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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쿰 May 30. 2020

결혼 6년차, 아이가 없다.

그래도 괜찮은 딩크 아닌 딩크의 삶

결혼 직후, 1년은 신혼을 즐기자며 피임을 했었는데,

그때 많은 분들이 내 등짝을 후려쳤었다.

'그렇게 피임하다가 아이 안 생겨서 고생하는 부부들 많아 이것아.'

일단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1) 아이가 안 생기는데 고생을 왜 하지? 아이 없이 살면 되지.

2) 그건 피임을 해서 안 생기는게 아니라 그냥 생기기 힘든 체질인거 아니야? 전후관계일 뿐 인과관계가 아닌 거 같은데.

그렇지만 그렇게 반박하지는 않았다. 말만 길어질 게 뻔히 보였으니까.


그리고 결혼 6년차, 아이가 생기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버라이어티하게 변해 갔다.

결혼 1~2년차에는 만날 때마다 인사가 '좋은 소식 없나?'였고,

3년차가 되니 사람들이 내 앞에서 임신 및 출산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4년차에는 임신한 친구가 나에게만 임신 소식을 안 알리는 사태도 발생했다. 그리고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의 본격적인 걱정 어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종 난임병원에 대한 정보와 함께.

5년차부터는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포기하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도 진짜 진심으로 걱정이 되는 분들이 이따끔씩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정도?

6년차가 되니 다들 그냥 '저 사람은 딩크족이구나'정도로 생각하고 내 앞에서 임신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결혼=임신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했고,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 단지 그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 다 생기는 아이가 안 생기는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히 정신적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결혼 3년차 정도에 난임 검사도 해 보고, 임신을 위한 한약도 지어 먹어 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정도 노력으로 생길 아이는 아니었나보다.

나보다 늦게 결혼한 내 또래 친구 및 동료들이 하나둘씩 아이를 낳기 시작하면서 조바심이 안 생겼던 것도 아니다. 결혼 4년차였던가, 나보다 3년 늦게 결혼한 내 또래 동료가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에는 겉으로는 축하했지만, 집에 와서 우울감에 젖어 소파와 일체되어 멍하니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임 시술을 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이가 그 정도로 절실하지도 않았고, 아이가 없는 삶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 과거의 조바심은 그 시기의 이벤트처럼 지나갔고, 이제는 나보다 어리고 결혼이 늦었던 사람들의 임신 소식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것이 그들의 삶이라면, 나는 나의 삶을 개척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다고 딩크를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아이가 우리 부부를 찾아온다면 고맙게 받아들여서 최선을 다해 잘 키울 것이다. 다만, 그 전에 아이를 갖기 위해 조바심을 내며 나의 자아를 깎아먹는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 내 시간을 알차게 활용할 생각이다. 그것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미래의 내 아이를 위해서도 더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 단 한명도 그 아이를 위해서,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해서 딩크를 선택했다>는 어느 셀럽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 주변 사람들 역시 아이를 가져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랬다.

나는 남편과 잘 맞는 편이라 아이 없이 쭉 사이 좋게 살 수 있을 거 같다고 하면 '살아봐라, 그게 되나. 아이가 있으면 아이 때문에라도 산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꽤 많다. 그 때마다 생각했다. 아이 '때문에' 산다는 책무성을 아이에게 지워주는 것이 옳은지, 그리고 그렇게 억지로 살 바엔 이혼하는 게 낫지 않은지. '아이가 주는 기쁨을 니가 몰라서 그렇다.'는 말에 대해서도 '지금도 삶이 기쁜데 왜 굳이 지금의 기쁨을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기쁨을 찾아가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들 역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여기는 보수적인 한국에서도 좀 더 보수적인 경상도 중소도시이다. 각자의 가치관이 다른 것이라면, 굳이 그것을 답 없는 논쟁거리로 만들어 내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진 않다.


다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에 나에게 언젠가 아이가 찾아온다면, 나는 그 아이를 내 삶의 접착제 또는 기쁨조로 활용하고 싶지는 않다. 부모로써의 책임감을 바탕으로 자존감 높고 행복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시키는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 그 아이의 삶은 그 아이의 것이고, 나는 옆에서 그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돕는 '조력자'의 역할도 괜찮을 것 같다.




다행히도,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 속도가 꽤 빠르다. 이제는 '생기면 낳고 아니면 말구요'라고 이야기하면 '그래, 부부 둘이 알콩달콩 사는것도 좋지'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도 꽤 많아졌다. 거기에 더 다행히도, 시댁이고 친정이고 아이 안생기냐고 독촉하는 분이 아무도 없다. 이런 복(?)에 편승해, 나는 좀 더 나의 자아를 실현하며 성장하면서 남편과 서로 의지하여 알콩달콩 살아보고자 한다.


아이가 없는 지금도 행복하지만, 아이가 생겨도 행복할 수 있도록 삶의 가치를 좀 더 단단히 세워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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