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은 명실상부 근래 웹소설계 최대의 화제작이다. 네이버 시리즈 랭킹 톱을 싹쓸이한 어마어마한 매출액과 뷰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물론 이 작품은 연재 중인 현 시점에서 1200화를 바라보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 짧은 호흡과 속도감이 셀링 포인트인 웹소설에서, 에피소드와 에피소드를 절묘하게 엮어가며 큰 무리 없이 이런 대서사시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작가의 저력이 놀라운 것이다.
콘텐츠 업계에서 웹소설 IP의 성공은 이제 가능성의 영역을 벗어나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시에 비주류 장르의 주류화도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한 발 앞서간 예로 BL이 있다. 얼마 전 리디의 동명 웹소설을 왓챠에서 오리지널 드라마로 만든 <시맨틱 에러>가 한국시장에서 BL 대중화의 기폭제가 됐다. BL이 여자들의 마니악한 취향이었다면, 무협은 아저씨들의 마니악한 취향이라는 것이 그동안의 지배적인 인식이었다.
무협 요소가 가미된 중국의 정치사극 웹드라마 <랑야방>. 몇 안 되는(?) 명작 중드로 유명하다.
그거 우리 아빠가 보는 건데?
뭐, 한때는 무협지가 큰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98년생인 나는 실감한 적 없는 이야기이므로 넘어가자. 다만 나는 또래들에 비해 무협을 꽤 좋아한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단순하다. 우선 동양의 정서가 담긴 콘텐츠를 좋아한다. 그리고 비범한 무력캐(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캐릭터)를 좋아한다. 지금껏 좋아했던 캐릭터로는 삼국지의 여포, 일지매의 괴도 용이, 뿌리깊은 나무의 조선제일검 무휼, 스위트홈의 편상욱 등이 있는데… 각설하고, 이 두 가지 요소가 주력인 장르가 바로 무협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친구를 만나 밥을 먹다가 즐겨보는 드라마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는 당시 유행하던 한드 얘기를 했던 것 같고, 문제의 나는 이 <랑야방>에 꽂혀 있었다(물론 이 작품은 무협보다는 정치극에 훨씬 가깝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는 취향의 공유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떠듦임을 알기에, 나는 말을 최대한 아꼈다. 그래도 사려 깊은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려 시도하기에, 그제야 수줍게 취향을 고백했다. 내 입에서 나온 드라마 제목에 친구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그거 우리 아빠가 보는 건데?" 우리는 동시에 파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어쩐지 조금 서글퍼졌다…….
BL 웹소설 원작의 선협물 중국 웹드라마 <진정령>
BL과 무협의 만남, 통했지만….
2020년 한국에서 거대 팬덤을 형성했던 드라마 <진정령>의 배경 또한 무협의 일종인 선협물이다. 선협물은 무협지적 설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주인공이 수행을 쌓아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수련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이 드라마의 흥행 요인이 '선협물로서의 재미'보다는 'BL물로서의 케미'임은 명약관화하다. 조악한 중국식 CG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두 존잘러들이 서로 교감할 때의 간질간질한 텐션에는 눈을 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놓고 키스할 듯 말 듯한 연출이 적지 않은데… 보면 볼수록 어떻게 이 감정선을 우정으로 퉁치고 광전총국(중국 미디어 감시 국가기구)의 심의를 벗어났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따라서 <진정령>의 성공이 웹 콘텐츠 주소비층인 MZ세대의 무협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 그런데 <진정령>의 주인공 위무선과 <화산귀환>의 주인공 청명은 닮은 꼴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이 이야기는 추후에 다시 하도록 하고.
네이버 웹툰 <화산귀환> 주인공 청명 일러스트
화산귀환은 대체 어떻게 성공했을까?
BL은 비주류 장르이나 본질은 로맨스다. 서로 같은 거 달린(?) 연인일 뿐, 이질적인 것도 융화하고 그 어떤 장애물이라도 결국에는 사랑 앞에서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러브 스토리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BL은 좋은 서사와 영상미, 높은 완성도가 뒷받침된다면 대중들에게 한층 유연하게 다가갈 수 있다. 동성애를 포함한 여러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를 외치는 요즘 세대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반면 무협 웹소설은 역사가 깊은 장르이나 현재로서는 콘텐츠화에 좀 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의 역사 왜곡과 동북공정으로 우리 사회 내 혐중감정이 드높은 마당에, 무림(武林)이라는 세계관 자체가 중화문화와 본토 지형으로 굳어진 무협이라면 흥미보다는 반감을 먼저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산귀환의 작가 역시 이 점을 인식하고 있어, 동북공정을 연상시키는 장백파라는 단체는 소설 내에서 등장시키지 않는다) 거기다 로맨스도 없다! 말하자면 낯선 설정에, 가슴 떨리는 로맨틱함도 없으며, 그저 시커먼 사내들이 와닿지도 않는 옛 구절의 정도(正道)를 찾겠다며 검을 휘두르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구현한 영상도 아닌 텍스트로 보고 있어야 한다. 맛깔스러운 클리셰가 넘실거리는 웹소설의 바다에서 무협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신무협인 화산귀환은 대체 어떻게 전 연령층의 사랑을 받으며 성공가도를 걷게 된 것일까? 나 역시 무협소설이면 몰라도 무협 웹소설은 처음이다. 쿠키오븐을 기웃거리지 않고 내돈내산으로 왕창 구워버린 것도 처음이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열광하게 만들었는지 찬찬히 글로 풀어가며 곱씹어 보려고 한다. 현재 정주행으로 약 100화 정도를 남겨두고 있는데, 이것마저 다 읽어버리고 나면 완결까지 하루 한 편씩만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감질이 난다. 목이 말라 죽겠는데 물이 한 방울씩만 똑똑 떨어져 나오는 정수기 앞에 선 사람의 마음이 이럴까. 리뷰를 쓰며 읽어 온 궤적을 되짚어보는 걸로 그 인고의 시간을 잘 버텨보기로 한다.
다음 글에서는 화산귀환의 주인공 청명을 분석하려고 한다. 실력과 인성이 정확히 반비례한다고 볼 수 있는 전설의 무림고수 청명. 이 청명의 인간적인 입체성은 화산귀환을 흔하디 흔한 절대고수의 회귀물로 보여지지 않게 하는 핵심 전력이다. 소설 초반부 청명의 먼치킨적인 능력치에 환호하던 독자들은, 회차가 지날수록 차츰 심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내면으로 자맥질하여 들어간다. 우리를 화산귀환에 '과몰입'하게 만드는 그 매력을 탐구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