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맺는 데에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 사귀는 데 익숙하다, 자신 있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누구와도 제대로 사귀어 본 적이 없다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은 많은 사람을 챙겨야 함을 의미한다. 아무리 매력 있고 재능이 넘쳐서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얻는다고 해도, 단방향적인 불균형의 관계는 금방 무너진다. 많은 사람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2,3년 정도? 매일매일 하루로는 부족했다. 어떤 동아리, 소모임, 알바, 봉사활동 등으로 여기저기에 발 담근 시절이다. 경기도에 사는 사람은 인생의 n%를 도로 위에서 보낸다고 했던가? 나는 신분당선이 뚫리기 전까지 102번 8100번을 타고 서울로 갔다. 빨간 버스의 뒷좌석에서 과제를 끄적이던 내가 가끔 생각이 난다. 일주일 동안 몇 개의 약속을 소화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고 한 번에 5명 8명 이렇게 만났다. 취미는 다양했다. 사진을 찍는 동아리, 힙합을 하는 동아리, 한 축구 클럽의 팬모임부터 그냥 단순히 어디 소속이어서 만나는 모임들도 있었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그때는 확실히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대학생들은 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처음 누굴 만나면 이름이 뭔지, 어디 사는지, 전공이 뭔지, 취미가 뭔지 일련의 조사를 마치고 이미지를 머릿속에 넣어 기억했다. 될 수 있으면 좀 세련된 방식으로 외우고 싶었다. 자기 이름의 한자를 아는지, 좋아하는 작가가 따로 있는지, 어떤 배우를 좋아하는지 같은 섬세한 차이를 기억해 주고 싶었다.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는 전 여자친구는 그 질문 때문에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나중에 말해주었다. 기계적이지만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키워드로 사람을 기억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어떤 퀴즈쇼 따위에서 누구와 경쟁하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학퀴즈, 1 대 100 같은?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서 키워드와 분위기로 사람을 외우는 일이 오히려 더 빨랐고 정확했다. 인간적인 유대감을 얻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 친구가 어떤 인간적인 고민을 내게 물어올 때가 되면 충분히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나도 만족스러운 답을 내어줄 때가 있었는데, 그걸 듣고 기뻐하는 사람보다 내가 더 속으로 기뻤다. 어쩌면 나는 사람과 대화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나거나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혹은 단순히 내 의견을 내주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이는 우리 대학 캠퍼스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누군가 단과대를 말하면 나를 아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체면? 위신? 명예? 그런 것들에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 학번 아래 후배들에게 나는 무엇이든 고민을 털어놔도 좋은 이미지가 되어있었다. 내 장점은 사람을 잘 기억해 준다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는데, 이는 관계가 진전되지 않은 밋밋한 사이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큰 메리트였다. 인생을 살면서 암기력이 가장 큰 도움이 된 부분은 여기였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자기를 잘 기억해 주는 사람을 좋아했다. 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처음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잘 기억했고, 그 때문에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바쁘게 사는 게 그냥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관계에 대해 심오하게 생각해 보진 않았다. 그런 삶이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걸 몰랐다. 친구와 밤새 공원을 걸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해도, 시험기간 별로 안 친한 후배와 단과대 도서관 옥상에서 헛소리를 쉼 없이 내뱉어도, 별 의미 없는 환영회 송년회 같은 이름 아래 싸구려 안주만 나오는 지하 술집에서 이름이나 겨우 아는 대학 동기랑 헛소리를 주고받아도 그게 그렇게 해롭게 느껴지진 않았다. 과팅, 미팅, 소개팅 혹은 단발적으로 일어나는 타과 행사에 참석해서 역할놀이를 하는 건 재미있었다. 어떤 날은 무뚝뚝하고 센치한 캐릭터, 어떤 날은 상냥하고 말이 많은 캐릭터, 뭐 겜돌이, 오타쿠, 문학소년 등등을 연기하기도 했다. 핍진성 있는 연기력 덕분에 극예술 연구회에 까메오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그런 일들로 시간을 채우면서도 언제나 들뜨고 설레었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만 하는 게 아니니까, 같이 하는 사람이 항상 있었으니까. 나보다 6학번 위의 선배도, 아래로 5학번 아래의 후배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학번의 징검다리였다. 덕분에 단합이 힘든 우리 단과대도 총학생회에서 하는 행사 몇 개에 단과대 최초로 나가기도 했다. OO대 처음 봐요,라는 말은 내 학번부터 들었다. 작은 풋살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던 것도, 조그만 상패가 걸린 노래 경연에 나갔던 것도 짧지만 강렬했다. 의외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 허들을 넘으면 쉽게 물들었고, 친해지기 쉬웠다. 나는 그들 중 누가 '평생'을 얘기할 때 그 평생이 정말로 평생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스물 한둘의 사람들은, '부르면 무조건 달려오는'에 집착했다. 때로 우리들은 술집에서 불러내는 시합도 했다. 나는 누구도 나와 그런 사이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랐다. 나는 누구를 막론하고 부르면 달려갈 사람이 되기는 싫었으니까.
던바의 법칙은 그냥 개인의 역량과 한계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관계들이 있었지만, 군대에 간 이후로 쉬지 않고 줄였다. 그 사람들이 별로여서, 마음에 안 들어서는 아니었다.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아서ㅡ였다가 제일 맞는 말이다. 타인을 필요로 거르지 않기에,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은 사람은 조금씩 지워나갔다. 당연히 죄책감도 아쉬움도 없었다. 내가 쓰는 시간에 내가 더 커지기 위해서라는 말로 핑계를 대신한다. 다행히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대개 내가 괜찮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글을 쓸 줄 아는 사람과 읽을 줄 아는 사람, 딱 이거면 됐다. 굉장히 단순한 리트머스지만 의외로 깐깐한 리트머스기도 하다. 심지어 4년제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단순한 리트머스가 굉장히 촘촘한 거름망이 되기도 했다. 대학 1,2년의 글쓰기 말하기 수업에서도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많으면 60명 적어도 열댓 명의 글들을 서로 돌려 읽을 기회가 많았는데 막힘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稀貴했다.
대학 생활 동안 '친해지면 나쁜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대개 어떤 오해로, 혹은 실수로 파벌이 생기고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내가 양쪽에게 해줬던 말이다. 우정, 연애 같은 일차원적인 감정들로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했다. 그 시절 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걸 꽤 좋아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으리라. 어쨌든 원치 않게, 성향에 맞지 않게 그런 중재자 역할을 많이 맡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이미 죽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러던 내가 졸업을 앞두고는 '굳이 모든 사람과 친해질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으로 바뀐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내 그릇이 그만큼일지는 몰라도 나의 법칙 안에 들어간 사람만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관계를 새로 만드는 일도 힘들고, 굳이 공들일 필요도 없고, 노력해 끊어내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고독이 당연한 사람이 됐다.
나의 군 생활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그 친구들 덕분이다. 4월 군번인 내가 한 달 동안 학교 앞에서 체류하면서 만나는 후배마다 군대 가면 '편지를 써달라고' 애원 아닌 애원을 했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아니면 내가 사람됨이 좋아 보였는지는 모르겠다만 훈련소에서 나는 80여 통의 편지를 받았다. 조금 아니 많이 후회되는 것은 그 친구들의 편지에 제대로 답장을 해주지 못한 점이다. 별로 친하지 않은 후배에게는 군가를 적어 보내는 우악스러움이 있었다. 군 생활은 적당히 잘 풀려서, 집에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오산에 배치를 받았으므로ㅡ 일이 주마다 친구, 동기, 후배들이 면회를 와주었다. 상병이 되기 전까지 나는 바깥사람들을 만나는 데 지장이 없었다. 가끔 연애상담 따위를 하려고 면회 온다는 아이에게는 체육대회 같은 핑계를 대면서 미루기도 했다. 우리 부대는 대대원 전원이 출전해도 베스트 11이 안 나오는 소규모 부대여서 체육대회는 역시 거짓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낯선 나지만 꽤 인기가 있었나? 어쨌든 이 지면을 빌어 감사와 사과를 동시에 전하고 싶다. 나를 봐주러 와주어서 고마웠고, 내가 그만큼 당신들에게 보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이러니하게도 군대는 어떤 외향적인 캐릭터의 나를 완전히 지워내 주었다. 종종 그때까지의 나만을 기억하는 옛사람을 만나면 나도 상대방도 놀란다. 바뀐 나의 차분함 내지 고요함이 그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어색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정리해 쓸 관계의 종말은 오늘 이렇게 대충 매듭을 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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