에서 누구를 기다리나 싶었던 sally는 지금의 나를 기다려오지 않았을까? 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으며 어떤 인연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행동은 언제나 생각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지만, 일어난 일은 잘된 것이다ㅡ 라는 법륜 스님의 가르침. 이 말을, 대학 3학년 어느날 소개팅에서 만났던 심리학과 여자애 목소리 그대로 기억한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은 잘된 것이다... 잘된 거겠지?





phase 2의 내가 가장 달라진 점은, 역시 시작과 끝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어떤 시작에도 자신감이 생겼고... 끝이 나면 뭐든 괜찮아지는 그런 회복탄력성도 생겼다. 잔잔한 과거에 대한 흐뭇함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뿌듯함. 그게 phase 2의 나. 요즘 내 모토는 역시, 재미다. 전체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전체. 재미를 위한 나, 나를 위한 재미. 정전백수자를 다시금 떠올린다. 부분이 곧 전체며, 순간이 곧 일상이고 내 소우주를 관리하는 것으로부터 내 우주가 바뀔 거라는 그런 태도. 헛소리를 한 5분 씨부리면... 영혼의 질소가 다 빠져나가서 내일을 준비할 기대감이 생긴다.





드라마 삼체의 메인 캐릭터, 토마스 웨이드의 'Only Advance'를 기억하시는지. 23년부터 삶이 바뀌기 시작했고 24년 일본을 다녀오면서 태도도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절 본 토마스 웨이드의 only advance를 기억한다. 그 기점으로 나는 advance만 했고 <더 이상 남의 마음에 들도록 꾸미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됐다. 요즘엔 그냥 나대로 살아도, 진솔함 자체로 ... 나의 울퉁불퉁함과 퉁명스러움이 그대로 인정받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솔직한 것만으로 '줏대가 있는 사람'의 이미지가 되며... 나만의 기세, 야망 거기서 말미암은 꾸준함, 나대로의 성실함, 내 방식대로의 다정함.. 차분함. 그러니까 어떤 모든 긍정적인 인간의 속성은 결국 스스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나대로 사는 것.. 나를 잃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매일 오늘처럼만 살자<라는 말에 떳떳할 수 있도록...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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