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때문에 울고

사람때문에 다시 웃고

by QUE


이런저런 일로 현타가 왔다가도, 따스하게 안아주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녹아내리고 다시 살아낼 마음이 샘솟는다.


한살이라도 어릴때, 나와 다른 사람들과 친해져보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견문을 넓혀야한다는데, 내 주변엔 이미 나같은 사람들로 수조처럼 가득 채워진 것 같다.


투정을 부리고 힘든일을 토로하면 무턱대고 편부터 들어준다. 아마도 서로 잘못한 부분은 스스로 알고 있음을 믿어주어서 그런것 같다. 이미 잘못을 깨닫고 알고있는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소용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어느 불교 칼럼에서 읽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보고서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이미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이 무용하고, 이미 잘못을 알고 속상해하고있는 사람에게 너 잘못한거라고 하는 그 말은 무용하다. 너한테 내가 지적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을 뿐, 속상한 사람은 여전히 속상하다.


편을 들어주는 것도, 편을 들어줘도 정말로 고집스럽게 엇나가지 않고 다시 말짱하게 돌아올 거라는걸 알아서 편을 들어주고 시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편을 들어주고 나서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성적인 조언도 덧붙여준다.


조언이 없더라도, 니편 내편이 유치해도, 핵가족이 되고 핵개인이 되어가는 시대에 필요한건 편들어주기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동물로써, 누군가가 없으면 인간은 살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편을 가르고 정치질도 하나보다. 살아내려고 그러나보다.


시간이 지나면 이 생각도 변화하겠지, 그때의 나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