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맛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유치원 시절인데, 그림일기를 채우면서 실제만 그리는 것이 재미없다고 생각해 상상했던 것들을 바른손 떠버기 공책에 줄줄이 이어 썼다. 어떤 직관은 선천적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방과후수업에서 글짓기를 수강했는데 교내 백일장에 낼 글감들을 수차례 써봤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일이라고, 숙제라고 생각지 않으면 재미있었다. 유니텔 자유 게시판에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 만화 감상문 같은 걸 끄적였다. 내가 보는 만화가 마니악하고 작품성 있는 그런 만화는 아니었고 그냥 공중파에서 틀어주는 만화들이었다. 단순한 전대물부터 로봇 만화들을 분석하는 글을 썼는데 나는 선가드와 골드런, 케이캅스를 주로 분석해서 썼다. 어떤 로봇들의 강함을 정규분포화해서 비교하는 글을 썼는데. 유치원~초등저학년의 글을 어른들이 읽어주고 피드백을 해주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골드런의 빌런 캡틴샤크에 대해서 줄줄이 썼다. (나는 이 시절 이후로 밀덕? 차덕? 철덕? 이런 류와는 거리가 있는데.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나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아무튼 당시는 TV 공중파가 대중 콘텐츠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시절이다. 그때의 인터넷 문화는 연령에 대한 개념이 희미했고, 지금은 너무 올드한 표현인 '네티켓'이라는 마인드가 모든 유저들에게 있어서, 나도 나름의 존중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초딩' 내지는 '즐' 같은 폄하 단어도 그 이후에 생긴 말이다. 그 시절에는 영화 광고를 대부분 활자매체인 신문으로 접했다. 예를 들어 내가 기다리던 영화가 신문 광고 면에 나오면, 그 아래쪽에 빽빽이 적혀있는 극장칸에서 우리 동네 극장을 찾는 식으로 개봉 여부를 확인했다. 인생에서 신문을 제일 많이 봤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초등학생 시절이다. 내가 디즈니의 타잔을 봤을 때 안산에는 영풍, 대한 극장이 있었는데 두 영화관 모두 2개관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서 타잔을 보고 악역인 사보와 클레이튼의 비교 글을 썼었는데, 이 글과 그 피드백이 광장에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당시에는 나와 함께 얘기하던 상대가 어떤 개념을 가져오면 그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쉽게 알 수가 없었다. 유니텔 창을 종료 후 중앙 대백과 사전 CD를 넣어서 거기서 단어를 검색해 뜻을 알 수 있었는데, 그런 단어는 대충 '대칭성', '상호작용', '인과응보' 이런 단어들이었다. 모르는 단어는 유추하거나, 너무 어려운 단어는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클레이튼과 타잔의 전투 과정과 클레이튼의 죽음이 준 충격을 길게 적었던 기억이 난다. 한컴 타자 연습의 청산도마저도 400타를 못 넘던 시절에 말이다. 누군가가 이 글을 봐줄 거라고 생각해서 쓴다기보다는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어 그렇게 이어 붙여서 썼었다. 그런 열정이라는 게 그때부터 있었다. 정리해서 표현하는 일을 자연스레 했다. 그렇게 글쓰기를 좋아하던 나는 어쩌다가 하나도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무엇이 쓰는 걸 멈추게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실은 넷플릭스에서 아케인을 보고 징크스에 대한 애정을 담아 글을 쓰려다가, 써지지 않아 이리 비겁하게 써내야 할 운명이라고 적는다.
아득바득과 그럭저럭의 인생
아득바득에서 그럭저럭으로는 순식간이었다. 문득 스물한 살 쯤의 내가 생각난다. 스물한 살의 나는 욕심이 많았다. 실패가 많지는 않았으니까. 그때는 정말 마음먹고 욕심 먹은 게 다 내 것이 됐다. 욕심을 내면 뭐든 비슷하게는 닿았다. 사람의 마음을 얻거나 공부를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뭐 그런 것들. 그래서 굳이 아등바등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욕심만 많아졌네. 욕심만큼 움직이지 않았던 게 흠이었다. 언젠가부터 겁이 많아지면서 욕심도 줄었다. 욕심이 줄어서 겁이 많아진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 건 진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20대를 지나오면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많이 다림질됐다. 울퉁불퉁한 제각각의 매력이 모두 다림질되어 평면적인 사람들이 가득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은 손을 앞으로 쫙 펴 수평 가까이 흔드는 낫배드, 소소의 느낌이니까 그럭저럭만큼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새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마음은 항상 마음에서 그쳤다. 마음도 머리도 무언가를 써 뱉어 내길 기다렸지만 손은 너무나도 게을렀다. 더 좋은 글을 읽어서, 혹은 별로인 글만을 읽어서 쓰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 기억 속의 잘 쓴 글은 더 희미해져 있었고, 못 쓴 글들마저도 읽지 않은 채였다. 일단은 어휘력의 부재에 시달렸다. 그런 거 지성은커녕 지적 허영심 1g도 없는 단순한 사람들이나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지난 십몇 년이 민망했다. 기억나야 할 단어들은 어렸을 적 포켓몬스터 다음 이야기 속 그림자처럼 알듯 말 듯 모양만 기억이 났다. 어휘는 교양 그 자체라는데 교양이라는 것이 말라갔다. 사람마다 사람을 가리는, 혹은 판단하는 기준은 제각각이겠지만 내 경우는 그게 글이었다. 신언서판에서 가장 분명하게 가려낼 수 있는 것은 서(書)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마음의 형태이자 생각의 구현이니까ㅡ 가장 이해하기 쉽고 표현하기 쉬운 매체라고 생각했다. 다른 기준들은 다 허깨비 같았다. 다른 모든 기준이 흡족을 떠나 황홀의 단계라 하더라도 글이 구린 사람은 그냥 구린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가 구린 글을 쓰는, 아니 구린 글조차도 못쓰는 구린 사람이 되었다는 걸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쓰는 굴레
1년에 서너 번 정도는 특별한 계기 없이 잘 써지는 시기가 온다. 그때 안 쓰고 넘기면, 그렇게 몇 주간 비워져 있는 거고.. 그때 뭐라도 붙여 쓰면 부지런히 매일 쓰던 사람처럼 뭐라도 써낸다.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 그때 못 쓴 글이라도 많이 써놔야 다음에 좀 더 매끄럽게 쓸 수 있다. 일기를 꾸준히 적던 시절을 생각하면 잘 써지는 시기에는 꾸준히 백지를 채우는데, 그게 아닐 때에는 3주고 4주고 두 달이고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도 방학 때 몇 주씩 비워놓고 그랬다. 어떤 글은 제목이 먼저 생각나서 그 제목대로 글을 썼고, 어떤 글은 문장이 먼저 생각나서 글을 쓴 다음에 나중에 제목을 붙여냈다. 글마다의 뜸이 있다. 어떤 글은 금방 써내지만 어떤 글은 오래 걸린다. 올해도 분명 글을 쓰지 않는 날이 올 거라는 걸 직감으로 안다.
글을 균일하게 쓸 필요가 있다. 어떤 글이 나를 처음 보는 글이 될지 모르니까. 첫 글이 이상한 글이었다면 거기서 그 사람과의 인연은 끝이다. 자주 휘낭시에, 주먹밥, 진주 같은 말을 쓴 적이 있는데 글은 그렇게 어느 정도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내 가장 오래된 글에서는 쓰기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글을 쓰는 일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도 넘쳤던 시기였으므로 더 잘 쓰는 것만이 내일을 기대하는 이유였다. 하나의 글을 오랜 시간 들여 잘 쓰기도 해야 하고, 그때그때 plausible 한 글을 써낼 수도 있어야 한다. 당시 김우창 교수님의 '깊은 마음의 생태학'에 사인도 받고 칭찬도 받았는데 그 시절의 내게 지금 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좌절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살았겠지? 싶다. 올해는 글에서 힘을 빼려고 한다. 그냥 생각이 나면 쓰고 힘들면 안 쓰고 쓰고 싶으면 쓰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글을 쓰는 것. 올해는 무슨 글을 더 쓰게 될지 궁금하다. 쓰고 싶은 건 많지만 언제나 체력이 부족해서 못썼다. 그래서 작년 한 해는 체력을 많이 길렀는데. 이제 핑계 댈 것도 없이... 써야만 한다. 글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살아갔음을 말해주니까... 줄줄이 써내야 할 운명은 누군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시시포스의 운명 같은 숙명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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