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고, 비장애인이고, 한국에서 태어났고, 대학을 졸업했다.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는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 사실 내가 자주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인에게 몇번 꺼낸 적도 있는데 나는 기적이나 요행같은 걸 잘 믿지 않는다. 이걸 '결정론자'라고 표현한다. 삶의 많은 부분은 날 때부터 결정돼있다. 나는 운이 좋게 국민소득이 꽤 높은 나라에 태어났으며 남자로 태어났으며 비장애인으로 태어났고 대학교육을 마칠수 있었고 또 나쁘지 않은 머리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해할까봐 첨언하자면 나는 내 멍청함에 자주 좌절한다. 이건 상대적인 것이다)
노력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아주 요긴하게 쓰이지만 난 그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 떄문인데 하나는 나는 결정론자라서 노력하는 것도 타고 나는 게 크다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꿀수 있는 꿈이 달라서 노력이 만드는 변화가 매우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는 거다.
빈곤국에서 가난하게 자란 아이의 꿈과 동아시아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아이의 꿈과 미국 백인 상류층 아이의 꿈이 다 다르다. 사립학교를 다닌 백인 아이는 주커버그나 에반 스피겔을 꿈꿀 거고 동아시아 중산층에서 태어난 아이는 삼성 직원을 꿈꿀테지만 빈곤국에서 가난하게 자란 아이는 그런 꿈이 와닿지 않는다. 죽어라 노력해도 어차피 이루지 못할 꿈이다. 모두가 같은 노력을 한데도 결과가 다르단 건 이런 말이다.
얼마 전 비정상회담에 나왔던 외국인들이 서로 여행을 다니는 프로그램을 넷플릭스에서 보았다. 알다시피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 다 배운 사람들이다. 배움은 충분했겠지만 자라온 문화토양이 다르다. 중국에서 온 친구는 소개팅 자리에서 "부모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네팔에서 온 친구는 언젠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먹여살릴 가족이 무지 많다. 북유럽에서 온 어떤 친구는 젠틀한 말들을 골라서 한다. 개인의 차야 있겠지. 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그 나라의 표준적인 경향성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한자가 내뱉은 혐오발언이라고 해서 어떻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그냥 넘어갈 수 있겠나. 소수자가 내뱉은 악담이라고 해서 어떻게 시시비비없이 온당해질수 있겠나. 다만 우리는 각자의 운에 따라 맞이한 좋은 세계와 그러지 못한 세계의 차이를 인지하고 서로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해볼 필요는 있지 않겠냐는 거다. 그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수 있을 것 같다.
'무식하다'고만 평가하고 끝내는 것들이 요새는 마음이 참 아프다. 크기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지 않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대해 반성할 게 아주 많다.
운이 좋았다. 그래서 그나마 나쁜 말들을 조금 더 가려가면서 할 수 있었다. 몇가지 운이 따라주지 않았으면 나는 과거의 내가 비난했을 사람들과 다름없었거다. 아니, 더 높은 확률로 최악이었을 거다. 나는 결정론자지만 우리의 느려터지고 답답한 진보를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